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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렌체장탁 Jul 03. 2024

슬프지만 의연하게 보내는 하루

생일이니까!


 끝은 각오하고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가 평생 직업은 아니니까. 그래서 글도 쓰고 다른 일들도 조금씩 하면서 간은 보고 있었지.

적어도 나의 마무리는 내가 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올해 안에 다른 일들을 궤도에 올린 후에 아쉽지만 탁하우스는 그만해야겠다고 스스로 결심했다. 


 7월 1일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건물주의 연락이었다. 

보통은 건물주와 집주인은 별개라 큰 관계가 없지만 내가 탁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건물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19세기 백작가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건물... 백작저..


 우리 집주인은 그중 건물주의 아들인데 자기 집을 세를 주고 자기는 나가서 살면서 내가 주는 렌트비를 생활비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난 정당한 계약을 맺고 들어왔고 집주인과 나름 대화도 잘 통했기에 문제없이 탁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작년 말부터 집주인이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자꾸 잊어버리고... 돈을 받아놓고 안 받았다고 하거나 내가 준 공과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 밀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때부터 스트레스와 불안은 극도로 치솟았지만 그저 좋게 좋게 넘어갔다.


 건물주 할아버지는 나를 자신의 작은 사무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네가 살고 있는 그 집의 주인인 내 아들은 지금 정신에 큰 문제가 생겼어. 우리는 그를 계속 도우려고 했고 지켜봤지만 이제는 너무 심각해져서 우리가 직접 돌봐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네가 사는 집에 우리 아들을 다시 불러와서 의사와 함께 상주하며 치료시키려고 해. 우리한테는 정말 긴급한 상황이야.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최대한 빨리 나가줬으면 좋겠어."


"(뭔... 개소리야?) 하지만 우리 계약 기간이 있잖아?"


" 그건 중요하지 않아. 우리는 최대한 문제는 일으키고 싶지 않아. 네가 원하는 조건을 말해줘. 다만 어쨌든 넌 우리 건물에서 나가야 해."


" 일단 계약서를 다시 검토해 보자."


 이렇게 말하고 뒤 돌아 나왔지만.. 그냥 건물도 아니고 가족 전체가 거주하고 있는 건물에서 주인이 결정한 이상 내가 대응할 방법은 전혀 없다. 변호사를 고용한다고 해도 시간도 백만 년 걸릴뿐더러 한 가족이 막아서는 이상 탁하우스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 개 같은 상황을 벌써 두 번째 당하고 있다. 집주인이나 건물주민들의 횡포로 쫓겨나는 일....

 외국인이라서 혼자라서 아무 힘이 없어서 대응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


 아니 나가려고 했다고. 몇 달 뒤에!!!!!


 당장 취소해야 하는 예약과 손해가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생일을 맞이한다. 엄마의 축하 전화에 애써 태연한 척을 했지만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해외 생활 9년 차지만.... 현지인이 마음먹고 밀어내는 데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왜 슬프냐고? 

나의 청춘을 바친 첫 비즈니스인 탁하우스를 접어야 해서? 큰돈을 손해 봐야 해서? 아니면 피렌체를 떠나야 할지도 몰라서?


 아니다. 내가 슬픈 이유는 내가 굳건하게 쌓아온 것들이 사실 허공 위에 쌓은 성이라는 것을 깨달아서이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뭐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견문을 넓히고 단단해졌으면 뭐 하나. 

타인의 변덕 하나에 이렇게 쉽게 허물어져버리는 경험을 두 번이나 해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큰 대항수단이 없다는 것.


 그게 내가 슬픈 이유다.


 남들보다 크게 잘나게도 그렇다고 나쁘게도 살지 않았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손님들에게는 진심을 다했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와 책임을 지켰다.


 그런 나에게 돌아오는 게 겨우 이런 건가?


 집주인이 돈에 급해 보이길래 작년부터는 3달 치 월세를 당겨서 한 번에 주고는 했다. 급한 돈이 있다고 하면 때가 아닌데도 먼저 쥐어주기도 했다. 결국 내가 했던 일들이 신뢰를 쌓는 것이 아니라 정신병에 걸린 사람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에 불과했던가.


 울분이 터지고 슬프다. 숨 쉴 때마다 피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나는 또 '까라면 까야지.' 라며 다음을 준비하기도 한다. 

의연하게 그리고 태연하게.


할 수 있다. 몇 번을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수도 다시 자리를 찾는 것도 내 주특기니까. 

자존심을 다 내버리더라도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게 내 최대 장점이니까.


 다만 부모님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내 소식에 마음 아파 할 많은 나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이들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이 글을 적는다.  슬프지만 의연하게.


 오늘은 내 생일이다.

나는 오늘을 충분히 즐길 것이다. ㅈ같아도 생일은 생일이니까.


그리고 다음을 계획할 것이다.

밟고 밟고 또 밟아도 다시 피어날 것이다. 그게 내가 태어난 이유이고 엄마가 내게 물려준 강인함이니까.


 생일 축하한다! 장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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