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씨 Sep 15. 2019

한복의 현대화?

아마 대부분이 모르는 이야기겠지만, 나는 꽤나 한복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여기저기서 꽤나 오랬동안 한복에 대해서 떠들어댔었다. 그러다보니 관련된 행사도 곧잘 알아보곤 하는데, 바로 며칠 전이었던 8월 29일에 '2019 한복디자인프로젝트' 시상식이 있었다. 나름대로 흥미롭게 봤다. 그리고 늘 그렇듯 또 글을 쓴다.


퓨전이냐 정통이냐.

당최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복의 디자인 이슈가 나오면 꼭 나오는 게 '퓨전' 이슈다. 한복의 정통성을 지켜야한다는 이야기들. 대개 그러한 분들의 주장에는 '한복이 아니라 상업화된 이벤트복'이 섞여들어가곤한다. 글쎄다. 나도 지나치게 화려한 한복은 그나지 좋아하지 않지만, 아마 요즘 사람들한테는 정통 한복이나, 개량 한복이나 둘 다 이벤트복인건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애초에 전통복이라는 개념 자체는 어디서나 이벤트용 옷차림이다. 전세계에서 전통복이 이벤트 복이 아닌 유일한 나라는 전통복이 현대 정장인 영국뿐이고, 그 어느 곳에서도 전통복을 일상복으로 입지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한복의 경우에는 '현대화'라는 바람이 꾸준히 분다. 서양 열강으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키고 싶어하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전통 한복은 그냥 이벤트 복으로 두고, 현대화된 한복을 만드는 게 옳지 않나?

일상복으로 착용이 어렵다면 그건 절대로 현대화에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행사성으로, 혹은 단발성으로 사용되는 걸 누가 현대화한거라고 하겠나.


한복의 해체

퓨전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단연 해체다. 한복의 요소를 해체하고, 그 요소들 중 한복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브랜드, 디자이너마다 중요시 여기는 요소는 다를테지만, 대부분 등장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

색동 저고리로 대표되는 오방색의 화려함 / 백의민족으로 등장하는 흑백의 극단적 대비

궁중의 화려한 문양 / 꽃무늬

저고리

펑퍼짐함, 펄럭/너풀거림

말기(한복 치마에서 허리를 조이는 부분)와 치마끈

소재

이외에도 정말 많지만, 대충 이 정도중 몇 가지를 섞으면 '한복스러운' 디자인이 된다. 이 변하지 않는 고정된 요소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현대적 디자인으로 승화시키느냐가 이른바 '한복의 현대화'의 가장 큰 관건이라는 거다.


바보야 문제는 트렌드야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게 트렌드다. 트렌드에 왔다갔다하는 건 좋지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세계 모든 패션 디자인, 심지어는 그 자존심 강한 파리의 오뛰 꾸뜨르도 트렌드 따라서 변하는데, 영원히 먹힐 디자인을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건 정말 좋지못한, 건방진 생각이다. 인간적으로 올드한 걸 영하게 만들어야하는데, 트렌드라도 안 따라가면 뭘 하시려는...?

내가 과거에 한창 물고빨며 좋아했던 '리을'의 예시를 들어보자. 

오 너무 좋아 진짜 - 리을 공식 사진

저게 뭐가 한복이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리을이 택한 한복의 요소는, 소재와 문양들이었다. 실제로 보면 꽤나 한복스럽네, 라는 느낌이 든다. 리을이 만든 한복이 다 이런 건 아니고 물론 형태적으로도 한복의 형태를 취한 것들도 간간히 있다. 어쨌건 모든 디자인에 공통적으로 들어간 건 단연 소재와 문양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리을 공식 사진

당시만해도 그냥 슬림한 저고리에 치마 입혀놓는, 지나치게 한복스러운 생활한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리을이 나타났으니 논란은 있을 지언정 나는 정말... 와... 미쳤다 정말... 이러고 있었다. 나도 정말 리을에서 옷을 사고 싶어했으나, 디자인이 없어서 사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중요한 건 '평소에 입을 수 있는' 평상복으로 보였다는 점인데, 여기서 당시의 트렌드를 짚어봐야 한다.

당시의 유행을 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테니스 스커트와 스카잔이 거리를 정복하던 시기였다. 다시 말해 화려한 문양과 바이닐과 같은 광택있는 소재가 충분히 일상복으로 용인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을의 한복은 어쩌면 조금 '덜' 한복스럽더라도, 진짜 생활 한복일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리을을 생활 한복이라고 주장하긴 무리다. 사카잔은 죽어버렸고(인스타에 마지막 해쉬태그가 무려 45주전이다), 테니스 스커트는.... 

하지만 중요한건 트렌드를 캐치했다는 점이다. 요즘엔 어쩐지 허리선을 강조한 롱스커트가 득세한 것 같은데, 이는 리슬 쪽에서 꽤나 나이스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에는 까고 또 깠던 리슬...

보시다시피, 겉에 반투명한 천을 덧대고, 저고리를 이용함으로써 한복의 정체성을 드러내되, 서양식 복장과도 어울리는, 일상복으로써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물론, 리슬은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일상복으로는 어려운) 형태적인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문제점.

사실 이 문제점만 아니라,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남성 한복. 이번 2019한복디자인프로젝트에서도 결선진출 디자이너의 모든 디자인은 1명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복으로 제장되었다. 한복의 여성성이 꾸준히 강조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사실 경계해야할 이슈다.


아무튼

뭐 사실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지만, 어쨌건 과거의 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시도는 참 좋다. 수행착오 끝에 점점 방향성을 찾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하이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하이 패션에서의 시도하는 한복의 재생역시 응원하기에 이번 프로젝트도 관심을 가졌던 터다.

하지만 결국 하나의 패션이 돌아오기 위해선 트렌드에 부합해야만 한다고 의심치않는다. 가장 빠르게 주요 트렌드가 변화하는 곳은 패션이고, 100년전의 것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가 될 수 있을 때까지, 길을 찾아야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립 잡지 만드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