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난 이여 사랑해 정말
대체의 엑스트라, 약간의 주연
생일이면 두 가지 감정이 든다. 또 한해를 무사히 살아왔다는 감사와. 또 한 살 더 먹었다는 아쉬움의 교차다. 생일이면 부담스러운 것도 생긴다. 주인공이 되어 선물을 받으며 사랑의 언어를 화환처럼 받는 일이 그렇다. 주인공으로 대접받지 못한 지난 시절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엑스트라나 조연, 행인 1 행인 2로 단막극이나 출연한 사람에겐 생일이랍시고 무대에 올라오라는 기분이 달갑지만은 않다. 생각해 보면, 세상은 더욱 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다. 엑스트라의 시대에 주인공을 갈망하는 구조다. 대중의 목소리, 다수의 의견, 단체의 목표가 우선인 문화는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회의 트렌드 아닐까? 그 와중에 개인의 이런저런 욕망이나 취향은 뒷전으로 물러나야 해서, 경쟁으로 이미 지치고 차가워진 사회가 더욱 싸늘하다. 그럼에도, 일 년에 한 번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에 과분한 처우를 감사한다. 부담스럽다 하지 말고, 소담스럽다 하자. 손바닥에 가득한 꽃송이 한아름처럼 나의 삶이 오늘만이라도 소담스럽다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