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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낙형 Dec 29. 2017

느리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일본

3년만의 도쿄 출장 소감 10가지

1. 예전에는 자주 출장을 갔었지만, 이번엔 3년만의 일본 출장인데 공항에 내린 뒤 도쿄 시내로 들어가면서 느낀 점은 거의 변한 게 없다는 기분. 후진국인 중국이나 베트남과는 달리 이미 고도로 성장해버린 일본이라서 그렇겠지만, 몇 년만의 방문인데도 마치 몇일 전 왔던 것 처럼 똑같은 느껴짐. 하지만 하루하루 지내면서 찬찬히 살펴보면 분명 변한 게 있었다. 이제는 지하철 안에서 LTE가 끊기지 않고, 그래서인지 지하철 안에서 게임 하는 사람이 많이 보임. 여전히 시부야역은 공사중이지만, 공사장의 위치가 달라져있고 새로운 건물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음. 느리지만 분명히 일본은 발전하고 있다.


2. 최근 일본 관련 세미나에서 들었던 키워드는 '노동력 부족 현상'. 그리고 그로 인한 임금상승과 인플레이션 발생으로 몇십년의 장기불황을 극복하며 경기가 활성화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현지의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실제로도 그러한 것 같다는 반응. 대학졸업자는 취업률 130% (복수 회사에 합격을 해서 그렇다함) 정도라고 하고, 40대 이상 관리직의 재취업률도 나쁘지 않다고 함. 물론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이 있긴 하겠지만, 거시적으로는 앞으로 최소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일본 경기 전망이 좋을 것 같다. 적어도 현지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더라.


3. 내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선보다 일본의 세금이 훨씬 세더라. 뭐 선진국이니까 세금이 쎌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실제로 어떤 세금을 얼마만큼 떼어가는 지 들으니까 입이 벌어지는 수준. 하지만 평소에 복지수당이나 공공시설 이용료 등이 잘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혜택받는 느낌이 있어서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다는 의견. 월급쟁이이던 시절에는 세금에 대해서 별 감흥이 없었는데, 회사를 창업하고 경영하면서 직접 세금을 계산해가며 납부해보니, 선진국들 세금은 정말 무시무시하다는 생각밖에는 안든다.


4. 일본이 잘 안바뀌는 나라라는 건 게임매출 순위를 봐도 알수가 있는데, 최근에도 여전히 탑4(몬스터 스트라이크, 페이트 그랜드 오더, 디즈니 쯔무쯔무, 퍼즐앤드래곤)가 장기집권하고 있다고 함. 아주 안바뀌는 건 아니고 가끔 급상승 해서 순위권에 오르는 게임도 있지만 새로운 히트 게임이 나오기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 그래서 최근에 리니지2 레볼루션이 출시되어 매출1위를 기록하고 그 이후로도 쭉 상위권에 있는 게 대단한 일이라는 평가. 비슷한 전략으로 마케팅을 집행하고 런칭했던 '데스티니 차일드'는 50위 안에도 못 들고 있다는 걸로 봐서, 넷마블이 그냥 운으로 일본시장에서 성공한 건 아닌 것 같다.


5. 넷마블의 과거 일본시장 히트 RPG로는 '세븐 나이츠'가 있는데, 완전 현지화 해서 런칭한 세븐나이츠와는 달리 이번 리니지2 레볼루션은 우려를 안고 한국버전 거의 그대로 시장에 런칭된 케이스. 마케팅을 잘 한 것도 있지만 아직 일본에서 3D 모바일 MMORPG가 시기상조이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실제로 런칭해보니 경쟁게임이 없어서 시장을 선점하고 순위권에 오른 것 같다는 분석. 반대로 '데스티니 차일드'는 일본에서 한물 간 올드한 게임시스템 때문에 주목을 못받는 것 같다는 의견. 게임 현지화에는 정말 정답이 없는 것 같다.


6. 넷마블이 리니지2 레볼루션을 성공적으로 런칭한 걸로 봐서, (일본 퍼블리셔도 넷마블인지 모르겠지만) 테라M이 만약 일본에 런칭을 하게 된다면 짭짤한 성과를 한 번 기대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리니지2 만큼 충성도 높은 IP는 아니지만, 그래도 엘린의 매력으로 어떻게든 화제를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일본 게임 순위 상위권에 그래픽 좋은 3D 모바일 MMORPG가 없기 때문에  너무 늦지 않은 타이밍에만 진출한다면 기대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도...


7. 매출 순위는 거의 바뀌지 않지만 무료게임 순위는 신작 게임이 출시될 때마다 크게 바뀌는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1위 타이틀이 '황야행동(荒野行動)'. 황야행동은 넷이즈에서 만든 '배틀그라운드' 짝퉁 모바일 게임으로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에는 Knives out 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됨. 진짜 중국 기업들의 과감한 베끼기와 속도는 혀를 내두를 정도. 우연이긴 하지만 지하철에서 둘이 함께 플레이 하고 있는 일본 학생을 발견할 정도였으니 무료1위의 위력을 실감.


8. 한편 그냥 PC 배틀그라운드는 한국만큼 존재감이 없는데, 그 이유는 일본 사람들이 거의 PC게임을 하지 않기 때문. 게다가 배틀그라운드의 사양도 높아서 왠만한 노트북에서 안 돌아감. 인지도가 없는 것도 당연. 하지만 짝퉁 '황야행동'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봐서 왠지 텐센트에서 정식으로 만든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일본에 런칭되면 대박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개발사는 넷이즈보다 한수 위인 텐센트!! 일본에서는 PC버전 배틀그라운드보다 모바일 배틀그라운드가 훨씬 더 잘 될 것 같은 예감.


9. 일본도 한국처럼 최근 IT업계의 이슈는 AI 스피커인 것 같음. 빅카메라같은 전자제품 마트에서 별도의 판매코너를 만들 정도로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었음. 그러나 현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라인의 클로바는 반응이 그냥 그런 모양. 대신 구글 홈이 엄청나게 프로모션을 하고 있고, 곧 아마존 에코도 진출한다고 함.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멜론이나 네이버뮤직과 연결해 판매되는 한국의 AI스피커들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라인뮤직이 잘 안되고 있기 때문. 일본은 음악 저작권이 복잡해서 아직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함. 애플뮤직이 1등이라는 것 같으니 AI 스피커들이 쓸모가 없어 잘 안팔릴 수 밖에. 반대로 아마존이 잘 되고 있는 일본은 쇼핑때문에 아마존 에코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함.


10. 일본 자체 개발 AI 스피커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는데, 좀더 생각해보니 스피커 뿐만 아니라 일본은 글로벌하게 성공한 모바일 서비스도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구글과 애플이 일찌감치 일본시장을 타겟으로 자사 서비스들을 일본어로 완벽호환해서 서비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는데, 실제로 구글재팬 같은 일본 스튜디오의 규모도 어마어마 하다고 들었음. 일본의 왠만한 IT회사가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서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 할테니, 정말로 일본 로컬에 최적화된 서비스 말고는 시도조차 되지 않는게 아닐까 싶었다. 넷플릭스도 IPTV 업체들에게 밀린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엄청 잘된다고 함. 한국시장이 작아서 글로벌 기업들이 신경 안쓰는 상황이 오히려 한국 IT기업들에게 생존의 기회를 주고, 그렇게 살아남은 기업이 성장하여 글로벌 진출까지도 바라볼 수 있으니 역설적으로 시장규모의 작음을 감사해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다.



최근 정치적으로는 한일관계가 험악하긴 하지만, 이래저래 여러면에서 반면교사가 되어 배울게 많다는 생각이 드는 나라가 일본이다. 몇 년 전만해도 이제는 더이상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방문하니 절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확실히 저력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에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자주 다녀오고 싶어졌다.


내년에 전세계적으로 가장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IT 기기는 아마도 AI 스피커가 아닐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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