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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씨 Oct 06. 2018

아아, 동묘, 동묘

찬 동묘가 - 동묘를 찬양하는 노레

"삼국지 최애캐는?"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높은 확률로 나오는 건, 주로 관우나 제갈량이다. 아쉽게도 주인공인 유비는 찌질하고, 메인 라이벌인 조조는 음험하며, 메인 조력자인 장비는 성급하다. 그럼 관우와 제갈량 중, 삼국지 이상형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사람은 누굴까? 바로 삼국지의 패션 리더, 관우다.


관우는 분명 멋쟁이였음에 분명하다. 비록 삼국지 연의에 묘사되는 외관은 관우의 얼굴뿐이다. 홍시같이 붉은 얼굴, 기름을 바른듯한 입술, 누에가 누운 듯한 눈썹. 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립밤을 바르지 않으면 입술은 촉촉할 리 없고, 눈썹을 칠하지 않으면, 눈썹은 빈 곳이 있다는 것을. 그래, 이 남자. 분명 립에는 립밤을 바르고, 눈에는 아이브로우를 칠했다. 증거는 이것만이 아니다. 2척이나 됐다던 수염은, 지금으로 바꾸면 약 30cm를 자랑하는데, 수염이라는게 여간 관리하기 불편한게 아니다. 조금만 방치하면 금방 제멋대로 자라버리는데, 우리 관공의 수염은 항상 정돈된 상태를 유지했다고하니, 분명 미용에 관심이 많은, 그런 이였을테다. (심지어는 수염을 담는 비단 주머니도 따로 있었다고 한다! 크으으으으으으- 패션리더.)


그런 관공은 죽어서 아름다움의 신이 아닌, 싸움의 신이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좇는 관우의 기운은 사라지지 못했나보다. 관우의 사당, 동묘는 모든 세대를 위한 구-제 패션의 거리가 되었다. 


아아, 동묘, 치열함

 

동묘는 전쟁터다. 구제시장에 전쟁터라는 비유를 들면 하면 흥정 전쟁을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다. 물론 구제 시장에서 흥정은 중요하지만, 흥정 자체는 전쟁이라기 보다는 재미요소에 가깝다. 게다가 어쩐지 요즘에는 사람도 많이 오고 하는 탓인지, (이른바 쇼-부라고 부르던) 흥정 본 기억이 없다. 혹시나 처음으로 구제 시장에서 흥정이 해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구제 흥정용 기본 멘트는 '어차피 세탁해야하는데, 세탁비로 만원만 빼주세요."나, "사장님, 제가 하루이틀 온 것도 아닌데, 좀 싸게 주세요.", "친구들 데려올게요. 아, 진짜로. 약속 약속." 등이 있다. 행여나 '현금으로 하면 깎아주시나요?' 따위는 묻지 말자. 동묘에서 카드를 들이댄다는 건, 초보자라고 홍보하는 것과 같다. 무조건 현금가다.


그럼, 뭐가 전쟁일까. 첫째, 동묘는 바로 브랜드의 각축장이다. 동묘에는 (후술하겠지만) 다양한 세대가 방문하는데, 세대별로 조금씩 매장이 다르다. 물론 섞여들기도 하지만, 대개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재고 반납이라는 개념이 없어, '물건은 다 팔아야한다'는 구제 매장의 슬로건이 합쳐지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완벽한 시장경제를 볼 수 있다.


자, 간단한 이야기다. 예를들어,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매장은 높은 확률로 슈프림과 칼하트를 취급한다. 그리고 그 둘이 그 매장에서 가장 비싼 브랜드가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많이 찾고, 많이 팔리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브랜드라도 일반적인 20대가 관심이 없으면 안 팔린다는 거다. 물론, 이런 저런 브랜드를 많이 아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기쁜 소식이다. 정말이다. ami 청자켓을 15,000원에 사고, GMBH의 셔츠를 10,000원에 살 수 있는 곳은 정말 드물다.


동묘에서 일어나는 두 번째 전쟁은, '디자인 전쟁'이다. 아니, 세상에 옷이 디자인 전쟁이 아닌 곳이 어딧어! 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동묘의 '브랜드에서 가격을 얼마로 정했건 간에 내 알바 아니고 유명 브랜드가 아니면 균일가' 정책을 직통으로 맞으면 가격경쟁력은 사라지기에 디자인만 보게 된다. 게다가 구제 특유의, '구제는 어디 브랜드건 그냥 구제'라는 vibe를 생각하면, 정말로 브랜드는 알바가 아니다. 예시를 들어 보자.


'야, 너 그 청바지 어디 꺼야?'

'아, 이거? 구제야. 구제.'


이게 가장 흔한 구제의 브랜드 인식이다. 그렇다보니, 구제 시장 언저리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다보면, 팔리는 디자인이라는 게 분명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본디 구제시장이 (물론 그 전부터 어르신들은 이용하셨지만) 소수의 젊은 패피들에게만 이용될 때는, 좀 특이한 디자인도 제법 있었던 것도 같지만, 이제는 특이한 디자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 팔리는 디자인과 약간의 디테일의 전쟁터다.


아아, 동묘, 세대간의 대화합


동묘의 어메이징함은 이런 점만이 아니다. 동묘는 세대간의 대화합이 이뤄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동묘라는 공간이 골목 골목은 많을지언정, 장소 자체가 넓은 공간이 아니라서 나이대별 가게가 죄 뒤섞여있다. 게다가 구제라는 물건은 특정 계층을 목적으로하는 물건이 아니고, 특정한 물건만 있는 것도 아니기에(손때타면 다 구제다) 어르신들에게도, 젊은이들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다. 물론, 찾는 물건만 있고, 그걸 찾아볼 열정만 있으시다면.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세대간의 대 화합이 이뤄진다. 식당에 가면 10대 여학생이 70대 할아버지 옆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고, 좌판 매대에 가면 20대 남학생이 40대 아주머니와 옷의 소유권을 갖고 다투곤 한다. 이념갈등의 시대를 지나, 세대갈등의 시대라고 하는 현 세태에 세대를 초월하는 이런 훈-훈한 모습이라니. 세대갈등이 이뤄지는 모든 곳은 동묘의 구제시장을 보고 배워야만 한다. 구제 러버는 나이, 인종, 성별에 이를 것 없이 모두 평등하다.


이런 점이 바로 바로 동묘가 좋은 점이다. 동묘에 가면 모두가 좋은 구제를 건지겠다!는 한 목적을 갖고 움직인다. 인터넷에서 보던 세대갈등은 보이지 않는다. 가끔씩 페이스북에서 댓글창을 보면, 어떤 사람은 대화가 불가능한,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런 느낌이 들 때면, 동묘를 가보자. 나와 다르지 않은, 분명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거다. 뭐, 그런 느낌따위 들지 않는다면, 이쁜 구제나 챙기러 가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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