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발레리아
스웨덴 말뫼에서 버스를 타고 몇 시간만 달리면 헬싱보리라는 도시에 도착하게 된다. 스웨덴 말뫼에서 1년 간 교환학생으로 살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근처 작은 도시들을 여행을 하고는 했다. 모두가 내가 여행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쯤 되면 알겠지만 사실 스웨덴으로 떠났을 때 나는 '여행'에 조금 지쳐있었다. 그래서 스웨덴에서 1년 동안 내가 살던 말뫼를 포함해서 5개의 도시만 보고 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헬싱보리이다.
말뫼에서 나는 새로운 인생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의 이름은 바로 발레리아. 발레리아는 몰도바의 키시너우에서 자랐고, 프랑스의 리옹으로 대학교를 간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의 대학교 학사과정은 3년이기 때문에 나와 같이 교환학생으로 왔던 그녀는 벌써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1년의 시간은 찬란했다.
그녀의 만 22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나는 생일선물로 발레리아와 함께 우정여행을 하고 싶었고, 우리는 가까운 헬싱보리로 떠났다. 2월 22일, 그녀의 22번째 생일을 맞이해서 말이다. 함께 헬싱보리의 시내를 걷고, 카르난 타워도 올라가 보고, 그리고 그냥 헬싱보리의 겨울 바다 산책로를 함께 걸었다. 스웨덴의 겨울기간 동안 자주 볼 수 없는 햇빛도 이 날만큼은 빛났다.
스웨덴이니깐 당연히 '피카' 시간도 갖고, 커피 한 잔씩 마시면서 그렇게 함께 오후를 보냈다. 말뫼에서 로넨 하우징이라는 국제 학생 플랫에서 살았었는데 발레리아도 층의 플로어메이트였다. 그녀는 종종 내 방에 와서 나의 'Listening Chair'에 앉아서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있었고 수다를 떨기도 했었다. 나도 그녀의 방에 종종 가서 같이 영화를 보고는 했다. 거의 매일같이 같은 층에 살면서 말뫼대학교 수업도 들으러 가고, 스웨덴어 수업도 같이 듣고, 게다가 우리는 둘 다 음식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기 때문에 함께 요리도 많이 했다. 특히, 매운 음식을 둘 다 좋아해서 시라챠 소스와 핫소스, 그리고 칠리는 우리의 단골 메뉴에 항상 올라와있었다.
나는 그녀 덕분에 살사도 좋아하게 됐다. 함께 말뫼의 살사 바를 가서 밤새 살사 춤을 추다가 오기도 했고, 말뫼의 클럽에서 또 밤새 춤을 추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고는 했다. 그렇게 거의 매일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시간을 보내다가 교환학생 기간이 딱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혼자 살게 되었을 때 한동안 집이 너무 적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때도 있었다. 그녀는 지금 대학교를 졸업하고 반년 동안의 갭이어를 갖게 되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크루즈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다. 아마 지금쯤 멕시코의 이름 모를 해변에서 태양을 즐기고 있을 것 같다.
나처럼 어렸을 때부터 이 도시 저 도시,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자랐다면 그만큼 친구들도 각국에 흩어져있다. 그리고 모든 친구들이 흩어져 있다는 사실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정확한 날짜를 모른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다시 발레리아를 만나서 같이 요리를 하고, 춤을 추고,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앞으로 계획할 날들만 가득할 뿐. 게다가 그녀가 일하고 있는 노르웨이 크루즈는 직원들에게도 와이파이가 무료로 제공되지 않아서 연락을 자주 할 수가 없어서 더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겨울 우리가 함께했던 헬싱보리의 여행이 더 생각났던 걸까. 헬싱보리에서 우리는 덩커 문화센터를 찾아가서 전시도 봤었다. 하나는 "Sorry that I Exist"라는 헬싱보리의 홈리스 사람들에 관한 전시였다. 헬싱보리까지 오게 된 로마 사람들과 루마니아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말뫼대학교에서 분쟁과 평화를 배우면서 '도시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 많이 다뤘는데, 특히 한 세미나의 주제이기도 했던 이 도시에 대한 권리는 말뫼를 포함해서 7개의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이기도 했다. 사회의 시스템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도시라는 공간의 권리조차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이민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 외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는 한 도시에서 계속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웨덴의 말뫼에서 살면서 나는 처음으로 도시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한 곳에서 오래 살고 싶었다. 사람들은 그곳이 스웨덴이라서 라고 많이 묻고는 하지만, 내게 스웨덴과 말뫼는 마치 다른 공간 같았다. 지금까지 서울, 성남, 시드니, 바쿠, 캔자스시티, 예루살렘, 그리고 말뫼까지, 말뫼는 내게 특별했다. 말뫼는 내가 자랐던 모든 도시들을 섞어놓은 곳 같았다.
서울은 인구만 천만 명이 넘고, 성남도 인구가 97만 명이 넘고, 내가 다니고 있는 인하대학교가 있는 인천은 인구만 300만 명이 넘는다. 헬싱보리의 인구는 13만 명이 조금 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 말뫼의 인구는 33만 명이 조금 넘는다. 시드니의 인구도 400만 명이고, 바쿠는 200만 명, 캔자스시티가 48만 명, 그리고 예루살렘이 85만 명이다. 나처럼 자기가 살았던 도시들의 인구수에 이렇게 집착하는 사람도 드물 것 같다.
말뫼는 내가 살아왔던 도시들 중 가장 사람이 적은 도시였다. 그럼, 단순히 작은 도시 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내가 '더' 행복했던 걸까. 대답은 그 반대이다. 말뫼는 인구수는 적지만 그 인구가 정말 다양한 도시이다. 일단 도시 인구의 절반이 조금 안 되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35살 아래로, 내가 다녔던 말뫼대학교조차 이제 20년이 돼간다! 도시 인구의 40%가 넘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 출신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30%가 넘는 사람들은 외국에서 태어났고, 10%가 조금 넘는 사람들만 스웨덴에서 태어났고 동시에 외국 국적의 부모가 있는 사람들이다. 말뫼 도시의 사람들은 177개의 각기 다른 나라들에서 모였고, 그래서 150개가 넘는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배웠던 러시아어와 아랍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골목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팔라펠을 먹을 수 있다. 아, 물론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건 바로 후무스! 게다가 나 같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도 항시 넘치고, 채식 식품도 구하기 쉽고, 매일 파머스 마켓도 열린다.
나는 작은 도시가 좋다. 발레리아와 나는 말뫼를 사랑한다. 헬싱보리도 좋지만! 다시 전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두 번째 전시는 "Color Emotions-Poem Edition"으로 다양한 색깔들과 시들이 어우러진 전시였다.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 프리즘에 비치는 색깔들처럼 항상 달라진다는 것을 작가가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의 감정들은 변하는 색깔들과 같다. 그렇게 시들을 읽다가 우리는 바로 이 시 앞에서 멈췄다.
The earth would die if the sun stopped kissing her,
but even after all this time,
the sun never tells the earth,
you owe me,
just look what happens with a love like that.
It lights up the whole sky.
by Hafiz (sufi poet)
우리의 우정이 꼭 이 햇살같이 느껴져서 그랬던 걸까. 전시를 다 보고 우리는 이번에 기차를 타고 다시 말뫼로 돌아갔다. 그렇게 친구의 생일을 헬싱보리에서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우리의 우정을 생각하면서 시를 한 편 쓰게 된다. 발레리아, 내 친구가 너무나도 보고 싶은 어느 토요일에. 그리고 다시 말뫼로 돌아가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될 날을 꿈꾸면서 말이다.
Words cannot describe,
how I am thankful to have a friend like you.
How much I enjoy chatting with you,
me in your room,
you in my room,
sipping on hot tea in our kitchen,
through our high and low times and to all the times yet hidden,
cooking together,
studying together,
I cannot even imagine my exchange student period without you,
so let's keep on growing together; just me and you.
지금은: 여행 중
앞으로 매주 토요일, 저의 여행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보려고 합니다.
Breakfast: http://blog.naver.com/gkdmsinj
Lunch: https://www.facebook.com/thesallypark
Dinner: https://www.instagram.com/thesall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