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가을이 되었습니다. 땅에 충만하라는 법칙에 복종하던, 어떤 계절의 뒤로 10월이 된 나도 서있답니다. 잘 살아온 시간과 잘 살지 못했다는 경험이 키재기 하다 그래도 위로 하나 찾고 싶어 몇 푼짜리 영화관의 상영 드라마로 잣대를 돌립니다. 들과 처마 밑을 덮느라 분주했던 후덕한 계절은 에누리 없습니다. 꽃을 손질하는 사이 데마처럼 세상으로 가버린 태양, 저런 깻잎 이런 호박을 겨우 키워 익는가 싶어 침을 삼켰던 가룟인의 삼십 량 짜리 포도로 매섭게 태양의 기울기는 내려앉았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꽃술의 씨알처럼 뒤척입니다. 날아오르겠다는 허구가 여전히 못 날아간 민들레 홀씨 앞에 아쉬움으로 먹먹해지고, 복종과 순종, 나아감과 버팅김, 자발과 이타심이 짜깁기된 나는 꽃이었습니다. 들판과 처마 밑에 기웃기웃, 틈바구니에서 분신을 낳고, 과시하고 싶어 하던 나의 병명은 꽃이랍니다. 잎은 화려해 수분을 흡입하던 주둥이, 숨이 막힌 듯 떨고 있습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지만 아무나 볼 수 있는 곳에 터를 틀었던 과오를 반성합니다. 내실을 다지지 못한 어설픔을 용서 바랍니다. 그리고 꽃이 다시 피는 날 다시 봐야 할 목록을 주섬주섬 줍겠습니다. 좀 더 올바르고 좀 더 사려 깊은 낭만으로 우리 다시 만나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