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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m Jan 22. 2020

어쩌면, 필사적인 숨바꼭질

다섯 번째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본 날에 오르세미술관으로 갔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엘로이즈와 그의 딸을 그린 그림 때문에요. 비슷한 느낌의 초상화가 있을 것 같았어요. 미술관을 헤매다 만난 이 작품의 이름은 <조스 베른헤임 죈 부인과 그의 아들 앙리Mme Josse Bernheim-Jeune et son fils Henry>입니다. 르누아르가 그렸죠.



여성의 눈빛에 주목했습니다. 공허하다, 고 느꼈어요. 어딘가 다른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고도 느꼈지요. 그림 속 조스 부인도 영화 속 엘로이즈도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중상층 계급이군요. 하지만 엘로이즈가 의식주의 결핍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건 아니랍니다. 원치 않는 남성과의 결혼이라는 수동적 삶을 강요받을 때, 규범이라는 유령이 자신의 욕망을 부수려 할 때, 죽음을 떠올리죠.


조스 부인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습니다. 찾아보니 "르누아르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의 그림을 대중에게 알렸던 조스 베른헤임 죈의 부인"이라는 설명뿐이군요. 누군가의 부인. 사람들은 이 여성을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조스 부인과 엘로이즈는 서로 만나게 됩니다.


그림은 1910년에 그려졌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시대적 배경은 1770년이지요. 하지만 저는, 14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두 여성 모두 똑같은 포즈로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느낍니다. 이건 어쩌면 필사적인 숨바꼭질이라고. 자신의 전부를 걸고 술래를 피하고 있다고.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사나이들은 그것을 정복해 못을 치고 싶어 하지만 그녀들은 떠다니며 스며들고 감싸면서 세상을 다 가지려"(김혜리가 쓴 <디 아워스> 에세이)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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