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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씨 Sep 17. 2017

나는 이제 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

텐가 컵 스탠다드를 써봤다

저 토끼가 미스터 플레이보이다. 이젠 콘돔으로 더 유명하지만.

나는 찌질이다.

플레이보이 코리아가 창간호를 냈다. 나온다는 사실은 미리 들어 알고 있었고, 당연히 사려고 생각했더랬지만, 아무래도 동네 서점에서 플레이 보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힌 잡지를 사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미스터 플레이보이 로고가 잡지보단 콘돔 박스에 박혀있는 게 더 자연스러워보이는 우리 세대에겐 더더욱 그렇다. 결국 예정에 없던 음식 잡지를 한 권 더 끼워샀다. 점원이 웃는다. 신경쓰인다. 그렇다. 나는 찌질하다.

단골 서점에서 찌질함을 잔뜩 드러내버린 충격은 생각보다 크다. 잡지만 다루는 작은 서점이라 손님이 적은 곳인데, 앞으로 플레이보이를 살때마다 나의 찌질함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간신히 찾은 마음에 드는 곳인데, 이렇게 잃을 수는 없다. 결국 다시 들어가 다른 ‘야한 잡지’를 한 권’만’ 사며 ‘나는 당당한 사람입니다’를 드러내려 애썼다. 맞다. 나는 생각보다 더 찌질하다.

집에 와서 잡지를 펴보지만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지금은 하나하나 뜯어볼 정신적 여유가 없다. 점원끼리 내 얘기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대충 대충 넘기다 보니 눈에 띄는 단어가 있다. 섹스 토이. 그러고 보니까 선물받은 텐가가 하나 있었지? 어쩐지 부끄러워서 써보지는 못했다. 아니, 세상에. 스스로도 눈치를 보는 찌질함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홧김에 텐가의 포장을 뜯고 노트북을 연다.

어우야. 아니, 세상에 잠깐만. 엄마야 이게 뭐니.


미리 말하지만, 나는 텐가로부터 어떤 금전적인 지원이나, 제품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혹시라도 텐가 대표님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몇개 보내주시면 아-주 쾌적할 것 같다. 물론 농담이다. 혹시라도 진담으로 받아들이실까 두렵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


손을 이용한 오르가슴을 위한 레이스

사실 자위에 사용되는 도구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손과 생식기 뿐이다. 물론 세상에는 (눌러대거나, 비벼대거나, 흔들어대거나) 수많은 방법 모델이 있지만, 뭐 어떻게 조물딱거리건 손이랑 생식기만 있으면 된다. 남자의 경우는 대개 흔들어대는 모델을 차용한다. 효율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자위 방법이다. 그렇게 열심히 흔들어대다, 어느 순간 오르가슴에 도달한다. 정말로 팟! 터져나오는 쾌감을 맞이한다.


위 과정이 기본적인 루틴이다. 시청각 자료는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만, 필수는 아니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생각보다 대단한 탓이다. 방법 자체는 변화를 주기 어렵다. 손에서 벗어난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마니악하고 그다지 청결하지도 못하다. 더구나 상당수의 경우 준비 과정도 번거롭기까지 하다. 거기에 사정을 기점으로 오르가슴을 맞이하는 기이한 남성의 생리 탓에 자위라는 과정 자체는 어쩐지 지루하고 부끄러운 과정이 된다. 섹스가 아닌 자위라면 러닝타임이 긴건 전혀 자랑거리가 아니다. 그냥 손을 가능한 빠르게 운동시켜 이 부끄럽고 지루한 과정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깨닫는 방법이다.


사용해 본다.

텐가를 사용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포장을 벗겨내고, 스티커를 떼면 끝이다. 그럼 준비 끝이다. 이제 하단의 뚜껑을 빼고 소중한 부분을 구멍으로 넣으면 된다. 구멍이 좁아 보일 수 있겠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부드럽게 쑤-욱 들어간다. 굳이 그 모습을 표현하지면, 이미 버려져 우주를 떠돌던 우주 정거장을 되살리기 위해 기체가 도킹하는 모습과 같다. 둘다 곡선을 살린 아름다운, 우주를 닮은 외형을 가졌고, 장착된 대상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착용해보고 나면, 텐가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를 알 수 있다. 본능에 철저히 기반한 물건이지만, 본능에 따라 움직이도록 두진 않는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자위라는 과정은 빠르게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해 무시되고 생략되기 쉽지만, 텐가는 이 과정이 얼마나 소중해질 수 있는 지 알려준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사용하는 과정도 제법 기분이 좋다. 큰 오르가슴은 아니지만, 꾸준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오우, 오오우.


그냥 '와 손보다 기분좋아요!'라면 내가 이렇게 신나할 리 없다. 텐가 컵 모델은 겉이 플라스틱이라서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긴 어렵지만, 어쨌건 돌리거나, 특정부위(예, 귀두)만 자극하는 테크닉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어떤 원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돌리는 것도 제법 자극이 있다. 오---우. 이것말고도 또 있다. 이건 정말 어떻게 되는 건지 아예 이해할 수가 없는데, 어쩐지 사용하다보면 점점 따듯해진다. 이게 마찰열 때문인지, 내 체온이 전해진건지 모르겠는데, 일반적인 러브젤이나 로션으로 하는 자위의 차가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그래선지 점점 텐가로 하는 자위는 그냥 '부끄러운 자위'가 아니라 애정을 갖고 과정에 집중하는 자위가 된다. 물론 꾸준히 강조하지만, 비교할 수 없는 쾌감도 한몫한다.


텐가는 인간을 완성시키는 물건이다. 모델은 나다.


텐가를 사용해야 비로소 완전해진다.

지금껏 사람들에게 '텐가를 사용하고 나는 비로소 완전해졌어.'라고 해왔는데, 사실 반쯤은 진담이다. 텐가에서 얻은 쾌감때문에 완전해졌다는건 아니고, 그보다는 사실 좀 더 복잡한 이야기다.


텐가는 자위의 진정한 의미를 보인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손으로 하는 자위에서 사정을 제외한 부분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텐가를 사용하면, 과정부터 사정까지 전과정이 유의미해진다. 끝만 중요한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이 평등해진다. 자위라는 걸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아, 이런게 진짜 자위라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자위를 이해한 순간 나의 자위는 완전해진다. 인간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처럼. 호호.


위에서 내가 텐가의 외형이 우주를 닮았다고 했는데, 사실 이게 텐가의 특이점이다. 대부분의 오나홀은 정말 여성을 본따서 만든다. 약간 토르소에 가까운 모양인데, 사실 심미적으로 무척이나 혐오스럽다. 적어도 난 좀 무섭다. 우머나이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남성기를 떼온 모습이다. 난 사실 이것도 좀 무섭다. 아무튼, 텐가는 그렇지 않다. 특정 성별을 지정하지 않는다. 그냥 텐가는 텐가일뿐, 여성을 연상시키지도, 남성을 연상시키도 않는다. 별거 아닌 것 같을 지 몰라도 이건 크다. 성별을 연상시키는 토이를 사용하며 얻게될 무의식적인 대상화를 막는다. 정말 텐가는 어메이징하다.


성별을 본따지 않은 외형은 소수자들에게도 유의미하다. 텐가 이전까지 이성과 관계를 맺지 않는 동성애자, 무성애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은 섹스토이를 사용하면 강제로 이성을 연상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강제로. 기득권에 의한 강제성이 갖는 의미는,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는 여러모로 참 크다.


이제 손으로 돌아갈 수 없다.

텐가를 사용하기 전까지의 오른손이의 은혜를 잊으면 안된다,

가치들을 모른다고 해도 텐가는 대단한 물건이다. 분명 오르가슴을 원해서 소비하건만, 착용하는 순간, '이래도 빨리 움직이고 싶냐?'라고 묻는다.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조용히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 밖에 없다. 물론 내 오른손에게는 참 미안할 따름이지만, 이제 손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단언컨데, 나의 자위사는 텐가를 맞이하기 전후로 나누어진다.


여러분, 텐가를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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