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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Aug 17. 2024

도시락과 나

도시락과 나

                                           김경래

 

나는 반찬이다

스물셋에 내게 피난 온

도시락을 닮은 여인에게

나는 잘 어우러진

시금치 당근 노란 무다


손끝이 딱풀 같이 나붙고

고추장에 나물이 새색시 수줍음인 것은

사랑은 양념이 되고

사람은 먹이지 않으면

들판으로 달아나려는 형편 때문이다

깨알 같은 사랑 외에

도시락에 담긴 영양소는 없다


오늘도 벌써 여러 해

나는 그대가 도시락을 싸는

이유 있는 반찬이다.




만나 사랑하던 사람의 젊은 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가난한 청년 곁의 연인은 “얼굴” 하나 봤다고 고백할 만큼 재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인데, 젊은 날의 착각 아니면 시집 장가 못 갈 사람이 지금 주위에 즐비할 갓 같은 아찔함이 교차하는 고백이었답니다. 그러므로, 배고프면 먹이고, 외로우면 다가가고 싶었답니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김밥을 둥기둥기 싸 고궁으로 도서관으로 열심히 달려옵니다. 그대가 먹는 것이 나의 배부름, 그대가 행복하다면 곁에 있어주리라는 그 당당한 모성애가 왜 연인에게로 향했는지 도시락에서 결국 발견합니다.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게 없고, 먹이는 일만큼 숭고한 것이 없는데, 연인을 먹이기 위해 김밥을 말기란, 이미 사랑하는 이를 당근 노란 무로 삼아 김밥을 말고 있는 행동입니다. 그대가 아니라면 김밥을 말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정당한 사실로 오늘도 이 땅의 역사가 채워지고 있음을 보면 다 알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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