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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씨 Sep 05. 2018

휴식을 위한 번거로움

기네스를 마셨다

이번 기사의 BGM으로 들어주시면 좋겠다.


바쁘다 바빠
 

인터넷에 가끔씩 뜨는 '친구 유형'이라는 거, 한 번쯤 본 적 있지 않나. 뭐, '맨날 늦는 친구', '소개팅해달라고 하는 친구', 이런 식으로. 그걸 나에게 적용한다면, 어쩐지 나는 내 주변인들에게 '항상 바쁜 친구'로 인식되어있는 듯하다. 하긴 근 몇 년간 좀 정신이 없긴 했다. 딱히 뭐, 대단한 일을 한 기억은 없는데, 왜 그리 바빴는지 모르겠다. 다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요는 내가 요즘 완벽한 백수라서, 무척이나 한가롭고, 친구들은 '너 바쁘잖아'라며 나한테 만나자고 연락을 안 한다는 거다. 하긴, 3년간 연락할 때마다 '아, 미안 지금 좀 바빠서....'라고 했으면 이런 결과는 자연스럽다. 근데, 여러분. 내가 완전 백수가 되고 친구들한테 놀아달라고 징징대면서 깨달은 게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무척 바쁘다. 


아니, 뭐 그리 당연한 이야기를 하냐고? 사실 걱정이 더 많다. 한때 '항상 바쁜 친구' 유형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바쁜 나날들은 성장할 수 있게 해주지만, 사람을 소모시킨다. 나만해도 과거에 비해 정신없이 성장했지만,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바쁜 시간을 보낸 이제서야, ‘조금 휴식할 필요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래서 엄청나게 진행형으로 놀고 있다) 목적이 뚜렷해지면, 우리는 쉽사리 경주마가 된다. 물론 미래를 준비하는 친구를 보면 나는 참 기쁘다. 괜히 ‘야야, 무리하지 마’라며 초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노파심에 걱정은 된다. 장기하가 부른 [느리게 걷자]의 가삿말처럼, 그렇게 빨리 가다가는, 죽을 만큼 뛰다가는 사뿐히 지나가는 예쁜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칠까 봐.


그래서 친구를 만날 때면, 나는 기네스를 마시자고 한다. 왜 기네스냐고? 글쎄 다 이유가 있다.


번거로운 기네스

기네스는 참 번거롭다. 맥주를 시원한 맛에 마시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사실 맥주라는 게 바쁘게 사는 여러분께 참 좋은 음료다. 시원하고, 탄산의 청량감은 기분마저 개운하게 한다. 게다가 맥주와 관련된 행동은 뭐 얼마나 호쾌한가? 캔으로 마셔도 되고, 병으로 마셔도 되고, 마실 때는 들이켠다. 이 정도면 정말로 ‘야, 수고했어! 앞으로도 열심히 하자!’라는 느낌이다. 정말로 마리오 카트나 카트라이더의 ‘부스터’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열심히 달릴 기운을 준다. 하지만, 기네스는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레이싱 게임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브레이크 같은 기능이랄까.


기네스는 꼭 잔에 따라 마셔야’만’한다. 아니, 이미 캔에 담겨있어서 그냥 입대고 마시면 되는 걸, 왜 굳이 잔에 따라먹을까? 설거지 거리도 늘어나고, 불편해 죽겠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마시면 떫고, 한약 맛나고.... 아무튼 마실게 못 되는 탓이다. 농담이 아니다. 우리 포토 형은 그냥 마시고 맛없어서 한 번도 안 마셨다고 했다. 하지만, 여러분 이 기사를 썼다는 건, 우리 포토 형도 마셔보고 맛있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그렇다, 여러분. 잔에 따라먹는 기네스는 맛있다. 왜 그런고 하니, 기네스는 본디 생맥주인 탓이다. 캔과 병은 그 생맥주 맛을 재현하는 도구일 뿐이고. 그러다 보니 따르는 방법도 따로 있고, 잘 따라진 한 잔을 부르는 이름도 따로 있다. 바로, '퍼펙트 파인트’라고 한다.

여기서 배우는 퍼펙트 파인트를 만드는 법.


0. 냉장고에 차가워질 때까지 넣어둔다.

1. 기네스 전용잔을 든다.

2. 45도 각도로 잔을 댄다.

3. 하프 문양에 다다를 때까지 따른다.

4. 119.5초간 기다린다.

5. 남은 공간을 꽉 채워준다.

6. 퍼펙트 파인트를 즐긴다.


무려 6개의 과정이나 된다. 실제로 기네스 공장에서 가르치는 따르는 과정은 더 길다고 하니, 간략하게 해 준 것에 감사하자. 다 따랐다면, 빈 기네스 잔/병을 흔들어보자. 안에 흔들리는 공 같은 게 들어있다. 이물질이 들어있는 게 아니라 ‘위젯’이라고 하는 물건이다. 생맥주로 마시지 않아도 그 맛을 재현하기 위한 기네스의 노력이다. 아무튼, 맥주 한 잔 마시려고 한 잔 따르는데 2분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기네스는 탄산이 아닌 질소 거품이라 청량감도 약해서 한 번에 쭉! 하고 들이키게 되는 술도 아니다. 맛도 양주처럼 부드러운 맛이지, 맥주처럼 강렬한 맛이 아니고. 그러니까, 기네스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리는 술이라는 이야기다.


편의점에서 마셔도 기네스는 잔에 따라 마셔야한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 기네스를 마신다. 열심히 사는, 혹은 바쁜 친구들은 가끔씩 멈춰야 할 때를 놓치곤 한다. 바쁜 건 좋지만, 뒤돌아볼 시간조차 없는 건, 글쎄 그다지 좋아뵈지는 않는다. 여러분이 방금 들은 노래처럼, 예쁜 고양이 한 마리 볼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앞에서 ‘일반 생맥주는 레이싱 게임의 부스터 같고, 기네스는 브레이크 같다.’라고 했는데, 레이싱 게임에서는 브레이크가 쓸모없을지 몰라도, 인생에서는 아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는 그냥 사람을 잡는 차다.


기다릴 테니 언제든 찾아와.

지쳤을 때는 기네스를 마시자

여행자 보험이 있으면, 여행 가서 마음이 편해지듯, 믿는 구석, 돌아올 곳이 있으면, 사람은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다. 우직한 기네스는 여러분이 믿을만한 훌륭한, 돌아올 곳이다. 내가 바빠서 조금 잊고 있더라도, 걱정이 없다. 기네스 공장은 9,000년간 임대되어있고, 스스로의 전통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꾸준히 맛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만들 테니 맛이 변할리 없고, 예전부터 이어온,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을 계속 만들어 낼 테다. 


여러분, 바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대신 우리 잠깐잠깐 쉬어가자는 거지. 그 정도 여유는 있어야 또 열심히 달릴 수 있다. 열심히 달린 것 같다면, 다른 친구에게 기네스나 한잔 하자고 하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백수인 나 역시, 내 친구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바쁘지 않을 때의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친구야, 기네스나 한 잔 하자.

잘 마셨습니다.

사진 / 김윤우(insta @yoonookim)

글 / 신동윤 (azmoady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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