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영 Feb 28. 2022

이사하고 일주일이 지나서 쓰는 글


이제야 숨을 좀 돌리는 것 같다. 지난 주 목요일에 이사를 하고나서 일주일이 지났다. 몸살이 나서 어제는 낮잠을 좀 자봤다. 그러고나니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것도 같다. 정신을 벼리기 위해서는 책이라도 좀 더 읽고 글이라도 좀 더 써야 한다고 마구 닥달하다말고, 정말로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였더랬다. 그러고 났더니 이렇게 뭔가 조금은 글적거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사를 해보니 그간 참 더럽게 살았구나 싶었다. 집이 더러웠다. 물건은 첩첩이 쌓여있었고 가구는 끈적거렸다. 한시도 쉴 새 없이 부지런히 살아왔는데 집이 왜 이렇게나 더러웠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더러운 사람이니까. 청소를 잘 못하는 사람이니까. 과연? 


이사를 오고나서는 청소를 열심히 했다. 큰 돈을 들이고 나서 때깔이 좋아진 집안 살림들을 보고있자니 자꾸 그쪽으로만 몸을 쓰고 시간을 쓰게 되었다. 이 물건을 저기 두었다가 여기 두었다가. 책들 들어내고 책장을 닦기도 하고, 끈적끈적해진 재활용 쓰레기통을 새 것처럼 씻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을 살게 되었다. 내 시간의 처음을 청소와 살림에 두다보니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삼시세끼 밥도 잘 차리고 아이들과 대화도 잘 나누고 남편과 애틋한 시간도 보내고 식구들과 즐거운 시간도 가지고 청소도 잘 하고.


그룹홈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시세끼 밥도 잘 차리고 아이들과 대화도 잘 나누고 동료들과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도 가지고 청소도 잘 하고 (그런데 행정업무는 조금 밀렸다. 아이들과 사이가 좋으면 이게 참 힘들어진다).


그랬더니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을 도저히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뭐, 잠도 줄이고 자투리 시간도 쥐어짜서 시간의 틈이란 것을 더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만서도. 일단 몸이 말을 듣지를 않았다. 농성이라도 벌이듯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신호를 보내며 퍼져버렸다. 


정말 이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는 걸까. 


그 모든 허덕임을 뒤로 하고, 지난 수요일에는 약속을 잡았다. 내가 참 인색한 일 중의 하나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만난 이유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 '우연'님이었기 때문이다. 우연님은 돌이 갓 지난 아기를 키우는 아기 엄마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아기와 살림에 빨리고 있는 사람. 그는 요즘 글을 잘 못 쓰고 있다고 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최선을 다 하며 산 삶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어떤 최선을 다 하기 위해 나는 내가 가장 욕망하던 것들을 가장 먼저 내려놓았었다. 우연님 역시나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헤어지고 며칠이 지난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나 역시나,  그때의 삶과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연님과 헤어지면서는 우리가 만났던 시간을 글로 남겨보자는 약속을 했더랬다. 그렇게라도 우리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자고 약속 했더랬다. 이틀이 지난 지금. 우연님은 아직도 글을 올리지 않고 있다. 지금의 나처럼.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말고 ‘수퍼우먼 허깨비’를 앞에다 불러 앉혀두고 혼자서 중얼중얼 해보았다. 네가 진짜로 존재한다고 믿는 건 아이들이나 하는 짓인 줄 알았다고. 그런데 매번, 나는 너와 비교를 하며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고. 가부장제 먹여살리는 네가 떠나고 나면… 그래 나는 나를 좀 더 먹여살려볼 수 있을 것 같다.


2022.01.22 작성.

작가의 이전글 2022년 2월 6일(일) 그룹홈 보육사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