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어디에 두라고요? 발보다 뒤에요?
나는 원래 몸이 좀 뻣뻣하고, 근육통도 잦다. '몸이 쑤신다'는 표현을 초등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태어나서 몸을 앞으로 구부려서 손과 발이 닿아본 적도 한 번도 없는, '내추럴 본 쑤시는 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범생이처럼 학창 시절 내내 앉아서 공부만 하고, 군생활의 절반을 행정병 업무를 보다 보니 허리에 약한 디스크 증상도 생겼다. 후후. 자랑스럽게 말하건대, 세상에 그 희귀하다는 공강 시간이라고 마시지 숍에 가서 마사지받고 오는 대학생이 바로 나다.
그럼 몸을 좀 풀어주는 운동이라도 좀 해야 하는데, 즐겨하는 운동이라는 게 죄다 순간적으로 힘을 짜내서 해야 하는, 근육에 긴장이 듬뿍 들어가는 운동들이다. 라켓볼, 암벽 등반, 하키, 골프(생각보다 근육에 긴장이 많이 들어간다!) 등등. 그래도 스트레칭은 배워서 풀어주는 편인데, 글쎄, 효과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효과가 있다면 이렇게 아프진 않겠지.
이런 몸뚱이를 이끌고 일본에 볼일이 있어서 10일간 떠나게 됐다. 하루 중 3-4시간은 단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스케줄이라서, 사실 거의 죽어가기 직전이었다. 만난 지 7일도 안된 동료에게 마사지를 부탁할 정도로 몸 상태는 바닥을 쳤다. 그런 와중에 요가를 사랑하는 내 친구, 요가가 허리 통증에 좋다고 나에게 꾸준히 말해준 "요기니" 혜진이에게 연락이 왔다.
"동윤아, 너 요가해볼래?"
고민할 필요가 있나? 죽기 직전인데. 당연히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귀국하고 미친 듯이 바쁘게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어느새 요가를 하는 첫 수업시간이 되었다. 10일간의 일본과 5일간의 업무+학업으로, 진지하게 '요가원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닐까...'하고 고민이 되는 상태였다. 암튼, 그렇게 처음으로 혜진이가 있는, 한남동의 썬데이나마스테를 찾아갔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요가에 대해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용어도 거의 모른다. 그루, 요기니라는 말은 전에 혜진이랑 같이 일을 할 때,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아사나'라는 게 자세를 뜻한다는 것도 이번에 새로 배워서 아는 정도다. 그래서 여러분이 뭔가 전문적인 요가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하신다면 절대 무리고, 사실 요가를 처음 하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요가 수업을 시작하자, 배혜진 선생님은 마음을 비우고 몸의 감각을 받아들이라는 말씀을 꾸준히 하셨는데,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뻣뻣함의 끝판왕을 달리는 사람으로서, 정말 잘하려는 생각은 1도 하지 않고, 그냥 자세를 비슷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비우고, 몸의 감각을 받아들일 여유'가 좀 떨어져서, 마음은 좀 나중에 비우기로 했다. 사실 처음 하다 보니 신기한 점이 한둘이 아니라서 마음을 비우기도 어렵기도 했고. 그래도 뭔가, 딴 세상에 있다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요가는 그 자체로도 참으로 정신을 수양하는 신기하고, 곡선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몸의 감각을 이용해 더욱 그렇게 된다. 아기 자세라고 불리는, 엎드린 자세로 요가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노래를 줄이고, 커튼을 드리웠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그냥 엎드린 자세라서) 운동이 제법 할 만했는데, 점점 자세가 어려워지고 격렬해졌다. 선생님의 시범을 보았을 때의 반응은 점점 이상한 표정으로 바뀌게 되더라.
네? 손을 어디에 두라고요? 발 뒤예요? 손을 어떻게 발 뒤에 둬요? 어, 나 빼고 다 하시네...!
이런 반응이 극한으로 치닿을 때, 그러니까 바로 가장 역동적인 자세를 하느라 끙끙대고 있을 때쯤, 선생님은 커튼을 치셨다. 빛을 받으며 요가를 하는 나의 모습이라니. 올드보이의 유지태를 연상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태양을 받고 꿈틀대는 지렁이에 가까웠을 테다.
그렇게 나에게 한없이 큰 굴욕을 주고 난 뒤, 점점 자세는 역동적인 자세에서 다시 정적인 자세로 돌아갔다. 마지막 자세는 (그냥 누워있는) 시체 자세. 우리가 누워서 헉헉대는 동안, 선생님은 향을 태우고, 커튼을 드리우셨다.
커튼을 드리우고, 치고, 다시 드리우는 간단한 자세와, 아기 자세에서 시작해 역동적인 자세를 거쳐 시체 자세로 가는 요가, 노래로 시작해 향으로 끝나는 감각. 이것들이 뭉쳐서 90분간의 요가는 하나의 일생, 동시에 하루가 지나가게 된다.
요가가 시작됨과 동시에 삶이 시작되고, 하루가 시작되고, 요가가 끝남과 동시에 삶이, 하루가 끝난다. 어쩐지 다른 세상에 속했던 것 같은 감각은 바로 내가 어떠한 삶을 관통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뭔가 허탈한 만족감이 몰려온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지양해야 할 표현이지만,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감각'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대국적으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요가원에 가면 사실 자극이 적다. 정말로 빛, 소리, 냄새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앞서 말한 연출들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가 중 선생님이 말하시는 소리는 울림이 크다.
최선을 다 하시되, 자세가 안된다고 욕심을 부리지 마세요.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아가세요. 천천히, 천천히 자세를 완성시켜나가면 되는 거에요.
넓지 않은 요가원이라서 선생님의 말씀이 울리는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기 때문에 더 크게 울려서 들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음을 위로받는 말들이다. 치열하게 뛰어야 하는 운동을 하면서 듣던, '더 빨리! 받아쳐!'가 아니라, '못해도 괜찮아'라는 말이 어쩌면 치이는 삶을 위로하기엔 확실히 좋을지도 모르겠다. 요가는 경쟁하는 운동이 아니라, 나를 위한 수양이니까.
어쩐지 일주일에 3시간씩 라켓볼도 치고, 스킨스쿠버 자격증 교육도 듣고, 애플 워치의 액티비티도 'intense'로 130%씩 달성하는 사람인데, 요가를 듣고 나니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아이고, 이거 잘못 들었나 보다. 요가하는 동안에는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그래서 월요일 아침에 허리 걱정이 장난이 아니었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아니면 정말로 내 친구 혜진이가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허리가 아프지 않아서 기분이 좋다. 하나도 안 쑤신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이번 주에 기자간담회 1개에 참석하고, 원고 4편을 쓰면서 학교를 다니는 기이한 생활을 하는 중이기에, 원래는 지금쯤이면 죽어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버틸만하다.
내일이면 또 요가를 간다. 요가를 하고 난 1주일의 기록. 어쩌면 요가를 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1주일의 기록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