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동현 Oct 28. 2023

INK가 준 공로상


공로상을 받았다. INK의 제 3회 영화제 FILM IN DAEDEOK에서. 뭘 이런 걸 줘요. 멋쩍어 웃었지만 기뻤다.

한 명의 플레이어로서 INK와 근거리에서 합을 맞춰온 건 영광 같다. 그저 좋은 작품을 잘 파악하고 탁월한 작품론을 쓰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크리티컬한 역할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그러한 좋음의 가능성을 높이고 지속할 수 있는 터전을 정치적이고 산업적인 차원에서 고심해보는 쪽에 더 마음이 간다. 구윤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희망을 탈정치화시키는 쪽보다는 정치와의 긴장을 유지하는 쪽이 더 합당한 것 같다.

FID는 정치와 희망의 긴장을 담고 있는 표현인 ‘자주영화’가 실제로 투영되는 자리였다. 처음 갔던 FID가 생각난다. 강당에는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있었고 거기서 한국독립영화체제에 대해 나는 열변을 토했다. 물론 올해의 FID에서도 여전히 한국독립영화체제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다만 영화관에는 최다 80명 남짓의 인원이 있었고 ‘자주영화’를 프로그래밍하고 선보였으며 열변을 토하는 동시에 대안에 대해 말했다. 어떤 토픽을 밀고나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건 하나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토픽을 밀고나가는 것은 하나가 아니라 다발을 어딘가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 드문 기쁨은 혼자 품었다. 나는 1년에 한 번 FID에 가서 말이나 하는 게 다였기 때문이고, 진짜 문제는 행정과 실현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 긴하기 때문이다. 다만 상이 뭐라고. 자기 전에 문득 눈에 띈 공로상은 왠지 이런 기쁨을 자랑하고 나누고 싶게 한다.


이번 FID에서도 좋은 기억이 너무 많다. 하나만 말하자면 〈그래도, 행복해〉―이 영화는 단언컨대 올해 놓치면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다―를 연출하신 김준식 감독님이 뒤풀이 자리에서 따님과의 영상 통화를 엿보게 해준 것은 정말 (이런 표현을 꾹꾹 참았는데) 영화적이었다… 그냥 너무 좋았음.

좋은 기억만큼 여러 질문도 가득 안고 왔다. 가령 ‘새로움’이란 것에 대해. 새로움이라는 것을 표방했을 때 오히려 만들어지는 구태의연함에 대해. 〈그래도, 행복해〉가 왜 좋았을까? 그건 새로움보다 어떤 간격에 있고, 그 간격은 오히려 가장 전통적인 영화에 존재하는 긴장과 닮아있던 것 같다. 새로움이 아니라 복고 혹은 하나의 요소에 집중할 때 종종 정말 새로운 것 같다. 꼭 새로워야 하나? 하면 아니지만… 요란하지만 해석의 구도에서 손에 쉽게 쥐어지는 미디어아트에 지쳐 있다가, 전통적인 회화를 마주하면 느끼는 압도 같은 것. 이 이야기는 언젠가 INK 구성원들과 나눠보고 싶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건 개막 대담이었다.

개막 대담 때 우리 세대의 감각으로 윗세대와 맞붙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조금 몽니를 부리고 싶어서 나는 이런 식으로 대답을 했다. 86세대를 모았던 사회주의―그것에 각 개인이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와 같은 이념이 동시대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세대는 너무 분산되었고 反출생주의와 가속주의에 빠집니다. 86세대가 학병세대를 끌어내리는 방식의 복수가 아니라, 우리는 세대가 재생산되는 ‘남한’이라는 땅 자체를 지겨워하거나 그것에 복수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런 대답을 했을까? 이에 대해 박경태 감독님은 근사하고 멋진 대답을 해주셨다. 자주영화라는 어구가 어떤 ‘위치’에서 말해지는지도 중요하다고.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날과 같은 날에, 아주 작은 변방의 영화제에서 말해지는 자주영화라는 단어.


[이 사이에 빠져 있는 게 X세대다. 나는 86세대 다음인 X세대가 권위의 쓰임을 생각하지 않고 탈권위를 주장하고 체현한 게 현재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권위는 나쁜 게 아니고 권위의 어떤 쓰임이 나쁜 것인데도. 여하간 그들, 지긋지긋한 영포티 개자식들은 권위를 의식하지 않았기에 자연화된 권위를 경계할 수 있는 시야를 갖지 못했다. 내 소원이 있다면 영포티들 머리가 어느 날 다 터져버리는 거다.]


우리는 이렇게 복합적인 위치에 있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행성적인 공포가 다가오지만 한편으로는 남한에서 처음으로 사회라는 것을 만들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된 게 우리 세대일지도 모른다. 국가에 모든 것을 맡기는 국민이나 시장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그 샛길을 만들 수 있는 첫 번째 세대.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보충]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충무로' 〈거미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