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씨 Aug 20. 2018

나는 내 킨들이 고장나면 좋겠어

킨들 페이퍼화이트

십시일반 킨들

어떤 선물이 좋은 선물일까? 자고로 최고의 선물은 현찰이라지만, 선물로 돈 봉투를 주는 건 아무에게나 할 수 없다. '교수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하면서 돈 봉투를 드렸다간 교수님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그러니까, 김영란법 말이다) 위반으로 구속되실거다. 그러니까 선물을 고를 때는 '상대방이 자기돈 주고 사기는 아까워할 법한데, 갖고는 싶어할 물건'을 고르는 게 제일 좋다. 나는 선물주고 욕먹을 일이 없고, 상대방은 갖고 싶어하는 물건을 갖게 되었으니 모두가 기쁘다.


나와 내 고등학교 친구들은 일종의 생일 품앗이를 한다. 딱히 축하를 해주는 건 아니고, 적어도 생일날 선물 하나 못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생일인 친구에게 선물을 사준다. 물론, 친구 여럿이서 생일인 나를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우리 동윤이가 뭘 갖고 싶어할까?'라고 고민하는 훈훈한 미담이면 좋겠지만, 내 친구들의 감수성은 그렇게 뛰어나지 못하다. 생일인 사람이 뭘 갖고 싶다고 말하면, 가격을 알아내서 돈을 보내준다. 맞다. 구매하는 건 생일자가 해야할 부분이다. 아, 물론 돈을 떼먹을지도 모르니 구매한 물건을 인증도 해야한다. 정말, 우리의 우정은 탄탄하고 아름답다. 아무튼, 킨들은 그렇게 내게 왔다.

인증을 몰라서 인중이라고 하는 건 아니리라 믿는다

왜 킨들?

우선, 왜 킨들을 샀는지 짧게 이야기를 하자. 한국의 전자책 리더기에는 알라딘과 Yes24에서 구매가능한 한국epub의 크레마와 리디북스에서 구매가능한 페이퍼가 있다. 하지만, 배터리나 해상도(체감 가능한 수준), 혹은 디자인에서 아쉬운 점이 있거나, 너무 비쌌다. 참고로 킨들 페이퍼화이트는 세일가 79.99 달러에 샀다. (걱정말자. 아마존은 세일을 무척 자주한다) 물론 한국에 정시 출시된 물건이 아니기에 번거로운 점이 있다. 한글 책을 넣는 방법이라던가. *(주석 참고) 하지만, 여러분 책은 매일 새로 사서 넣지 않지만, 배터리와 해상도, 디자인은 정말 두고두고 거슬린다.


게다가 아마존의 고객 정책도 한 몫한다. 나는 잠금화면에 광고가 나오는 대신 가격을 깎아주는 모델을 샀는데, 단순히 아마존 고객센터에 문의해서 광고 없애다랄고 하는 것 만으로 광고를 없애준다. 사실상 그냥 그 가격인 셈이다. 게다가 1년간은 킨들이 고장나면 새제품을 받고나서 반납하는, 참으로 만족스러운 교환방법을 제공한다. 와우.

킨들, 좋을까?

앞서 말했다시피, 선물은 '갖고는 싶어하는데, 돈쓰기는 아까워할 물건'이 최고다. 당연히 내가 선택한 선물의 기준도 내가 너무 갖고 싶은데, 솔직히 돈주고 사기는 좀 아까운 물건이었다. 딱 킨들이 그랬다. 전자책 리더기가 좋다고는 하는데, 글쎄, 써본적도 없고. 내가 본 전자책 리더기라고 해봤자 알라딘에서 본 크레마(한국 epub에서 만든 전자책 리더기다)뿐이었고, 얼핏 본 정도로는 이게 뭐가 좋은 지 당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내 방은 책으로 가득차 청소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책이라는 게 다른 잡동사니랑 같이 서랍에 처박을 수 없는 종류의 물건이다. (세상에 책장이라는, 책만 꽂아두라고 만들어진 수납 가구가 괜히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책을 읽을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아이패드나 아이폰으로 읽자니 눈이 너무 시리다. 책의 배경색은 흰색이라 더 눈에 부담이 크다. 그러니까 전자책을 써볼까.... 하던 참이었다. 사실 (실패할 까봐) 돈이 아까워서 못 사던 중이었으니, 딱 좋은 기회가 온거다. 게다가 왠지 '전자책'이라니 멋져보이잖아. 그래서 아마존에 들어갔고, 킨들을 손에 넣었다. (배대지를 사용해서 직구해야했다)


킨들을 사용하는 법은 어렵지 않다. 전원을 켜고 아마존 계정을 등록하면 끝이다. 그러면 계정에 들어있는 책들이 자동으로 리스트에 뜬다. 웹에서 전자 책을 구매하면 아이디에 들어간다. 홈 화면에 있는 스토어에서 바로 구매할 수도 있다.*


처음 킨들로 책을 읽으면 신기함이 앞선다. 화면이 흑백이다. 뭐 어쩌라고 싶겠지만, 요즘같은 전자제품의 격전기에 흑백 화면은 흔치 않다. 난 다마고치 이후로 흑백 화면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여러분, 그게 킨들의 장점이다. 눈이 전혀 시리지 않다. 이건 '읽을 때 쓰는 기기'니까 눈이 안 아프다는 건 중요하다. 아이폰 화면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빛을 낸다는 느낌이라면 킨들의 화면은 그냥 화면에 글자만 둥둥 떠있는 느낌이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글을 읽는 것보다 확실히 눈이 편안하다. 전자책의 e-ink가 휴대폰 액정의 LCD보다 눈에 좋다는 이야기는 루머라고 하지만, 어쨌건, 직접 눈으로 빛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반사되는 빛을 통해서 보니 눈이 편하다. 종이로 읽는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글쎄, 이것보다 비슷한 경험을 줄 수 있는 전자제품을 본 적은 없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그 어딘가

킨들을 이해하는데, 단순히 공간을 아껴주고, 책을 대체하는 물건이라고만 보면 안된다. 킨들은 조금 더 복잡한 물건이다. 굳이 말하자면, 디지털과 아날로그, 그 중간 어딘가에 완벽하게 정착한 물건이라고나 할까.


인간은 책을 언제부터 썼을까? 나무를 쪼개서 글을 적던 시기부터 (두루마리형태라서 책이라고 하긴 어렵긴 하지만) 책으로 친다면, 3300년째 우리는 책을 물리적인 형태로 보아왔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아날로그 형태로. 세상에, 3300년이나 봐오던 방식과 새로나온 방식 중 어느 쪽이 더 편할지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킨들도 당연히 안다. 그래서 감히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책을 대체하려고하진 않는다. 위에서 말한 이야기를 조금더 정리하자면, 킨들의 화면을 보고 있자면 화면보다는 종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 뿐일까? 그럼 이렇게 까지 설레발을 치진 않는다. 화면을 넘기는 감각도 종이를 넘기는 감각을 재현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현대과학의 위대함에 감탄하게 될정도는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은, 바로 화면의 질감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어려우시다면, 이 글을 읽고있는 여러분의 모니터, 태블릿, 휴대폰 화면을 긁어보자. 미끌미끌할 거다. 그 다음에는 책을 꺼내 종이를 긁어보자. 걸리는 수준까진 아니어도, 액정처럼 미끌미끌하진 않을거다. 감이 잡히시나? 맞다. 킨들의 화면은, 종이처럼, 거칠거칠하다. 세상에 맙소사.


그럼 디지털은 포기했을까? 인류가 아무리 3300년동안 종이로 책을 만들어왔더라도, 디지털 시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진입한 뒤에 우리의 생활은 무척이나 편리해졌다. 애초에 아마존은 IT 회사다. 디지털의 편리함 역시 챙긴다. 책을 보면 가끔 영, 보기 불편할 때가 있다. 글자가 너무 작다거나, 자간(글자간 간격을 말한다)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있다거나, 행간(줄 간격을 말한다)이 너무 좁아서 눈이 아프다거나. 우리는 그런 건 온전히 출판사의 디자이너와 편집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알아서 어련히 이쁘게 해주겠거니.... 하지만 여러분, 킨들을 가진자면 그럴 필요 없다. 내가 가장 보기 편한 형태로 바꾸면 된다. 인디자인 같은 건 필요가 없다. 쉽게, 빠르게, 착착착. 손에 잡히는 그립감도 잊지말자. 아이폰이나 갤럭시가 그립감을 고려해서 출시되듯, 킨들의 그립감 역시 장난이 아니다. 손에 착- 하고 달라붙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립감이 좋다고 홍보하는 책을 본 적은 없으니, 책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런 모든 것들, 한번만 내게 맞추면 쭉 이어진다는 점이 정말.... 생각치 못하게 좋다.


킨들은 욕심쟁이인 기계다. 아날로그와 디지털를 다 잡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에게 최적의 만족감을 준다. 킨들이 좋냐고? 여러분, 정말로. 굳이 내가 말해야하나

킨들은 선물용이 아니다.

킨들은 선물로 사는 물건이었다. 적어도 사기전까지는 그랬다. 솔직히 내돈 주고 사긴 아까웠다. 킨들 산다고 책이 공짜인 것도 아니고, 어차피 책은 책대로 사야하는 건대. (이북이 종이 책보다 조금 더 싸긴 하다). 하지만 여러분, 나는 내 킨들이 빨리 고장나길 기다리고 있다. 어서, 다음 세대가 갖고 싶어졌다. 물론, 그때는 내 돈을 주고 살 거다. 뭐하고 있나 여러분. 아마존에 들어가지 않고.


제작 /

사진 : 김윤우(insta @yoonookim)

글 : 신동윤 (azmoadys@gmail.com)






* 한국에 정식 출시되지 않은 제품이다보니 한글 책을 보려면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한다. 한글 책을 보지 못한다는 루머가 있는데,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산 전자 책은 변환해서 넣을 수 있다. (킨들은 이북 표준 규격인 .epub가 아닌 독자 규격 .mobi를 사용하는 탓이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이 과정이 영- 불편하다면 크레마나 리디북스를 사용하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밤 새는 당신을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