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숨 쉬게 해주는 것 하나쯤은 있어야지
직장생활을 광화문에서 시작했다. 신입사원 때부터 시작해 대리 3년 차가 될 때까지 쭉 광화문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니 나의 많은 추억들은 광화문에 모여있다. 직장생활에 울고 웃은 기억들이 있는 곳도, 지금의 남편을 만난 곳도, 우리가 가장 많은 데이트를 한 장소도 광화문이다. 지금은 미리 계획하지 않으면 더 이상 광화문에 갈 일이 없으니 나의 추억들은 더 이상 다른 기억들로 묻히거나 훼손될 일 없이 그곳에 박제되었다. 그래서인지 광화문을 떠올리면 왠지 마음이 울렁인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열정이 넘쳤다. 최연소 여자 임원이 될 거야, 엄마한테 떵떵거리며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 결심이 와장창 부서진 건 입사한 지 3개월도 되기 전이었다.
회사가 네모난 모양이라면 나는 규칙 없이 그린 별 모양의 사람이었다. 이리저리 뿔 같은 것들이 나도 모르는 방향으로 돋아나 있어서 도무지 네모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주변 동기들은 어떻게 들어갔지, 네모인 척하는 건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첫 상사는 아주 강퍅한 사람이었다. 사람이 이렇게나 서로 안 맞을 수가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내려갔다. 나는 불편한 상황에서 밥을 먹으면 꼭 체하는데, 불편한 사람과 불편한 대화를 하며 밥을 먹으니 체하는 날이 잦았다. 상사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건강관리를 안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나의 생활패턴까지 간섭하기 시작했다. 아침을 잘 챙겨 먹으라는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내가 출근하면 아침으로는 뭘 먹었는지 체크를 하려 했다. 자취하는 사람이 아침을 챙겨 먹어봤자 뭘 얼마나 잘 챙겨 먹겠는가. 얼렁뚱땅 대답하거나 거짓말로 대답하면 거짓말한다고 화를 냈다.
나는 탈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고, 그 후엔 은행에 간다고, 또 그다음엔 병원에 간다고... 탈출해서는 다른 팀의 동기와 점심을 먹었다. 그러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동기가 TF 팀으로 발령이 나서 다른 지역으로 배치되었다. 그렇다고 점심을 다시 팀에서 (상사와) 먹을 수는 없으니 나는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와 빵 혹은 샌드위치를 사 와서 자리에서 몰래 먹었다. 점심시간의 산책은 나의 숨구멍이 되었다. 나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폭염에도, 심지어는 태풍이 와도 산책을 나갔다.
광화문은 넓은 도로가 많아서 걸을 곳이 많았다. 큰 건물들 위주라 걷기 좋은 거리는 아니지만 대로변을 따라 경복궁 앞까지 크게 도는 나만의 산책 코스를 만들었다. 5월이면 정부청사 펜스와 경찰청 담벼락에 흐드러진 빨간 장미나 능소화를 볼 수 있었고 10월이면 은행나무가 노오랗게 물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봄, 가을은 걷기 좋았지만 여름과 겨울은 산책하기가 힘들었다.
회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교보문고가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서점은 언제나 천국이었다. 광화문 교보문고는 규모가 큰 편이라 핫트랙스까지 겸해 있었기에 구경할 것도 많았다. 처음에는 날씨가 궂은날만 교보문고 안을 뺑뺑 돌았는데 나중에는 산책의 종착점은 언제나 교보문고가 되었다. 회사에서 나와 경복궁 앞까지 크게 한 바퀴 돌아서 해태상 앞을 지나 교보문고로 가는 것이 나의 산책의 시작이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교보문고 안을 하염없이 돌아다니다 궁금했던 신간 구경을 하고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점심루틴이 되었다. 다른 팀 어떤 동기는 나더러 교보문고의 NPC(Non-Playing Character)라고 했다. 나를 찾고 싶으면 교보문고로 가면 된다고.
교보문고의 NPC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에 교보문고에 가면 매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매일 보이던 어떤 사람은 매일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와 매일 한 시간을 통화를 할까, 아내일까, 그렇다면 정말 사랑꾼이네,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나쳤다. 대부분의 NPC들은 나처럼 이어폰을 꽂은 채 산책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저들도 나처럼 숨구멍을 찾아서 교보문고로 온 걸까 궁금했다. 다들 이렇게 힘들게 회사를 다니는 걸까. 왜 이렇게 힘들게 회사를 다녀야만 할까. 혹시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건 아닐까. 그래도 숨구멍이 있다는 사실이 많은 위안이 되었다. 걷고 음악을 듣고 책을 구경하는 동안만큼은 잠시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었다. 그러면 오후는 그래도 버틸 만했다.
7년 차가 되던 해, 회사는 을지로 4가로 이사를 갔다.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상사는 회사가 이사 가기 전에 잘렸다. 상사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심산책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의 일부는 이미 교보문고의 NPC가 되어있었다. 졸지에 터전을 잃은 NPC는 또 다른 교보문고를 찾아 나섰다. 을지로 4가는 좁디좁은 인도에 횡단보도가 너무 많아서 산책할 만한 거리가 없었다. 지하로 내려갔더니 DDP부터 을지로입구 롯데백화점까지 쭉 이어지는 지하도가 있어서 걸어봤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고 '교보문고'로 삼을만한 롯데백화점은 너무 멀었다. 그러다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 교보문고가 있는 걸 발견했다. 광화문 교보문고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그래도 교보문고였다. 다시 숨구멍을 찾은 기분이었다. 아마 교보문고가 없었다면 나는 여태껏 회사를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교보문고를 찾은 지 3년이 채 되지 않아 이직을 했다. 계획하지 않았던 이직이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새로운 숨구멍을 찾을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고, 만약 찾지 못한다면 회사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직장생활 10년 차가 되어도 나는 네모가 되지 못하고 별 모양의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네모가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숨구멍을 찾아 나섰기 때문일까. 지난 10년 동안 네모가 되려고 노력했다면 그런 것 없이도 수월하게 회사를 잘 다녔을까. 여러 가지 불확실한 상황을 앞에 두고 나는 두려웠다. 10년 동안 만들어놓은 나의 세상,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오래된 사람들, 점심 산책, 출퇴근 루트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면에서 나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만약 이직을 하게 된다면 나를 지탱해 주는 여러 가지 것들이 계속 남아있을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직을 선택했다. 이왕 눈앞에 나타난 길이라면 한 번 가보는 것이,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걱정이 무색하게도 다행히 나는 새로운 점심루틴을 세팅했다. 다른 요소들은 차치하더라도 숨구멍을 하나 만들었으니 나는 한동안 직장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네모가 되었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노력할 생각도 없었지만) 하지 않는다. 나는 별 모양의 사람이고, 이대로도 괜찮다.
누구에게나 '교보문고'는 필요하다. 당신의 '교보문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