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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낙형 Aug 26. 2021

블루홀 사람의 '크래프톤 웨이' 소감

'크래프톤 웨이' 책에는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에 대하여


#크래프톤웨이 는 원래 남이 써준 좀 부끄러운 일기같은 책이라 별 이야기 없이 지나가려고 했었는데, 최근에 크래프톤 IPO에 맞물려 여러 곳에서 이 책이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기에 좀 조심스럽게 말을 얹어 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의 장점으로 '사실적'이라는 점을 꼽아주셨는데, 아마도 이정도로 성공한 기업과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미화없이 이메일까지 그대로 인용해 가면서 쓰여진 책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저자 서문에 '장병규의 스타트업 한국'이 안팔린 이유를 노잼이기 때문이라고 본인 앞에서 직언을 하실 정도로, 작가님께서 이 책을 쓰기위해 크래프톤의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구성해 내셨기 때문에, 저는 이 책이 굉장히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읽는 사람들에게 큰 재미를 줘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남들 고생한 이야기는 (게다가 그 고생이 끝에는 성공으로 끝난다면) 그 고생이 심할 수록 재미있는 법이니까요.


다만 이야기의 큰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작가님의 부분적인 각색과 시간관계의 재배치, 그리고 적당한 생략이 있었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원래 드라마도 캐릭터가 너무 많으면 산만해 지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일반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잘 재구성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이 책에서 실명이 언급되시는 분들은 꼭 2번 이상 책에 등장합니다. 크래프톤의 역사에 나름 영향을 끼쳤던 임원분도 계셨지만 그분 스토리는 별 재미가 없다보니 책에 등장하지 않으세요.


테라 오픈 D-DAY 순간


제 사례를 들자면, 공동 창업자 이셨던 김정한님이 한달 휴가후 복귀해서 2013년에 테라 라이브를 맡으시는 이야기로 전개가 되는데, 이 시기에 테라 라이브 서비스는 제가 맡고 있었고, 김정한 님은 잠깐 신규 프로젝트를 준비하시다가 그걸 정리하시고 좀 더 이후에 테라의 본부장이 되십니다. 그 사이에 테라 본부장을 중국 서비스를 준비하기 위해 장병규 의장님이 직접 겸임을 하셨던 적도 있지만, 이런 세세한 이야기는 오히려 독자들을 위해서 생략되는 쪽이 더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제가 이 책에 아쉬운 부분은, 어느 독자분의 리뷰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크래프톤이 성공한 방식에 대한 책이라고 소개해놓고, 정작 고생하며 존버하다가 운좋게 터진 이야기가 전부 아니냐. 이 책이 재미있긴 했지만, 읽고나서도 크래프톤이 대체 왜 성공을 했는 지 모르겠다."는 지점입니다. 


예전에 아직 크래프톤이 블루홀이던 2017년에 블루홀의 성공은 결국 얻어걸린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고 있던 분들에게,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미시적으로는 우연이지만 거시적으로는 필연의 결과'라는 내용의 글을 포스팅 했던 적이 있습니다. 블루홀은 그렇게 얻어걸리기만 한 회사는 아니니 한번 경영진의 능력을 믿고 장기적인 투자를 해봐도 될 것이라는 글이었죠. 

https://brunch.co.kr/@harnskim/4


그 뒤로도 크래프톤은 포트나이트라는 게임에게 배틀로얄 시장의 헤게모니를 위협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크래프톤만의 방식으로 그 위기를 돌파하며 드디어 올해 성공적으로 IPO라는 회사 성장의 이정표를 달성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크래프톤에는 다른 한국의 게임 개발사들과는 다른 '크래프톤 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책에서도 그런 크래프톤 웨이가 책 곳곳에 묻어나기는 하지만, 드라마틱한 실패와 반전성공의 스토리에 묻혀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잘 전달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점이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잘 드러났다면 대신 책이 재미없어졌을 것 같아서, 저는 90% 이상 만족스러운 책이었습니다. 


제가 블루홀에서 일하는 동안 했던 일들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재밌던 내용들은 아니다보니, 이 책에서는 거의 비중이 없었는데 약간 의외의 곳에서 제가 썼던 이메일이 등장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작가님께서 약간 각색을 첨가한 부분이 있어서,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그냥 실제로는 이랬다 정도의 느낌으로 남겨놓습니다. 


2015년에 모바일 게임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는 과정에 중간에서 창업때부터 일했던 PD도 그만두고, 블루홀의 연합군으로의 변화가 쉽지 않았다는 스토리에 제가 퇴사시 썼던 메일이 그대로 올라와 있습니다. 그 큰 흐름 자체는 사실이지만, 혹시라도 제가 그런 변화 과정에서 블루홀에 불만을 느끼고 퇴사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 저는 그때도 블루홀의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습니다. 


다만 제가 하려고 했던 일이 일반적인 게임회사에서 내가 사장이더라도 승인하기 쉽지 않은 프로젝트라고 판단했기에, 이건 회사 밖에서 진짜 저렴한 비용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싶어 퇴사를 결정했던 것이구요. 


정말 웃기게도 퇴사를 할 때의 메일에 썼던 것처럼 2015년 퇴사 후에 몇년 동안 실험적인 게임을 만들다가 투자받았던 돈이 다 떨어져서 (안타깝게도 메일과는 달리 회사 빚은 1억 5천만원까지 졌었습니다) 작년에 다시 크래프톤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행인 건 이제는 크래프톤이 좀 여유가 있는 회사가 되어, 돌아와서도 딥러닝을 이용한 실험적인 게임을 계속 만들고 있다는 점이겠네요... 이제는 부끄러워서 '10년의 비전' 같은 이야기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떤 형태로든 게임개발을 계속하면서 지낼 수 있는 지금의 삶에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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