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참견할 용기를 가져보자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장하준 저 / 김희정 역 / 2014년 한국어 초판 출간
책을 소개하기 전에 저자인 장하준 교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같은 경제학 책을 쓴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다. 그는 한국사람이긴 하지만 영어로 저술을 하고, 한국어판은 번역가가 번역을 해서 나온다고 한다. 이 책도 그렇게 쓰였다. 그렇지만 외국도서가 번역될 때 나오는 특유의 번역체는 딱히 보이지 않아서 신기했다.
어느 날 밤, 영국왕립예술협회의 유튜브 동영상 한 편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되었다.(링크) 그 동영상은 장하준 교수의 실제 강의 내용을 한 편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 동영상은 굉장히 놀라웠다. 기존에 내가 경제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특히 경제학에는 최소한 9가지의 학파가 있다는 사실이다. 동영상을 보고 나니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에 대한 상세한 강의가 듣고 싶어 졌고, 이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본문이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앞뒤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붙어 있다. 지금부터는 본문 12개 장 중에 3개 장(4장, 9장, 10장)을 뽑아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이 책을 택배로 받고 나서 제일 처음으로 읽은 부분은 9가지 경제학을 소개하는 부분인 4장 "백화제방"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9가지 경제학은 다음과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9가지 경제학에 대한 설명을 모두 읽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고전주의, 신고전주의, 마르크스, 개발주의, 슘페터, 케인즈 경제학에 대한 설명만 읽었고 나머지 3가지 경제학에 대한 부분은 넘어갔다. 일부만 읽었지만, 경제학을 "하는" 방법이 상당히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현대 경제학의 주류는 신고전주의다. 그리고 그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 고전주의이다. 둘의 공통점은, 첫째 경제주체들은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시장의 경쟁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사회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라는 생각, 둘째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유지한다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고전주의에서는 경제주체를 주로 계급으로 보고,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비해, 신고전주의에서는 경제주체를 개인으로 보고, "소비와 교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고전주의는 불황이나 실업과 같은 거시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구닥다리 취급을 받으며 비주류가 되었다. 이에 비해 신고전주의는 현대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매김하였는데, 신고전주의는 지향하는 정책에 따라 의견이 갈라진다. 하나는 자유시장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개입주의이다.
신고전주의는 경제학의 주류이기는 하지만,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한계점은 바로 "소비와 교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생산"과 같은 다른 부분을 도외시한다는 점이다.
(...)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도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는 '숲 가장자리에서 도토리와 산딸기를 교환하는 외톨이 인간들'을 분석하는 데나 맞는 이론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또한 신고전주의는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하게 가정하는데 이것이 두 번째 한계점이다. 실제로는 이 가정과 모순되는 사례와 증거가 상당히 많다. 세 번째 한계점은 현 상황을 과도하게 수용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근본적인 사회 변화 없이 가능한 선택만 고려하게 된다. 저자는 그 예시를 아래와 같이 보여준다.
예를 들어 많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 심지어 좌파 성향의 '리버럴'한 폴 크루그먼조차 가난한 나라 공장의 저임금 정책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저임금 노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다른 선택은 실업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맞다. 만약 우리가 저변에 깔린 사회 경제적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기꺼이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고 나선다면 저임금 노동 말고도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새로운 노동법을 만들어 노동자 권리를 강화하고, 토지 개혁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농촌에 머물게 하여 저임금 공장 노동자의 공급을 줄이고, 산업 정책을 시행해 고숙련 고임금 직장을 창출한다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저임금과 실업 사이가 아니라 저임금과 고임금 사이가 될 수 있다.
8장에서는 '금융 혁신'과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기서 말하는 '금융 혁신'은 90년대부터 각종 금융 규제가 없어지면서, 부채 담보부 증권(CDO)과 같은 구조화 상품과 다양한 파생 금융 상품이 개발되어 금융업이 크게 성장한 일을 말한다. 저자는 이렇게 개발된 다양한 금융상품이 실제로는 안전하지 않지만, 안전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2008년 금융 위기를 촉발시킨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2008년 금융 위기의 간략한 전말에 대해,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008년 금융 위기는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부터 시작되었다. 서브프라임 주택 대출(모기지 론)은 기본적으로 리스크가 큰 상품(채권)이다. '서브프라임'이라는 말이 채무 불이행 위험이 높은 대출을 의미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리스크가 큰 상품(채권)도 수 천 개를 묶어서 주택 대출 담보부 증권(RMBS)으로 만들고, 다시 구조화하여 부채 담보부 증권(CDO)으로 만들고 다시 작게 쪼개서 '트랑슈'로 만들면서, 일부 트랑슈를 AAA 신용 등급을 받는 '상급 트랑슈'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AAA 등급의 트랑슈 또는 다양한 파생 금융 상품들이 거래되면서, 그 기반이 되는 상품의 가지고 있는 리스크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게 되었다. 다수의 금융관계자들이 미국 주택 가격에는 거품이 없다고 호언장담했었지만, 2007년과 2008년에 주택 가격 거품은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에 따라 "높은 주택 가격으로 지탱되었던 부채 담보부 증권(CDO), 신용 부도 스와프(CDS) 시장도 같이 무너졌고, 그 결과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금융 위기가 몰아닥쳤다." 리만 브라더스와 같은 금융사는 해체되었고, 또 다른 금융사들은 구제 금융과 정부 보조금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비어 버린 정부의 금고는 세금을 올리고 정부 지출을 줄여" 전 국민이 다시 채워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저자는 위와 같이 설명하면서 이 사태의 주원인으로 지나치게 복잡한 금융 상품을 지목한다. 저자는 금융 시스템의 발달, 그 자체는 필요한 것이지만, 근 30년간 부상한 '새로운 금융'을 경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대표적이고 가장 규모가 큰 위기는 2008년 금융 위기이지만, 지난 30년간 계속해서 벌어진 조금 더 작은 규모의 금융 위기들도 다 이 '새로운 금융'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금융이 갖는 위력과 중요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며, 지나치게 복잡한 금융 상품을 규제해야만, 앞선 금융 위기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2008년 금융 위기를 참 명쾌하고도 간결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다만, 한편으로는 저자와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긴 한다.
10장 "일과 실업"에서는 노동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은 부분은 국가별 연중 노동시간을 다루는 부분이다.
우선 책에서 근거로 하는 통계(실제 숫자)를 정리해 보자. 책에서는 2011년 OECD 통계를 근거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재 확인 가능한 최신 통계인 2017년 통계도 같이 확인해 보자.(OECD 통계) 책에서는 연중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가 네덜란드, 독일, 노르웨이, 프랑스이고, 가장 긴 나라는 멕시코, 한국, 그리스, 미국, 이탈리아라고 한다.(2011년 통계) 2017년 OECD 통계를 참조해 보면,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이고, 가장 긴 나라는 멕시코, 한국, 칠레, 그리스이다. 크게 양상이 바뀌지는 않았다.(코스타리카와 러시아는 통계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OECD 회원국이 아니므로 제외했다.) 2017년 기준으로 (노동시간이 가장 긴 국가의) 국가별 노동 시간은 멕시코 2257시간, 한국 2024시간, 칠레 1954시간, 그리스 1906시간이며, OECD 평균은 1744시간,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의 경우는 1356시간이다.
책에서는 이 숫자들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어느 나라 국민이 열심히 일하고 어느 나라 국민이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문화적 고정관념이 전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락) 미국에서 '게으른 라티노'의 전형으로 통하는 멕시코 사람들은 사실 '일개미' 한국인들보다 실제 일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중략) 유로화 위기가 계속되면서 그리스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하는 북유럽 사람들에게 빌붙어 먹고사는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는 선진국 가운데 한국을 빼면 가장 일을 길게 하는 나라이다.
위의 글을 읽고 나도 잘못된 편견에 빠져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흔히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게으르다, 따뜻한 지방(지중해 지역이나 열대 지방)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편견,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편견 말이다.
이러한 오해가 생기는 이유를 2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19세기나 20세기 초의 정보, 너무나도 시대에 뒤떨어진 정보에 의존하여 형성한 관념을 계속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가난은 게으름의 산물이고 가난한 나라의 사람일수록 더 게으를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일수록 더 게으르다"는 편견은 잘못된 것이고, 그들이 가난한 것은 그 나라의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낮은 생산성에 대해서는, 그 나라의 정치가와 자본가, 즉 생산성을 결정하는 요소를 장악하고 있으면서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경제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시작한다.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도 많다. "경제학은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경제학에서도 물리학 법칙과 같은 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우주의 모든 현상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답변이 가능한 것이다.(일종의 물리학 선망, physic envy) 하지만 저자는 "경제학은 경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경제학의 법칙들은 물리학의 법칙처럼 될 수 없다고 한다. 물리학에서는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하고 가치판단을 배제한 이론 전개가 가능하지만, 경제학에서는 모든 측정이 객관적이지 않고 항상 가치판단이 개입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학을 "경제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경제학이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까? 현대 경제학의 주류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는 주로 "개인", "개인의 합리성", "교환", "소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신고전주의적 관점만 고수하면 결국에는 편협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교환과 소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산"과 그와 연관된 요소도 중요하며, 개인은 합리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때때로 또는 자주 비합리적이다. 경제 주체로서 "개인"의 개념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계급"의 개념도 중요하다.
이 책 전체를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는 아래와 같다.
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고 한다. 경제학 이론은 절대적인 한 가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복잡한 경제학적 현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을 한 가지 더 꼽아보면 아래와 같다.
복잡한 경제 문제에 대해 직접 고민하기보다는, 경제 전문가인 경제학자들에게 모두 맡겨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경제가 너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전문가는 말 그대로 아주 좁은 영역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서 하나 이상의 넓은 영역이 결부된 문제(즉 대부분의 문제)에서 다양한 인간적 필요와 물질적 제한, 도덕적 가치를 모두 고려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려 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전문 지식을 가지게 되면 시각이 더 편협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전문 지식에 약간 회의론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경제학뿐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포장을 씌운 정치적 주장인 경제학에서는 이 태도가 특히 중요하다.
또한 저자는 "경제학자를 비롯한 전문가에게 기꺼이 도전하는 자세가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강조한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경제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동안 경제학을 오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비롯한 다양한 편견에 휩싸여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덕분에 이제는 조금 더 넓은 시각,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경제에 참견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