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수, 강희용이 쓴 "강남의 탄생"은 서울에서도 강남이라는 한정된 지역의 역사서로서, 도시개발과 건축물을 중심으로 현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강남이라는 한정된 지역을 다루는 최초의 책이라고 하는데, "강남"이 대한민국에서 가지는 특수한 위상을 고려해 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는 책인데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가, 서울의 도시개발과 당대의 대중가요를 연결해 설명하기 때문이다. 한남대교 건설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소개하고, 강남 아파트 건설 열풍을 설명하면서, 윤수일의 아파트를 소개한다. 당대의 최고의 히트곡이기 때문에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잘 아는 노래이다. 내 경우에도 어린 시절에 TV에서 나오던 노래를 많이 들은 기억이 난다. "아파트"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저자는 이 가사가 당시의 강남 아파트 주변 풍경을 제대로 묘사했다고 이야기한다. 당시에는 과수원, 논, 밭, 갈대밭만 있던 강남에 아파트만 지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 강남이 계속 개발되면서, 현재는 갈대밭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강남이 현재와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를 교통 인프라의 건설이라고 설명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경부고속도로, 한남대교, 고속버스터미널의 건설이 이루어짐에 따라 강남은 서울의 구도심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 물류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강남으로의 명문학교 이전을 이야기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힘들지만, 당시 군사정권에서 강남을 개발하기 위해 동원하던 다양한 수단 중에 하나이었던 것이니, 오히려 정부 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강남 개발의 이면에 있는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사건은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다. 성수대교는 94년 10월 21일 오전 출근시간에 붕괴되어 49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으로 세간에 큰 충격을 안겼고,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한국의 건설 기술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채 1년이 되지 않은, 95년 6월 29일 오후 6시경에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고, 이로 인해 14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두 사건은 90년대 강남에서 발생한 가장 큰 참사인데, 당대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비슷한 수준으로 사상자를 발생시킨 건물/교량의 붕괴사고는 없었으나, 세월호 사건을 보면, 과연 대한민국 사회가 안전한 사회인가 하는 의심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잘 알고 있던 사실과 잘 몰랐던 사실이 연결되면서, 한국 근대사에서의 강남의 위치가 어떠한 지를 알 수 있다. 군사정권이 주도해서 계획하고 진행한 강남 개발은 굉장히 빠른 시간에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 냈지만, 개발과정에서 많은 비리가 동반되었고, 강북-강남의 불균형도 심해졌다. 이 책을 통해 현재 서울의 문제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더 나은 서울이 되기 위해서 어떠한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