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5

처음이라고 말하지 마

by 지금

엄마와 나는 40살이 차이가 난다.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엄마는 마흔이었고, 그 당시에는 더욱 노산이었다고 한다. 마흔 살에 처음 갖게 된 아이가 나였다. 그만큼의 세월이 우리 사이에 있었는데, 어렸을 때는 아무런 차이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조금 젊은 친구들의 엄마를 보면서도 우리 엄마가 특별하게 나이를 더 먹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곧 마흔이 될 예정이다. 아직 결혼을 안 했고, 아직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다. 그런데 만약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를 낳는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떠오른다. 아, 어떻게 그런 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고 혼자 집안을 꾸려나간 엄마에게는 가정에 쏟아부은 시간 덕분에 해보지 않은 일이 많다. 기억이 많지 않지만 어렸을 때 전쟁을 겪었고, 덕분에 엄마와 외가 가족들은 어렵게 자랐다고 들었다. 세상에. 그래서 눈을 깜짝하고 보니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져 있는 것이다. 나만해도 빠르게 변화하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세월이 빠르다 느끼는데, 엄마는 어떨까. 짐작하기도 어렵다.


어느 날엔가 둘이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보기 전에 엄마랑 둘이 앉아 스무디 X을 가서 음료를 사서 마시고 있는데, 수줍은 듯 엄마는 내게 말했다. "이런 건 또 처음 보네" 스무디 컵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신기한 듯 보고 있는 엄마의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엄마 손을 잡고 백화점을 갈 때나 시내에 나가 구경을 할 때면 길을 잃지 않으려 엄마의 옷자락을, 엄마의 손을 꼭 붙잡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만 있으면 경찰아저씨가 와도 무서운 것이 없었다. 손 하나 맞잡았을 뿐인데, 엄청 든든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지나 내가 엄마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가고 카페에 갈 때, 엄마도 그런 생각을 할까. 낯선 곳에 있지만 내가 있으니까 조금은 든든할까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든든한 딸일까.


엄마의 시계가 나보다 빨리 간다.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야 누가 더 많고 적고를 가늠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 엄마가 제일 애틋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엄마의 시계가 나보다 빨리 가는 것이 매번 눈에 보이니까. 그런 반짝이는 눈으로 소녀처럼 처음이라고 말하는 엄마를 볼 때면, 내가 한참을 잘 못 생각했구나 하며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나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던 엄마는 다 아는 줄 알았지, 다 해본 줄 알았지, 나보다 항상 더 많이 아는 엄마였으니까. 그렇게 함부로 넘겨짚어서 미안해


탕후루가 유행이라면 탕후루를 들고 집에 가고, 십원빵이 유행이라면 십원빵을 들고 집에 간다. 그럴 때마다 어쩜 그렇게 아이처럼 좋아하는지, 이게 엄마의 마음이었을까 싶어


내가 그렇게 사랑받고 자랐듯이 엄마에게도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다. 엄마에게 뭔가 처음이라고 하면 내가 든든하게 옆에 서 있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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