배틀그라운드가 재미있는 이유
요즘 한국에서 가장 화제의 게임은 리니지M이지만, 해외에서 가장 화제의 게임은 바로 배틀그라운드(Playerunknown’s Battleground)라는 게임입니다.
2017년 7월 7일 시점으로 판매량 500만장을 돌파하고 (8월 15일 시점 800만장 돌파), 해외 게임전문 스트리밍 방송 트위치 방송순위 부동의 2위를 달리고 있는 게임입니다. 1위는 'League of Legends' 인데 조만간 역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심지어 아직 정식으로 출시된 게임도 아니고, 미국 PC게임 다운로드 판매 서비스 Steam의 early access (일종의 유료 베타서비스) 형태로 출시가 되었는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는 게 더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입니다.
여러가지 사상 최초의 기록들을 세우며 PC게임의 역사를 새로쓰고 있는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회사가 바로 한국 게임 개발사인 ‘블루홀'입니다. 덕분에 제 주변의 투자관련 일을 하는 지인들이 배틀그라운드와 블루홀에 대해서 요즘 많이 물어보셔서, 그분들에게 해주던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한 번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최근 PC게임에서는 게임개발사가 아닌 유저(User: 게임 이용자를 가리키는 용어)에 의해서 이미 출시된 게임을 새로운 형태로 개조해 플레이 하는 방식이 트렌드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데, 이렇게 유저들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 게임을 MOD(modification의 약자)라고 부릅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유저들끼리 스스로 만든 맵으로 플레이 하는 것이 좀 더 진화한 형태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배틀그라운드는 크게 보면 FPS(First Person Shooter: 1인칭 시점의 총쏘는 게임) 게임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요, FPS는 RPG(롤플레잉게임. 리니지는 세부장르인 MMORPG로 분류)와 견줄만한 메이저 게임 장르로, 매년 출시되면 그 해 판매 1위를 차지하는 'Call of Duty' 시리즈가 대표적인 FPS 게임입니다. 국내에서는 서든어택이 가장 유명한 FPS 타이틀이고,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크로스파이어도 FPS에 속합니다.
인기 장르인만큼 매년 다양한 FPS 게임들이 출시되고, 또 MOD 개발자들에 의해서 활발하게 MOD 게임들이 개발되어 FPS안에서도 여러가지 세부 장르들이 만들어 집니다. 그 중에서도 일본영화 ‘배틀로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MOD가 조금씩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몇년의 시간이 흐르며 'H1Z1'를 비롯해 다양한 스타일의 MOD 게임들이 출시되어 ‘배틀로얄’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매니아들 사이에서 자리잡게 됩니다.
배틀로얄 장르는 영화처럼 고립된 섬안에서 이용자들이 100명이 동시에 게임을 시작하여 최후의 1명이 남을때까지 전투를 벌이는 방식의 게임으로 배틀그라운드도 이런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됩니다. 이런 서바이벌 컨셉은 배틀로얄이라는 일본영화에서 시작되었지만, 헐리우드에서도 ‘헝거게임’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친숙한 문화적 코드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로레슬링의 배틀로얄 매치에서 기원을 찾을 수도 있겠네요.
기존의 Call of Duty 같은 FPS 게임들은 화려한 그래픽으로 영화같은 연출과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싱글플레이 모드와, 두개의 팀으로 나뉘어 정해진 시간안에 상대팀을 더 많이 사살하거나 진지를 점령하는 팀이 이기는 멀티플레이 모드의 게임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배틀그라운드는 그런 전통적인 FPS 게임의 문법에서 벗어나, 싱글플레이는 없고 100인이 함께 접속해서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멀티플레이 모드만 존재합니다.
100명의 사람들이 똑같이 맨몸으로 시작해, 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무기를 획득하고, 그 사이에 마주치게 되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전투를 벌이는 게임방식이다보니, 플레이어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의 요소도 게임의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기존 FPS 게임들이 줄 수 없었던 신선한 재미가 탄생합니다.
기존 FPS의 멀티플레이는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실력차이를 절대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배틀로얄에서는 잘하는 사람끼리 싸우다 겨우 살아남은 상대를 숨어있다가 뒷치기(!)해서 운좋게 승리를 거두는 상황도 가능하기 때문에, 못하는 사람도 재미나게 플레이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숨어만 있었는데 10등 이내에 든다거나, 딱 1명만 죽이고도 1등을 하는 웃기는 상황들이 발생하는 거죠. (사실은 이게 진정한 고수의 플레이 방식일 수도…)
반대로 게임을 잘 하는 사람도 다른플레이어와의 전투에 정신이 팔려있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풀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운이 없어 시작지점에서 아무런 아이템도 줍지 못해 맨몸 상태인데, 상대방이 기관총에 방탄조끼까지 입고 나타나면 이번 판은 그냥 포기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100명의 플레이어가 얽히고 설켜서 매번 다른 게임의 흐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매 판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에 의한 재미, 즉 창발적인 재미가 발생합니다. 두 팀으로 나뉘어 상대방을 많이 처치하기만 하면 되는 기존의 FPS 게임에서는 이런 창발적인 상황들이 발생하기 어렵습니다. MMO(Massively Multiplayer Online : 대규모 다중 사용자) 적인 요소가 FPS의 게임방식과 멋지게 결합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재미를 창조한 것이 이런 배틀로얄 장르의 인기 이유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배틀로얄 MOD 게임들은 너무 매니아적이어서 일반인들이 즐기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배틀그라운드는 기존 매니아 중심의 배틀로얄 장르를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으로, 좀 더 캐주얼한 게임플레이 방식과 안정적인 온라인 서비스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래픽도 언리얼 엔진을 이용해 MOD 게임들과는 급이다른 퀄리티의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초기에는 배틀로얄 장르의 매니아층에서 반응을 해서 게임방송 '트위치'를 통해 배틀그라운드를 소개하기 시작했고, 게임의 완성도가 기존 배틀로얄 MOD 게임들에 비해서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금방 입소문이 나서 신규 유저층이 유입됩니다. 그렇게 유입된 신규 유저들은 또 자기들이 기존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신선한 재미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주변에 홍보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아직 스팀 얼리억세스로 출시되었을 뿐이고, 일반적인 형태의 돈쓰는 마케팅은 제대로 한 적이 없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4개월만에 500만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또 뉴스화 되면서 선순환의 고리는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치 블리자드가 'World of Warcraft'를 통해 MMORPG 장르의 대중화를 이끌었듯이, 배틀그라운드도 단지 배틀로얄 장르의 유저층에게만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배틀로얄 장르 자체를 대중화 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정도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리라고는 게임을 만든 블루홀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배틀그라운드의 출시와 성공 과정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왜 제작사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이라고 했는 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