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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씨 Aug 29. 2018

나의 생존 투쟁

게임 패드를 쓰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다

공부를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하다못해 밥을 먹을 때도 우리는 앉아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 통계를 들먹여보자면, 한국인은 하루에 3분의 1, 그러니까 대충 8시간을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글쎄, 내가 자는 시간은 하루에 8시간이 되지 못하니, 자는 시간보다 앉아있는 시간이 분명히 더 길다. 그리고 아마도 여러분도 마찬가지일테고. 하루 웬종일 앉아있는 탓일지,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지, 몸뚱이가 점점 아프다. (쓸 일이 많지 않지만 소중한) 허리도 쑤시고, (내 머리가 크고 무거워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목도 뻐근하고, (늘 혹사당하고 있는) 손목도 시큰거린다.


20대 중반, 이 꽃다운 나이에 아프기엔 어쩐지 영감님같은 곳들만 아프다. 이거 괜찮은가 싶어서 병원을 찾아갔다. 나는 겁쟁이인 탓이다. 거북목에 터널 증후군이라고 했다. 여러분도 나와 마찬가지로 허리가 쑤시고, 목이 뻐긴하고, 손목이 시큰거린다면 컴퓨터를 하는 게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자세가 엥간히 좋지 않고서야, 컴퓨터를 하는 건 몸에 부담이다. 키보드를 치는 건 손목을 꺾는 형태라서 터널증후군을 불러오고, 모니터를 보는 건 허리 통증과 거북목을 준다. 우리 인류는 서있거나, 누워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물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초등학교 때 배웠다. 인류는 서있기 위해 S자형 척추를 가진다고. 한 100년정도는 앉아있었으니 앉아있는 방식으로 진화할 때도 됐을 텐데, 인류의 진화는 참 느리고 게으르다.

키보드를 죽입시다. 키보드는 나의 원수

어쨌건, 키보드로 공부하고 일하는 나, 그리고 여러분은 모니터는 몰라도 키보드에서 독립할 필요가 있다. 자판을 반드시 쳐야하는 공부나 일이면 몰라도, 우리, 정신을 쉬게하는 게임을 할때는 몸도 조금 쉬게 하자. 그래서 컨트롤러, 그러니까 게임 패드를 샀다. 여러분, 이건 변명이 아니다. 나의 건강을 위한 생존 투쟁이다.


게임을 하는 자세

게임 좋아하시나? 사실 나는 별로 안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도 PC방도 별로 안 갔고, 성인이 되고 난 뒤로는 수강신청하러 간 거 빼고는 가지 않았다. 근데, 이런 나도 게임을 하기는 한다. 사실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엄청 재밌지도 않은데다, 그다지 티가 안난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드라마틱하고, 내가 이룬 성취에 대한 보상이 바로바로 떨어진다. 재밌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적어도 정신은.


혹시, 게임하는 스스로의 자세를 본 적이 있으신가. 아마 대부분은 본 적이 없으실거다. 화면보기 바쁜데, 내 몸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옆에 전신 거울이라도 있지 않는 한. 근데, 여러분이 게임을 하는 자세는 생각보다 많이 나쁘다. 정신은 쉴 수 있을지 몰라도,  몸은 아니다. 오히려 더 혹사당한다. 키보드는 필연적으로 화면과 맞닿아있을 테고, 거기에 손을 올리면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대는 자세가 완성된다. 게다가 게임에 몰입하며 점점 화면에 얼굴을 들이대다보면? 거북목과 터널증후군을 위한 완벽한 자세가 완성된다. 축하합니다. 여러분, 업적을 달성하셨어요.



업적! 거북목 획득!

업적! 터널증후군 획득!


자, 이제 게임패드가 등장할 차례다. 게임 패드는 손에 쥐고 하는 물건이다. 손목을 가로로 두지 않고, 세로로 두기 때문에 터널증후군에서도 자유롭다. 거기다 키보드처럼 바닥이 필요하지 않다. 원한다면 모니터와 거리를 둘 수도 있고, 사실 책상에 손을 두고 하는 것보다는 팔걸이나, 몸에 팔을 늘어놓고 플레이하는 게 더 편하다. 자연스럽게 몸은 뒤쪽으로 기대게 된다. 의도적으로 허리를 꽂꽂이 펴고 있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키보드에 손을 얹고 게임을 하는 것보다는 허리와 목에 부담이 덜하다. 못 믿겠다고? 그럼 직접 한 번 사진을 찍어서 내 자세가 어떤가를 보자. 카메라 의식하고 찍지말고, 동영상으로 게임을 하는 중을 찍는 게 좋다.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손에 휴대폰이라도 쥐고 앉아서 찍어보자. 아니, 정말로, 다르다니까.


게임에 대한 자세

패드가 여러분에게 주는 건 좋은 몸 자세만이 아니다. 게임을 하는 자세만이 아니라, 게임에 대한 자세도 바뀐다. '고작 게임하는데 뭐 무슨 게임에 대한 자세까지야....'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여러분이 하루 중에 최선을 다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 안도현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게임은 좋아서 하는 걸텐데, 좋아하는 일도 존중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존중할 수 있을까? 그다지 납득이 안된다면 게임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니, 우리도 게임에게 조금은 예의를 갖춰주는 걸로 하자. 게임아, 나는 너만을 위한 장비를 따로 쓴단다 라고. 혹시 모른다. 열정과 노오력을 합치면 온 우주가 나서서 게임 실력을 향상시켜줄지도.


사실 온 우주가 나설 필요도 없이 게임 패드를 쓰면 게임 실력이 좋아질 수 있다. 단순히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져서 손목을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게임 패드드 그립감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어쩌면 내 손은 이걸 쥐기 위해 만들어진게 아닐까 싶다. 나는 아직도 처음으로 X-box 패드를 손에 쥐었을 때의 감각을 잊지 못한다. 더구나 상하좌우로 이루어져서 움직임이 8개 조합밖에 나오지 않는 키보드와는 달리 게임 패드는 아날로그 스틱을 이용한다. 즉, 여러분이 돌리는 방향대로, 360도로 움직인다. 완벽하게 내가 생각한대로 움직인다는 건, 내 캐릭터가 완벽한 나의 아바타가 된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앞뒤좌우(←↑→↓)로만 움직이는 사람은 없으니까. 

게임 실력과는 상관이 없을지라도, 몰입감 역시 한 몫한다. '게임패드 = 몰입감 상승'이라는 수식이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리는 게임을 할 때, 시각과 청각만을 사용한다. 결국 타격감이라는 촉각적인 영역은 어쩔 수 없이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서 비슷하게 끌어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당연히, 그건 완벽하지 못하다. 내가 여러분한테 백날 내가 쓰는 향수가 무슨 냄샌지를 설명해봐야 직접 맡아보는 것만 못한 것처럼. 하지만, 게임 패드는 시각과 청각에 촉각을 더한다. 사용하는 감각이 하나 추가된다는 건,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내가 쏘는 총알 한 발 한 발을 느낄 수 있고, 내가 맞는 데미지가 손으로 느껴진다. 게임은 더 현실 같아지고, 더 치열해질테다. 


물론 게임패드가 만능은 아니다. 배그 같은 FPS와 스타같은 RTS, 채팅칠 일이 많은 온라인 게임은 게임패드로 하기 어렵다. 물론, FPS는 앞서 말한 손맛이 있는데다, 게임패드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으니, 미리 익숙해져도 좋다. 총을 쏘는 반동이 진동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건, 한 발 한 발에 긴장감을 심는다는 이야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변명이 아니다

요즘 나오는 많은 게임들은 (특히 스팀 게임은 거의 다) 게임패드를 지원한다. 그리고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앉아서, 허리와 목, 손목을 혹사한다. 내가 그렇고, 아마도 여러분도 그렇다. 일과 공부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계속 이어가야한다. 우리는 항상 더 좋은 자세를 찾기 위해, 더 건강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당연히 게임을 할때도.


어쩌면 여러분에게는 이 글이 게임 패드를 사기위한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건은 나의 생존투쟁이다. 그래도  이 글이 괜찮은 변명으로 보인다면, 여러분이 게임 패드를 살 변명으로 써먹어도 좋다. 가자. 가서 당장 게임 패드를 사자.


제작 / 

사진 : 김윤우 (Insta @yoonookim)

글 : 신동윤 (azmoady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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