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잠이 없는 아이
새벽에는 보통 일어나 있는 편이다. 중학교에 다닐 나이까지 나는 새벽잠이 없는 아이였다. 정확히는 새벽에 뒤척이는 아이 정도가 될까 싶다. 새벽이 되면 엄마가 들어온다. 늦은 저녁에 일을 나갔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엄마를 맞이할 사람은 집안에 나 하나뿐이었다. 잠이 많은 내가 새벽에 그렇게 재깍재깍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왜였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엄마의 포장마차가 문을 닫고 그다음 엄마의 직업은 소위 말하는 나이트클럽의 주방이모였다. 어렸을 때 기억을 더듬어 겨우 그 정도가 아닐까?라고 생각할 뿐 엄마한테 직접적으로 어디서 일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좀 더 커서 스무 살이 되었을 때쯤 엄마가 그때 주방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어린 딸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고된 삶을 나는 어림짐작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집에는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기가 있고, 엄마는 핸드폰이 없었다. 보통 저녁 아홉 시면 잠이 드는 나는 티브이를 틀어놓은 채 잠들곤 했고, 열두 시가 넘어갈 때 즈음 일어나서 혼자 말하고 있는 티브이를 봤을 뿐이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가 시계를 올려다보면 한시, 다시 눈을 감고 뜨면 두시 이렇게 시간마다 대체로 잠을 깼다.
잠을 자는데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새벽 네시정도가 되면 엄마가 돌아온다. 아파트 입구 쪽에서 자동차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집안의 불을 켜고 티브이를 끄고 현관으로 나가 앉는다. 열쇠를 넣고 돌리는 소리가 나고 엄마가 등장한다.
처음 엄마가 그 일을 시작하고 나는 거의 매일을 깨어 엄마를 마중 나가곤 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무서웠기 때문에 현관 앞에 앉아있는 정도가 다였지만, 나름대로 나의 정성을 표현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새벽마다 깨서 엄마를 기다리는 내가 안쓰러워서 인지, 밤낮이 바뀐 고된 일이어서 인지, 엄마는 1년 즈음 그 일을 하고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한동안 새벽에 잠을 자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엄마의 새벽에 깨어있는 딸을 보는 심정이 어땠을지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차라리 잠든 채 누워 있었다면 엄마는 덜 속상하지 않았을까. 마음이 조금은 더 편하지 않았을까.
기억나는 대로 써가는 이 글들로 나의 유년시절을 만나고 엄마의 삶을 만난다. 단편적인 기억뿐이지만 또렷하게 기억나는 그 순간들이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 어제일처럼 느껴진다.
무슨 일이든 포기하는 법이 없었던 엄마의 삶 자체를 존중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가 그 발꿈치라도 따라가는 삶을 살게 되길 바란다.
굳이 나에게까지 말하지 않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엄마를 기다리는 새벽의 나도 이해가 간다. 지금 내가 가끔 찾아오는 힘든 일들을 굳이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엄마의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