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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렌체장탁 Feb 14. 2024

피렌체 하면 티본스테이크!!

9년 차 현지인이 친구 오면 가는 맛집 베스트 3

 피렌체를 대표하는 음식이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단연 유명하고 맛있는 것은 티본스테이크다.


 T자 모양 뼈 양쪽에 채끝등심과 안심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어
비싼 소고기로 배 터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메뉴.


 보통 최소 1kg 단위로 판매하고 여기서는 그걸 2인분으로 잡지만 내 생각엔 한국인들은 3명도 함께 충분히 나눠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가격은 한국에 비하면 엄청 싼 편이다. 우리나라도 한우 투뿔이 더 비싸듯이 여기도 고기 종류에 따라 가격이 차등화되어 있는데 보통 일반 육우로 주문할 경우 kg 당 55유로 정도하고 이곳 피렌체 토스카나의 명물인 '끼아니나(흰소)' 고기를 주문하면 kg 당 85-90유로 정도 한다. 일반소 기준 한국돈 10만원이 안되는 가격으로 성인 2-3인이 스테이크를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혜자템'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유명한 와이너리인 끼안띠가 바로 근처에 있어 품질 좋은 끼안띠 와인을 하우스 와인 가격으로 고기와 곁들이면 이건 뭐 한국 웬만한 미슐랭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맛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샌드위치 등으로 끼니를 때우며 다니는 학생들이나 배낭여행객마저도 이 피렌체에서는 지갑을 활짝 열어 입에 기름칠을 한다.


 혼자 온 여행객들은 양이 많은 티본스테이크를 시켜 먹기 어려워 '티본 동행'을 구하기도 한다. 여행자 커뮤니티에 '오늘 밤 티본스테이크 함께 드실 분 구합니다!'라고 글을 올려 사람들을 모으고 유명한 맛집을 예약하여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즐거운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배 터지게 고기와 와인을 먹고 나서 소화도 할 겸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피렌체의 잔잔한 야경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사랑이 싹트기도 하는 것은 이 로맨틱한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유럽여행 로망의 끝판왕이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온 사람들의 경우 그 맛에 실망을 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한국인은 한우의 풍부한 마블링과 구이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티본스테이크는 기본 채끝등심과 안심을 부위로 하지만 고기가 무척 두껍게 컷팅되기 때문에 거의 익히지 않은 '레어' 상태로 먹는다. 더 많이 익혀서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너무 익히면 고기가 질기고 퍽퍽해져 그 두꺼운 고기를 씹을 수가 없다. 이 스테이크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고기가 주는 육향과 식감, 그리고 육즙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쉽게 표현하면 '핏물맛' 이기도 한데 그 꼬리한 핏물향과 육고기를 씹는 식감 그리고 레드와인과의 마리아쥬 까지 제대로 느껴버리면 그때부턴 그 맛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실제 핏물은 아니고 육향의 비유적 표현입니다.)


 티본스테이크는 오로지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 등만이 곁들여지기 때문에 소스를 찍어먹는 것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밍밍하고 느끼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건 뭐 취향이기 때문에 이탈리아 현지의 티본이 맛있다, 맛없다는 내가 정의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여기의 방식으로 제대로 먹어보고도 맛이 없다면 내 소고기 취향을 알게 해 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며 너무 심한 비판은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나는 특이하게도 식고 나서의 티본스테이크를 더 좋아하는데 식은 고기 덩어리를 잘게 잘게 잘라서 안주삼아 와인을 마시면 고기 맛이 더 진하게 잘 느껴지는 것 같아서이다. 뜨거움에 감춰진 고기 자체의 맛이 식고 나서 오래 씹으면 더 잘 느껴진다. 그래서 보통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러 가면 나는 친구와 와인 한 병을 시켜다가(사실.. 두 세병?) 오래오래 즐기며 먹는다. 식사시간이 3-4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충분히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날,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레스토랑들을 찾다 보니 예전과 가는 곳도 많이 달라졌다.


  우선 피렌체에서 제일 유명한 티본스테이크 집은 'Trattoria Dall'Oste(달오스떼)'이다. 사장과 친구이기도 하고 처음 피렌체에 왔을 때 공짜 스테이크를 많이 얻어먹기도 해서 아직도 심심치 않게 가는 곳이다.  이곳은 한 개 지점으로 시작해서 지금 거의 6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피렌체 레스토랑의 성공신화에 가까운 곳이다. 특히 사장이 한국인을 타깃으로 하여 마케팅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 성공했기 때문에 한동안 피렌체 레스토랑 사장들 사이에서 '한국인 잡기'가 유행이 되기도 했었다.


 한국인은 무조건 스테이크를 시키고 와인도 병으로 시켜서 객단가가 높은 데다가 밥도 빨리 먹어서 회전율도 좋다는 걸 눈치챈 사장은 한인민박과 한국인 가이드들에게 쿠폰을 제공하여 한국인들에게 할인을 제공하였고 한국어 메뉴판, 한국인 직원 고용 등을 통해 한국인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했다. 심지어 한국에서 유명한 이탈리아인인 '알베르토'를 광고모델로 고용하고 '피렌체 한국영화제'의 가장 큰 후원자 이기도 하다. 자기들 국경일에는 아무런 행사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광복절에는 '반값할인' 행사를 하는 걸 보면 말 다했다.


 이런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이 레스토랑의 가장 큰 장점이다. 다만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너무 상업화가 되었고 맛도 약간은 복불복이다. 좋은 고기가 걸리면 맛있고 좀 품질이 떨어지는 고기가 걸리면 그저 그렇다. 워낙 대량으로 매입하고 매일 엄청난 양이 판매되기 때문인 것 같다.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괜찮지만 늘 사람이 많아 여유 있는 식사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손님들에게 추천은 해주되 내가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내가 없어도 워낙 흥한 곳이라.. 뭐...


 보통 언어에 자신이 없고 메뉴 고르기 어려워하는 분들이라면 어쨌든 달오스떼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기분 좋게 적당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문안한 선택지이다.


 다만 현지인들이 가는 찐 맛집을 추천해 달라는 손님들이나 내 친구들이 놀러 오면 가는 곳은 따로 있다.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가 된 김에 그중 세 군데 정도만 공개해보려고 한다. 나의 엄청난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임을 유의하며 피렌체에 오게 되시면 살짝 참고만 하시길.


1.       OSTERIA BELLE DONNE (오스테리아 벨레돈네)


 이곳은 우선 인테리어가 무척 예쁘다.

 1층은 자연친화적으로 식물이 많이 들어가 있고 지하는 고급스러운 BAR 같은 분위기이다. 또 밖에서 창문을 두드리면 와인을 파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늘 레스토랑 앞에 와인잔을 들고 길거리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유럽느낌 한가득!

 다른 것보다는 고기류의 메뉴가 다 맛있다. 티본스테이크는 물론 여러 스테이크 종류가 있는데 안심스테이크를 비롯 모든 스테이크가 훌륭하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광장 근처에서 5분 정도 거리이고 구글맵으로 예약이 가능하니 참고. 직원들도 친절한 편이다. 나는 휠체어 탄 어르신과 유모차 탄 아기를 동반한 일행과 같이 간 적이 있는데 불편하지 않게 자리 배치도 신경 써주고 어마어마한 짐도 잘 보관해 주었다. 와인 리스트도 괜찮은 편이고 가격대는 중간보다 조금 비싼 수준. 딱 고기 먹으러 가기 좋은 곳이고 파스타는 트러플 파스타와 라구파스타가 괜찮았다.



2. RISTORANTE DEI ROSSI(리스토란떼 데이 로씨)


이곳은 달오스테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친구가 독립하여 차린 레스토랑이다. 무려 구글 평점 4.9점을 자랑하는 만큼 맛과 서비스는 보장되어 있다. 위치는 베키오 다리 바로 근처인데 강 건너 동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실내 테이블보다는 바깥 야외 테이블이 식사하기에 더 좋은 분위기이다. 역시나 구글맵으로 예약이 가능하다.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어서인지 음식이나 고기 퀄리티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리고 달오스떼 사장 밑에서 한국인들을 많이 응대하던 친구가 사장이라서 한국인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는 편이다. 파스타류 티본스테이크 모두 맛있었다. 와인을 마시다가 국물이 당긴다는 내 친구가 봉골레 파스타에 면을 빼고 국물을 많이 해서 주면 안 되냐니까 셰프가 거의 조개탕을 끓여준 건 안 비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면 안 되긴 하지만 어쨌든 고객을 많이 배려해 주고 맛도 있어서 자주 가게 되는 집이니 추천한다. 아! 사장님 아주 잘생겼다.


3.  TRATTORIA 13 GOBBI (트라토리아 13 고비)


이곳은 현지인들 사이에 정말 유명한 맛집이다. 한국인들보다는 현지인과 외국인들 사이에서 더 유명한 곳이다. 성수기에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절대 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주말 내내 예약이 꽉 차 있으니 가보고 싶다면 미리미리 서두를 것! 우리 집에서는 아주 가까워서 손님들에게 현지인 맛집으로 늘 추천하는 곳이다. 티본스테이크 아주 맛있고 '리가토니'라는 짧은 면의 토마토 파스타가 아주 유명하다. 꼭 떡볶이 같은 비주얼을 가진 이 파스타는 신선한 토마토소스에 찐득찐득한 치즈가 들어있어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제 맛인데 티본스테이크의 느끼함을 환기해 주는 역할도 하는 편이라 둘의 궁합이 환상이다. 또한 이곳은 베테랑 할아버지 서버들이 서빙을 하기로도 유명한데 이탈리아 답지 않게 나름 대응이 빠른 편이나 너무 늘 사람이 많은 곳이다 보니 계산서 가져다주는 데는 30분 이상 걸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 집은 티라미수나 디저트류도 다 맛있고 사이드로 감자를 시키면... 지금까지 먹은 감자는 다 쓰레기였다는 걸 알게 해 주는 고기보다 맛있는 감자를 맛볼 수 있다. 두세 달에 한번 꼴로 피렌체에 놀러 오는 내 친구의 최애 티본 맛집이니 한번 믿어보시길 바란다.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에 부담을 느껴 쓰기 시작한 글이지만 이제야 티본스테이크에 대해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들을 좀 풀어낸 것 같아서 속이 다 시원하다. 그리고 쓰다 보니 또 먹고 싶다.


 내일은 밸런타인데이인데... 누가 나 티본 사줄 사람 없나? 어..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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