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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영 Dec 29. 2021

당근마켓 체험기

요 며칠 당근마켓 거래에 푹 빠져지냈다. 이사를 한 달 앞두고 짐을 줄이던 차였다. 상태가 괜찮고 값이 나가는 물건들은 당근마켓으로 판매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게 시작이었다. 조금이라도 본전을 건져보려는 속셈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곤했다. 지난 월요일부터 지금까지 무쇠가마솥을 비롯한 일곱 개의 물건을 내놓았고, 오늘 오후에 올린 학독 말고는 모든 거래가 성사되었다. 남편과 아이들 말로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내놓아서 그렇다고 했지만, 내놓은 물건이 팔리지 않는 상황에 자꾸만 신경을 쓰는 내 시간이 아까워서 가격을 낮게 잡았을 뿐이다. 


아무튼 오늘은 국산 무쇠 구이판과 롯지 사각 그리들을 거래하기로 한 날이었다. 쪽지를 교환하고, 물건을 포장하고,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들을 만나고 하는 지난한 시간을 2번 정도 반복했을 뿐인데 하루가 다 가버렸다. 물론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쓸 자료들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불쑥불쑥 끼어드는 쪽지와 약속으로 쪼개지고 공격받은 시간은 조각조각이 나버렸다.


그렇게 오늘은 3만원을 벌었다. 그 두 개의 물건 구입가는 12만 5천원이었다. 내가 아무리 최저임금을 번다지만,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일자리에서 등짝이 따숩도록 적응을 해버린 탓인지, 돈 오천 원, 만원에 오만 실랑이를 벌이며 며칠을 보내다보니, 사는 게 참 구차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쇠 프라이팬은 녹이나 진득거리는 기름때 하나 없이, 사람 피부처럼 부들부들하게 질을 잘 들여놓을수록 새로 만든 물건보다도 사용하기가 좋다. 그래서 주물공장들은 돈을 더 받고 새 제품에다 기름을 먹이고 불을 입혀서 질을 들이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무쇠솥과 프라이팬을 애지중지 여겨온 나로서는, 녹이나 기름때 하나 없이 매끈매끈한 이 물건들을 사진으로 모두 확인해 놓고도, 중고니까 밑도 끝도 없이 값을 내려달라고만 하는 사람들이 야속했다.  


깎아주세요. 조금만 더 깎아주세요. 죄송하지만 조금 더 깎아주시면 안될까요? 우리집 근처를 지나시는 길에 물건을 전달해주시면 안되어요? 지금 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요, 다음에 갈게요. 길치예요, 거기가 어디예요, 어떻게 가면 되요, 알려주세요. 등등등등 등등등등 등등등등.


오늘 만난 어떤 분과는 정말 거래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형편이 좋지 않아 그리 구차스런 말들을 꺼내는가 싶어 꾹 참아오던 마음이었다. 그런 그가 물건을 교환하던 자리에서 굳이 전원주택 생활을 자랑하는 말을 하는 걸 듣고 나서는 팽하고 돌아버렸다. 다 물리고 다시 뺏어버릴까 싶은 생각까지 올라왔지만 짐 하나라도 얼른 덜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모르는 척 그냥 돌아서 버렸다.


감기증상이 있다며 다른 날로 약속을 미루자던 또 다른 사람은 뜬금없이 우리집 근처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3KG이나 나가는 무쇠 프라이팬을 '만원'에 사려고 "(차가 없어서) 버스로 가겠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가격까지 깎아 달라)." "(감기 증상이 있어서 못 가겠다고는 했지만 못 참겠더라) 약속장소에 다 와 간다."는 그 사람이 궁금해졌다. 이 마음이 도대체 무엇일까? 정류장 사이사이 걷고, 흔들거리는 버스에 시달리고도 3KG짜리 무쇠덩어리를 든 사람이 무사할 수 있도록 포장한 물건을 몇 번씩 덧씌워 포장을 했다. 


“혹시... 당근...이세요?”


“네, 무쇠그릴 찾는 분이세요?”


차가 없고, 길을 잘 모르고, 감기 증상이 있다던 그 사람을 드디어 만났다. 며칠간 핸드폰으로 문자를 나누며 조금씩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려던 사람이었다. 마스크 아래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갖고는 싶은데 함부로 살 수는 없는 그런 물건을 당근마켓에 관심 키워드로 입력해놓고 내내 기다리던, 내 또래의 어떤 여자. 핸드폰 액정과 글자를 넘어 만난 그 사람의 얼굴이 어떤 호감 비슷한 웃음을 띤 채 나를 향했다. '이 마음이 도대체 무엇일까?' 묘하게 되새기던 그 질문을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이상하게 모든 것이 다 상상되었다. 


“코팅 프라이팬보다는 무쇠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우면 더 맛있대.”


“심지어 무쇠 그릴 팬에 구우면 그릴자국이 나서 고기가 더 맛있어 보이더라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표정이 없는 것인지 기운이 없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든 그 눈코입이 낯선 사람에게 호의를 느끼며 미소를 조금 지으려고 할 때 의외로 된장찌개처럼 뜨끈한 기운을 매력적으로 발산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이와 밥 먹다 말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무심하게 꺼내는 여자의 모습하며, 엄마 얘기를 듣고 나서는 나도 그릴에 구운 고기를 먹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하며, 곧바로 무쇠 그릴 프라이팬을 사고 싶어 안달하는 그 엄마의 모습을 마구마구 상상하게 되었다.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도 쉬지를 못하고 곧바로 부엌으로 달려가 식구들 먹을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여자의 고단하고도 성실한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물론 그녀는 혼밥 시간에 공을 들이고 싶었던 비혼의 중년여성이었을 수도 있다. 환경보호에 삶을 다 바친 환경운동 활동가였을 수도 있다. 무쇠를 좋아하는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서둘러 준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어쨌든 당근채팅창을 넘어 만나게 된 그 한 사람의 모습이 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버렸다. 구입한 가격에서 단돈 만원이라도 거둬보려고 아득바득했던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물건을 싸게 사보려는 상대방과 만나는 그 짧은 순간, 그 짜증스럽고 구차한 시간들 역시 한 명 한 명의 삶, 그 일부분이었다는 실감이 복잡하고 심란한데, 짠하고 안쓰럽고 사랑스러웠다.


---2021.12.1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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