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백이 너무 늦지 않길 바라며
창밖에서 빛이 들어 눈을 뜬다. 반쯤 열린 창문 밖에서는 참새가 울고 해가 중천에 뜬 것 같기도 하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도마와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정갈하다. 탁탁 탁탁.
엄마는 요리를 잘한다. 시기를 잘 맞추었다면 마스터셰프코리아 같은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음식점을 했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에 첫 식당!이라고 할 만한 것은 포장마차였다.
엄마의 첫 번째 장사이자, 첫 포장마차의 이름은 내가 지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엄마의 포장마차 이름이 고모네집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엄마를 부르는 이름이 아줌마가 아니었음 하는 아주 단순한 마음이었던 것 도 같다.
엄마의 포장마차는 집에서 걸어서 25분쯤, 겨울에는 3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는 과수원의 후문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과수원을 운영하시는 분이 감사하게도 얼마의 전기세를 받고 전기를 끌어다가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는 얘기를 했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옛날 포장마차 그대로의 모습이었고, 외삼촌이 주황색 천막에 큰 글씨로 고모네집이라고 적어뒀다.
엄마는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나한테 아주 짧은 얘기를 하곤 했는데, 오는 사람들이 엄마를 고모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이름을 지은 나는 꽤 뿌듯했었다.
처음 문을 여는 날을 빼고는 포장마차에 가보는 일이 없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내가 처음 포장마차를 갔을 때 울컥했던 감정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 엄마의 '고모네집'이 떠올랐기 때문인데, 지금의 나에게 포장마차가 낭만이라면 엄마는 너무 생계였겠지 싶다.
나의 자존심의 일부는 아빠, 일부는 엄마에게 왔을 거라 생각하는데, 엄마도 꽤 자존심이 쌘 사람이었다. 물론 이것도 뒤늦게 그러지 않을까?라고 어림짐작 할 뿐이지만 지금 내가 엄마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엄마 같은 용기를 가지고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나라면 하지 못한 것을 늘 해낸다. 지금에 와서야 알 수 있다. 지금 창업을 준비하고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하나 라는 고민을 할 때 엄마는 저만치 앞에 서있다. 나로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 것들을 엄마는 늘 해냈으니까. 어린 딸을 데리고 살기에 세상은 녹록지 않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힘들었을 거고, 그것이 엄마의 원동력이 되었겠지 싶어 또 마음이 아파진다.
엄마에게 고백하는 글을 쓰며 나는 자꾸 나를 마주하게 된다. 톹아보는 동안 어린 나를 만나고 젊은 엄마를 만난다. 그때에 비하면 나는 너무 풍족한 환경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되려 독이 되는 걸까라고 채근하게 된다. 그때와 지금은 다른 시대지만 엄마가 대단하다고 새삼스럽게 고백한다. 엄마의 강인함을 닮은 사람이 되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한다.
오늘은 전화해서 말해줘야겠다. 나는 엄마가 매일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