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2

엄마의 팥죽색 코트

by 지금

초등학교 무렵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갈 일이 있었다. 엄마는 팥죽색의 코트를 입고 있었고, 내 착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북적이는 버스에서 엄마의 코트를 잡고 시내 가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나라고 생각하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던 나이였다.


승강장에서 버스가 멈춰 서고 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던 할머니가 타는데, 나는 눈이 동그래지고 말았다.


엄청 큰 모피코트를 입은 할머니는 귀에도 주렁주렁 손에도 주렁주렁 액세서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 순간 엄마의 표정을 보지 못했고, 그 모피코트의 할머니를 의식한 건 나뿐이었을까.


엄마의 얇은 팥죽색 코트를 괜히 한번 더 만졌던 게 기억이 난다.


할머니의 두꺼워 보이고 따뜻해 보이는 모피코트에 비하면 너무 얇았던 게 아닐까.


왠지 위축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몇 번 정류장에서 버스는 멈춰 서고 가는 것을 반복했고 우리는 시내에 도착해 내렸다.


서둘러 목적지로 가려는 엄마를 붙잡고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중에 내가 크면 엄청 털이 많은 코트를 사줄게!"


엄마는 웃으며 넘겼지만 나는 아직도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 아니 기억만 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까.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는데, 내가 꿈꿨던 서른 즈음, 마흔 즈음의 삶과는 조금 많이 차이가 나는 삶을 살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 통화를 하며 서로 간단한 안부를 묻는다. 늦은 감이 있지만 엄마에게 독립한 지 4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코트 생각을 한다.


이제는 유행이 지났고, 엄마의 작아진 체구에는 모피코트는 버겁고, 나는 생활이 버겁다.


사주지 못할 이유와 핑계가 많지만 엄마에게 고백하고 싶다. 나는 그 겨울날에 얇았던 엄마의 팥죽색 코트를 기억하고 있다고.


그리고 이제와 엄마에게 모피코트를 해줄 수 없는 나라서 미안하다고.


받은 게 그렇게 많은데 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게 우리 사이일까.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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