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숙제는 많은데 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27살 가을에 첫 인턴을 시작했고, 그 해 겨울에 취업을 했다. 28살을 여는 1월 1일부터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로서 나의 사회생활은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주로 퇴사와 입사) 30대 초반까지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당시와 같은 'Fresh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변화를 겪어도 괜찮고, 오히려 그런 변화들이 나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은 곧 '신분의 자유로움'을 뜻했고 신분의 변화가 세상에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곧 나는 아직 변화해도 되는, 변화가 허용되는 '젊은' 존재임을 뜻했다.
사회적 나이가 들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 것은 두번째 회사에서 '대리'가 된 시점이었다. 두번째 회사는 사원원으로서 4년을 채워야 다음 해에 대리가 되는 진급체계였어서 타 회사보다 대리가 늦게 되는 편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대리가 되니 이제는 더 이상 새로움 자체만을 향한 변화의 시기가 다소 지났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를 '선배님'이라 부르는 어린 사원들이 많아졌고, 일도 더 이상 막내처럼 할 수는 없어졌다. 그렇다고 사원 시절에 일을 대충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의 업무를 챙겨주는 것도 나의 업무에 포함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 하나 일을 잘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데, 남의 업무까지 챙겨주면서 대신 혼나기까지 해야하는 포지션이 된 것이다. 해가 갈 수록 더욱 진취적(?)으로 변해가는 새로 들어오는 친구들이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회사 어른들이 계속해서 암행미션을 주어지다보니 업무 외적 부담도 생기기 시작했다. 인수인계도 하나 없이 SAP (ERP 프로그램 중 하나) 프로그램명만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던 환경에서 일을 시작했던 나는, 4년간 혼을 담아 작성한 업무매뉴얼을 후배의 입에 넣어주고 소화할 수 있도록 스트레칭까지 시켜주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바로 대리가 할 일이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런 역할에 큰 불만은 없었다. 꼬박꼬박 월급은 받았으니까. 사원 때보다 연봉이 올랐던 건, 내가 받는 높아진 연봉에 그런 역할까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회사도 그런 기대 때문에 연봉을 올렸을 것이다. 다만 대리가 되고나서 커지기 시작한 불안은 내가 쌓아온 경력이 나라는 사람의 일부로서 꽤 부피감이 커졌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그게 왜 불안의 단초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한 번 시작한 이 길로 계속해서 나아가야만 할 것 같다는 사회적인 압박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남들은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일 수도 있는 '경력'이 왜 나에게는 불안의 이유로 다가왔을까.
인사관리에서 '커리어(Career, 경력)'란 한 개인이 일과 관련하여 얻게되는 다양한 경험들의 총체를 의미하는데 이 개념에 내포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이미 형성된 경력은 이후의 경력 선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을 갖게된다는 점이다. 집수리의 경우에 비유한다면, 도배경력 10년차인 도배사는 도배분야에서만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철거나 미장과 같은 부분에서는 그 경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도배사가 철거나 미장을 하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일을 맡기지 않을 것이고, 맡기더라도 0년차의 페이를 줄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나이가 꽤 든 도배사를 다른 공정에서 써줄 가능성 자체가 일단 적다.) 일단 도배의 길을 선택한 도배사는 경력이 쌓이면 쌓일 수록 도배분야에서만 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경력이 갖는 경로의존성이다.
쉽게 말해,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이 길에 들어온 이상 나갈 때는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 시작한다면 다시 0년차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른 중반의 나이에 0년차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존재할까? 이제 내가 쌓은 커리어는 나의 길이 되었다. 경험이 곧 자산이란 말이 있지만, 한편으로 내가 쌓은 나의 자산은 도리어 나를 붙잡는 족쇄로도 기능한다.
"자기만의 길이 생기면 좋은 것 아닌가?" 또는 "졸업 후 공백없이 바로 취업해서 현재까지 무사히 달려왔으면 요즘 세상에는 다행이편 아닌가? 1차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열에 아홉인 마당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어머니가 그랬다. 1962년생인 어머니는 수입이 괜찮은 직장에도 다니고 있고, 결혼도 했으면 이제 이 길로 쭉 가야한다는 (정확히는, 그렇게 평범하게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믿는) 80년대 모델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퇴사 후 공인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나는 어쩌면 실패자로 보였을지 모른다.
객관적인 사회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음에도 불안과 걱정을 느끼는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했다. 왜 늘 변화와 성장만을 추구하는지, 왜 현재의 길을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지. 답은 간단했다. 원하는 것을 선택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원하는 것 대신 늘 필요한 것만 취해왔기에, 내가 선택한 '필요한 것'으로부터 계속해서 미끄러졌다. 그러나 '욕망'이란 사람의 기본적인 존재조건과 같아서 무언가를 원하는 생각과 행동 자체는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는 한 트라우마처럼 되풀이된다. 나에게 원하는 것을 선택해야하는 문제는 그래서 마치 밀린 숙제처럼 늘 따라다니기만 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늘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고용되는 것을 제1원칙으로 삼아온 것 같다. 대학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일을 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사용'될 수 있는) 나이란 결코 무한하지 않다. 그 유한함도 시대가 지남에 따라 점차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 그 속도마저 가속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나이와 무관하게 회사가 없어질 위험도 존재하니, 결국 '필요한 것'만을 선택하는 전략은 생각보다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원하는 것'을 선택해볼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지는데, 그럼에도 당장의 필요가 충족되고 있는 마당에 굳이 불확실한 '원하는 것'을 선택할 동기는 쉽게 작동하지 않았다.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누군가에게 나는 결국 영원히 미룰 수도 없는 방학숙제를 그렇게 계속해서 미루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