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가 아니라 영어 시청을 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영어를 '공부'한다. 그것도 '열심히'.
그럼 영어를 공부하지! 뭐 어떻게 해?
라고 생각하신다면 끝까지 꼭 끝까지 읽어보시길 바란다.
영어를 '공부'하는 예시는 다음과 같다.
영화 한 편을 마스터한다
모르는 문법, 단어가 나오면 찾아보고 넘어간다.
잘 들리지 않는 부분은 반복해서 들어본다 / 딕테이션 한다.
왜 과거형이 아니고 현재 완료인지 논리적 설명을 통해 이해하고 넘어간다.
미묘한 뉘앙스와 차이를 이해하고 넘어간다.
까먹지 않기 위해 철저히 복습한다.
단어장 정리를 한다.
이 모든 예시의 공통점은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서! 의식적으로 영어를 공부한다는 거다. 논리적 이해가 핵심인 수학이나 혹은 토익 문제 풀기라면 맞는 접근이다.
그러나 의사소통, 그러니까 실제로 듣고 말할 수 있는 실용적 영어가 목표라면? 오히려 이러한 '노력'이 발목을 잡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작심삼일
영어는 절대량 싸움이다. 학습법을 다 떠나서, 미드를 1편 본 사람보다 10편 본 사람이, 10편보다는 100편 본 사람이, 100편보다는 1000편 본 사람이 무조건 영어를 더 잘한다. 이 절대량을 늘리려면? 그렇다. 꾸준히 오래 해야 한다. 1주 2주가 아니라 1년 2년 단위로 오래 해야 한다.
그런데 1년은커녕 1달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드물다. 미드 10편은커녕 1편 조차 제대로 보는 사람이 드물다. 매우 드물다. 의지의 문제일까? 아니다. 100명 중 1명이면 몰라도, 100명 중 99명이 (대부분의 영어 학습자들) 다 의지박약일리는 없다.
영어를 '공부'하려 들기 때문이다. 무언가 의식적으로 반복하려 하고, 계획적으로 복습하려 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공부는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든다. 게다가 우리는 본업이 있다. 수험생처럼 공부에 모든 정신을 투자할 수 없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로 접근하면 필연적으로 지친다. 20분짜리 미드 한편을 내가 '공부' 하겠다? 영어에 누구보다 열정적인 필자마저도 하다가 지칠 거다. 모르는 거 나올 때마다 찾아보고, 단어장 정리하고, 비슷할 때까지 따라 말해보고... 생각만 해도 영어가 하기 싫어진다...
이렇게 무거운 접근은 영어를 시작하기 조차 하기 싫게 만든다. 심리적 저항을 시작도 하기 전에 내가 만들어 버리는 거다. 영어 작심삼일은 의지 문제가 아니다. 영어를 하나의 과목으로 전락시켜 공부하려 드는 무거운 접근 때문이다.
2. 절대량 부족
'아니, 당연히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보고, 까먹지 않도록 공부해야 맞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학습자를 "오늘만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어에서 최고 원칙은 '절대량'이다. 이게 해결되면 나머지는 다 따라온다. 예를 들어보자. 5분짜리 영어 팟캐스트 1000개가 있다고 치자. 그냥 쭉~ 들었을 때, 한 30% 정도 이해가 된다고 치자. 이때 2가지 접근법이 있을 수 있다.
A. 1시간 동안, 하나의 팟캐스트를 100% 이해될 때까지 공부.
B. 1시간 동안, 다른 11개 팟캐스트를 그냥 또 들음. (모두 이해도 30%)
수험생이 아닌 이상 A전략은 1달도 지속하기 힘들다. 그런데 설령, 초인적인 의지로 지속하더라도, B보다 영어가 훨~씬 더 천천히 는다. 정신적으로 노력은 더 하는데 결과는 오히려 반대인 상황이다. 왜 그럴까?
B가 A보다 "12배"나 많이 영어 컨텐츠를 소비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슨, 중요한 영어표현, 단어를 12배나 많이 접했고, 영어 고유의 소리, 리듬감, 패턴에 12배나 많이 노출됐으며, 사전 찾아보고, 챗GPT 돌려보고, 선생님한테 물어보는 시간 1도 없이, (이런건 영어 학습에서 모두 낭비다) 100%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12배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이해도가 30% 아니냐고? 모르는 단어는 계속 모르지 않냐고? 이게 만약 수학 공부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맞음/틀림으로 갈리는 수학과 반대로, 영어는 결코 yes / no로 이해력이 갈리지 않는다.
필자의 최근 학습 예시를 들어보자. 미드를 보다가 "indefinitley"라는 표현을 마주했다.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도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어디선가 또 "indefinitley"가 나왔다. 문맥상 뭔가 '기간'에 관한 뜻인 거 같았다 (이걸 의식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어디선 가 또... 또... 또... 접하다 보면, 여러 데이터가 쌓이면서 비로소 indefinitley=무한정 이라는 뜻이란 걸 알 수 있다.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더 나아가볼까? 필자가 "indefinitley"라는 소리를 인지하고 '이게 뜻이 뭐지?'라고 느꼈을 때는, 이미 그전에 "indefinitley"를 수십 번이고 접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때는 indefinitley를 마주한 적이 충분치 않아서 그냥 소음 정도로 들렸을 거다. 많이 듣다 보니 indefinitley로 깨끗하게 들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영어는 무의식적 데이터 축적 과정이다. 의식적으로 명확히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 수학과 학습 영역 자체가 다르다. 물론, 영어를 수학처럼 접근할 수 있다. 아니, 그래 왔다. 토익, 수능 등 문제 맞히려면 논리와 의식적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을 실제로 알아듣고 내 의견을 말하려는, 의사소통을 목표로 하는 영어는 다르다. 뻔한 얘기지만, 애초에 우리는 어려서 언어를 배울 때, 분석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 1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3. 리스닝 한계
영어 중에서도 '리스닝'에 집중해 보자. 우리는 왜 도대체 자막 없이 미드를 보지 못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1) 빠른 속도 2) 애매한 영어 소리 (연음 포함)이다. 이 이유 때문에, 막상 자막 켜고 천천히 읽어보면 다 아는 영어일 때가 많다.
이 2가지는 공부한다고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단어 더 외우기? 문법 더 잘 이해하기? 속도와 소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2가지는 그냥, 설령 100% 들리지 않더라도, 설령 이해도가 0%일지라도 그냥 쭉~~ 들었을 때 늘릴 수 있다.
뭐? 다 안 들리고 모르는 게 있어도 그냥 보라고?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어 '공부'와 반대되지만, 그냥 듣고 보는 게 원래 우리가 언어를 학습하는 원리다.
리스닝이라고 해서 절대 우리는 '소리'만 듣지 않는다. 한국어로 예를 들어보자. 회사에서 외국인이 아주아주 어눌하게 '안넝화쇼요'라고 말했다고 치자. 우리는 그럼에도 찰떡같이 '안녕하세요'로 알아듣는다. 어떻게? 누군가 인사하는 상황에서 안녕하세요처럼 들리는 (이 소리는 매우 다양하겠다) 경험을 이미 많이 해봤기 때문이다.
영어도 똑같다. 이미 indefinitley를 여기저기 다양한 문맥에서 (그럼에도 공통점이 있을 거다) 다양한 어휘와 쓰이는 걸 경험했다? 추후에 indefinitley를 누가 우리 귀에는 매우 애매하게 말했더라도 "indefinitley"로 명확히 재구성해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소리만 듣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과정은 모두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1. 여태까지 그래 왔다.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관성이다. 우리는 여태껏 영어를 다른 과목들과 같은 선상에서 '공부'해왔다. (외국어는 본질적으로 어떤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 아님에도) 정확히 말하면 영어를 한 게 아니라 수능, 토익으로 대표되는 영어'학'을 공부해 왔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영역인 외국어로써의 영어를 잘하고 싶을 때도, 나도 모르게 '공부'를 하는 거다. 아니 이 '공부'말고 다른 대안은 뭐가 있는지도 애초에 모른다.
(각 어휘별 뉘앙스, 100% 맞는 문법, 적절한 어휘 사용은 당근 시험 점수에는 도움이 된다. 그런데 실제 영어 의사소통에서는 중요도가 거의 0에 수렴한다. 그전에 기본적으로 들리지 않고, 말하지 못하는 게 99%다. 미드가 들리지 않고, 여행 가서 의사표현을 못 하는 이유가 결코 정확한 어휘의 뜻이나 의미 차이를 몰라서가 아니다)
2. 열심히 한 거 같다.
다른 하나는 심리적 보상이다. 과거 학습 경험상, 뭔가 열심히 외우거나, 이해하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미드 대사를 열심히 공부하고 외우는 사람과 그냥 과자 먹으면서 보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아마 대부분 과자 먹는 사람을 게으르며 그렇게 하다가는 영어 망한다고 꾸짖을 것이다. 현실은 그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계획적으로 복습하지 않거나, 안 들리는 걸 그냥 넘어간다거나,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찾아보지 않는다거나 하는 걸 우리는 못 견뎌한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 의식적 이해, 공부하려는 습성이야 말로 정확히 영어를 싫어하게 하고, 오래 하지 못하게 하고, 무의식적 적응을 가로막는 요소다.
유튜버 <존쌤의 언어습득법>가 했던 말을 잠시 음미하고 가자.
외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 참을 수 없으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모르는 걸 짚고 공부하려고 한다? 오늘만 사는 거다. 영어를 꾸준히 할 자신이 없다는 반증이다. 모르고 애매한 건 무조건 나온다. 어디서나 존재한다. 걱정말자. 내일 내일 모래 1달 뒤 3달 뒤 1년 뒤까지 지속하면, 몇 백번이고 등장하고 까먹으래야 까먹을 수가 없게 된다. (필자는 이를 자연스러운 복습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개씩 재밌는 영상을 본다. 주말에는 몇 시간이고 드라마 정주행을 한다. 왜? 재밌으니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외국인 입장에서 우리는 '한국어' 학습을 하고 있는 거다. 그것도 지속성과 몰입도, 그리고 이에 따른 엄청난 절대량을 가지고서 말이다.
영어'학'이 아니라 듣고 말하는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잘하고 싶다? 공부가 아니라 '노출'로 생각하길 바란다. 우리가 한국어 컨텐츠를 단순히 소비하듯 말이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의 언어 천재 '무의식' 그리고 최고의 노력인 '절대량'이 알아서 잘하게 만들어 줄 거다.
딱히 영어 공부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재밌어서 그냥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가 늘었어요.
이런 이야기는 필자가 보기에 결코 우연이나 소문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고, 어쩌면 유일무이한 영어 향상 방법이다. 애초에 영어 컨텐츠를 볼 때, (그 이전에 무엇을 볼지 고를 때 조차도) '공부'라는 개념을 지워버리기 바란다.
영어 공부와 노출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까지 읽고 '아니 들리지도 않는 미드를 어떻게 보라는 거야...?'라고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영어 '노출'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다음 글에서는 영어를 '노출'로 접근하는 구체적인 전략에 대해 다뤄보겠다.
영어! 공부하지 말고 소비하세요 (아직 미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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