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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Dec 25. 2023

2023




정말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한 해 #mood 정말 너무 많은 일이 잇엇어 힘들다진짜. 그래도 돌아보면 잃은 것보다 얻은 게 훨씬 많은 한 해다. 힘들 때마다 lucas popan이란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곤 했다. 그럼에도 아쉬움보다 그로부터 배운 교훈이 많고 크다. 데이비드 고긴스가 말해따.. there's no losing, only learning... 물론 데이비드 고긴스나 루카스 포판 같은 사람들도.. 이런 어구도 모를 만큼 안 힘들었으면 더 좋았을 터이지만... 어쩌겠냐..


블로그에 남겨둘 만한 일은 예년에 비하면 훨씬 적게 했다. 11-12월에 일이 몰려서 1-2월에 뒤늦게 소개할 일이 있을 것 같다. GV도 몇 건 했지만 그런 건 일단 빼놓고..


3월



3월에는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초이스로 '김나영 감독전'을 기획하고 GV했다. 오오극장 티스토리에 GV 기록이 올라와있다. 부끄러워서 흐린 눈으로 한 번 읽어봤는데 그래도 과거의 내가 꽤 재밌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가령 "영화가 일상에 있으니까 영화를 뒤로 되감아서 볼 수도 있고, 분석을 해보려고 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일상 외부에 영화가 있는 사람이랑 일상 안에 영화가 있는 사람이 영화에 대해 갖는 감각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해요." 돌아보니 이 생각이 한 해를 꽤 지배했다. 일상 바깥의 영화가 아니라 일상 안의 영화를 찾고자 꽤 노력했고 그런 노력에 가닿는 영화들을 찾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김나영 감독의 영화가 참 귀하고 GV도 값졌다. 김나영 감독은 9월에도 관객 프로그래머 영화제에서 강연을 했고, 거기서 신작 영화 〈일과 나날〉을 공개했다. 〈일과 나날〉과 강의록은 오오극장 티스토리에서 볼 수 있다. 내가 뽑은 올해 최고의 영화(적 순간) 중 하나이므로 모두 시간을 내어서라도 보시길 권한다.


6월


6월에는 한국영상자료원이 구글 아트 앤 컬쳐에 발행하는 큐레이션의 하나로 '〈하녀〉의 집 안으로'라는 포스트를 만들었다. 기획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하녀〉만 소개해도 한정된 분량을 훌쩍 초과했던 걸로 기억한다. 코멘터리나 비평 등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해설도 최대한 참고해서 넣을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 보니 여러모로 〈하녀〉의 과밀함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내년에는 〈하녀〉에 대한 논문을 한 편 쓰려고 한다. 그때 이 포스트에서 설명하지 못했거나 설명하지 않았던 것들을 한 번 잘 풀어볼 생각이다. 내 생각에 〈하녀〉가 정말로 중요한 점은......[내년 공개 예정]


7월-8월



7월에는 KMDb에 업로드된 「나의 한국옛날영화」라는 짧은 글을 썼다. 한국고전영화라는 주제의 불가능함을 눙치고 옛날로 우회한 다음(이 문제를 직면한 글은 같은 기획에 글을 쓴 윤아랑 평론가의 「말하자면 말이 안 되면서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해 가장 중요한 비평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냥 아마추어 역사가라는 모드를 발동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나의' 한국옛날영화 보기 방법을 밝힌 글이었다. 이때 마침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만희야말로 사랑을 정말 잘 했던 사람이라는 생각을 오래 했기에, 이런 요상한 글이 나온 것 같다. 돌아보면 정말 아쉬운 글이지만 요맘때 정말 사적으로 정말 너무 힘들었기에... 좀 다시 읽으니 애처로운 기분이 든다. 그래도 글에서 인용한 이만희의 「혼자이기 때문에」를 공중에 소개한 건 마음에 든다. 이 글이 지금까지 인용되지 않은 건, 아무래도 지금까지 이만희의 문제계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오만한 생각도 든다. 이만희에 대한 기획도 아니거니와 당시에 생각이 무르익지도 못했기 때문에 잘 처리하지 못한 거야 물론 아쉽지만... 그래서 이에 대한 논문도 내년에 한 편 써보려고 한다. 논문이 아니어도 좋겠지만, 이런 주제를 소화할 수 있는 적당한 매체가 별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이만희는...[내년 공개 예정]



또 「배용균의 비밀 노트」라는 소설(?)도 연재했다. 7월에 시작해서 8월에 끝났다. 이 글은 「나의 한국옛날영화」의 방법론을 의식하며 활용한 픽션이었다. 레자 네가레스타니의 『사이클로노피디아』의 도입을 베껴가며 나름 '대구영화' 안에서 배용균과 그에 따라 붙는 픽션들을 현재화하고 싶었다. 잘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면서 나름 재밌었다. '배용균의 비밀 노트'가 정말로 발견 됐다는 소문이 돌았던 게 특히 웃긴 기억으로 남아있다. 「배용균의 비밀 노트」가 발행된 이후 오오극장 티스토리의 '장르 불문! 대구독립영화' 코너는 내가 기획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라진, 정지돈에게 청탁을 할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의 글이 나보다 유효하거나 최소한 더 재미있다. 대충 확정되었만 내년에는 《삼삼오오》라는 이름으로 실물 잡지를 발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편집장을 맡게 되었다 ^_^


9월



9월에는 부산권 독립영화잡지 《섭씨 233》 1호에 참여했다. '지역영화잡지'에 대한 글을 썼는데, 마침 같은 달에 (아직은 공개 안 했지만) 과거 90년대 대구 시네마테크 운동에 참여한 분을 만나서 구술사-인터뷰를 했다. 그걸 sns에 올렸더니 소문이 나서 정말 90년대 영화 잡지들을 '왕창' 볼 수 있게 됐고... 그 '왕창' 많음이 왜 전혀 없어졌지? 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부족한 글이지만 꽤 재밌는 논제를 던졌다고 생각하는데 많이 읽히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 아쉽다.  《섭씨 233》은 알찬 잡지고 편집장인 이우빈 씨도 무척 좋은 분이다. 이 기회에 알게 되었다면 부디 사서 보시고 응원의 힘을 보태시길. 지금은 공상온도에 입고되어 있는 것 같다. 소개 글에도 있지만 'cut과 song'님의 인터뷰가 무척 좋고.. 실린 다른 글들도 정말 재밌다. 


10월



10월에는 INK가 개최하는 Film In Daedeok에 참여했다. 배은열 그리고 박경태 영화감독과 개막 대담을 했고, 자주영화 섹션(장윤미, 김준식, 김나영 감독을 모셨다.)을 프로그래밍 했으며, 배은열 그리고 강덕구 작가와 폐막 대담을 했다. 개막 대담의 소회는 블로그에 이미 적어두었다. 자주영화 섹션은 무척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기도 했고 소수의 관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링크는 동료이자 친구인 '섬유유연재'님이 기록해주신 폐막 대담인데... 저때는 무척 지쳐있었다. INK와는 내년에도 뭔가 함께 하리라 혼자 기대(?)하고 있다. 공로장도 주시고 ㅠ_ㅠ 감사하고 값진 분들이다. 내년 FID에는 더 많은 분들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많지 않더라도 FID의 관객성이야말로 레몽 벨루와 세르쥬 다네가 말한 제한되면서 동시에 무한한 관객이리라 생각한다. 


또 〈거미집〉 개봉을 맞아 무대 인사를 보고 김형석 평론가와 대담했다. 어쩔 수 없겠지만 짤린 부분이 좀 많아서 아쉽다. 그래서 보론을 적어뒀고 이 보론보다 훨씬 긴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거미집〉은 이제 여러모로 나에게도 영화에게도 안 유효한 영화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아무튼 이 대담이 내게 남긴 가장 큰 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전여빈 나무위키' 등재.... 전여빈 배우님 절 보고 있나요? 항상 응원합니다...


11월



11월에는 '전국영화상영자대회'에서 토론을 했다. 참여한 섹션은 '오늘의 관객, 독립예술영화전용관과 관객의 공생을 위하여'다. 이때 섹션에 토론문을 적은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전체 자료집에 토론문이 내 거만 실려있다. 저기 주요 참석하시는 분들이 '독립영화'인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좀 웃긴 일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내가 토론문에 적어간 건 다름 아닌 아래와 같다. 


독립예술영화관과 관객의 공생
독립예술영화관과 관객의 공생을 위하여. 이 이슈 토론의 제목은 단 번에 읽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영화관 앞에서만 관객일 수 있기 때문에 독립영화예술관과 관객은 각각의 객체로서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관계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내 여러 관점에서 “독립예술영화관과 관객의 공생을 위하여”라는 제목이 성립이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먼저 오늘날의 관객은 비단 영화관이 아니더라도,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컴퓨터, OTT 등으로 말이죠. 거칠게 말하자면 구체적인 독립예술영화관이 없더라도, 관객은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실 독립영화 진영에서도 ‘퍼플레이’를 위시하여, OTT 서비스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독립영화 진영과 별개로, 많은 독립영화들이 서로 다른 OTT에 납품되고 있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이로부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오늘날 독립예술영화에 ‘영화관’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한편, 이 질문은 보다 더 넓은 맥락에서도 제기 됩니다. 2012년 맹수진은 「지금, 우리에게 독립영화란 무엇인가」에서 “시장의 논리가 깊숙이 침투”된 “연성화된 독립영화”가 “충무로”와 변별점을 갖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독립영화의 풍경은 어떤가요? 물론 장윤미나 이동우 감독과 같이 귀하고 값진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하고 독립영화관에서도 기획전의 형식으로 소화[할 수 박에 없는]하는 감독입니다. ‘독립영화의 얼굴’로 소개되는 감독들이 ‘OTT’와 맺는 관계 사이에 분명한 구분 선을 그을 수 있나요? 그것이 그어지지 않는다면 ‘독립예술영화관’이 외따로 존재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독립/예술영화관의 관객
서두에서 관객의 입장에서 관객의 특징을 추상할 수 없다고 했지만… ‘독립예술영화관의 관객’이란 표현에는 곧잘 반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경험적인 차원에서 독립영화의 관객과 예술영화의 관객은 겹쳐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한 친구가 독립출판 플리 마켓에 참여했던 소회를 말해준 적 있습니다. 여기서는 시인 문보영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 언리밋에서 팔았으면 판매량이 달랐을 텐데…라고요. 저는 같은 현상이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사이에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상당히 현격하리라 생각합니다. 조금 우회를 해볼까요?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1999년 12월 동아시아의 주변 영화―중국의 지하전영, 일본의 자주영화, 한국의 독립영화―에서 한국의 독립영화가 가장 흥미롭다고 썼습니다. 그 이유는 90년대의 한국 독립영화가 “여러 민감하고 위험한 과거사를 (…) 흔히 주제로 삼았으며 사회 변화를 기록”하는 “한 번도 토론된 적 없는 새로운 문제들을 찾고 기록해 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해를 감수하고 일반화를 하자면, 현재 독립영화는 토니 레인즈가 주목한 동력에 근거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영화 각각과 별개로 [최근 독립영화의 포스터를 모아놓고 보면 알 수 있는데] ‘한국 독립영화들’은 “위험”보다는 오히려 획일화되고 남성화된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폭력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갖고 있는 안온한 장소로 표상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의 독립영화들 사이에서 〈멜팅 아이스크림〉(홍진훤)의 가득한 에너지는 정말 드물게 느껴졌던 게 기억나요. 이러한 안온한 장소로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관객층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예술영화의 관객층이 시네필리아고, 그들이 일탈성defiance에 주요하게 근거한다는 점을 인지한다면, 더욱 더요. 가령 한국 예술영화의 입문 코스―정성일의 오역이 큰 몫을 한―인 프랑수아 트뢰포가 GV에서 감독들을 욕하곤 했다는 일화는, 최근의 독립영화 관객에게 ‘GV 빌런’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요? 
이런 맥락에서 독립예술영화관의 관객은 (구체적인 장소로서 겹쳐질 수 있으나) 독립영화의 관객과 예술영화의 관객으로 [현재는!] 구분되고 있다는 점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모객
개요를 읽고 가장 눈에 띄었던 단어는 모객입니다. 모객: 행사를 위해 사람을 찾아 모음. 이라는 중립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객이란 단어는 무언가 지극히 ‘상업적’인 낌새를 풍깁니다. 그리고 이런 지극히 상업적인 낌새에서 어딘가 겸연쩍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독립영화가 여러 차례 공공성[과 다양성]을 표방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독립영화가 상품이지만 오직 상품만은 아닌 위치에 있었기 때문인 것이죠. 그러나 물론 관객은 필요합니다. 관객 또한 소비자지만 오직 소비자만은 아닌 위치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궁금합니다. 독립영화가 ‘모객’하고자 하는 관객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레이몽 벨루(2012)의 표현을 빌려서 말하자면, 독립영화가 ‘모객’하고자 하는 관객은 대중mass인가요? 인민people인가요? 그리고 만일 그것이 대중-관객이 아니라면, 독립영화(관)는 어떻게든 변모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실 독립영화는 그것이 상품으로 온전히 성립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배급의 루틴은 상업영화와 동일―신작을 며칠 동안 극장에 걸어두고 상영하고, 2차 매체로 옮기는 것―하지 않나요? 현재의 독립영화 문화는 상품/대중-관객과 공공재/인민-관객들 사이에서 강조점을 편의적으로 옮기고 있지는 않나요?


발제문을 공유받지 못한 상태에서 적은 토론문이기도 하고 마감 일자를 놓치는 바람에 두 시간? 이었나 만에 쓴 거라서 좀 엉성하고 폭력적인 부분도 많지만... 정말 아무튼 웃기긴 지대로 웃기다..


12월


12월에는 대구독립영화연말정산에 글을 썼다. 글을 쓴 영화는 〈겨울캠프〉(장주선), 〈비포 선라이즈〉(박정윤), 〈ok 목장의 결투〉(변석호) 그리고 〈운동회날〉(김주리)였다. 이 영화들 중에는 〈운동회날〉이 가장 좋았다. 최근의 대구 지역 출신 영화 중에 제일 가능성이 많은 영화였다. 여러분도 기회가 있으면 한 번 보세요


그리고 이래저래 두 세건 정도의 일을 더 했다. 이것들은 모두 내년 초에 공개된다고 한다. 




항상 얼렁뚱땅 보내는 것 같지만 돌아보고 나면 은근한 일관성이 있다. 내년에는 좀더 유효하고 풍성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여러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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