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차 Jul 28. 2022

경험 수집가, 포틀랜드로 떠나다

소유냐존재냐

경험 수집가, 포틀랜드로 떠나다

몇 평짜리 아파트가 있고, 차는 뭘 타고,  시계는 어디 껀지...

모두가 자기가 가진 걸 가지고 자랑할 때 난 자랑할 게 없었다.

가진 게 개뿔 없지만 그런 걸 가져보려 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대신 내가 눈이 뒤집혔던 건, 드라마보다 재밌는 '찐 경험'이었다.

"인도 여행 갔을 때 내가 카메라로 뭘 찍고 다니니까

어떤 어르신이 쌍둥이가 태어나는 분만실에 날 데려다줬잖아.

그랬더니 그다음 날엔 자기 딸이랑 결혼하는 게 어떻겠냐고 집에 날 초대했어."

"와~ 대박! 그래서 어떻게 됐어?"

뒤가 궁금해 미치겠는 거짓말 같은 친구의 이야기에 심장이 쫄깃해졌다.

"내가 내 베프 두 명 다 결혼시켰잖아, 세 쌍 결혼시키면 천국 간다 해서 눈에 불을 켜고 다닌다 내가!"

이런 경험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뿌듯했고 살아 있음을 생생히 느꼈다.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자 알았다.

'난 이런 경험을 모으는 걸 좋아하는구나'


결혼하면 행복할까? 이민 가면 행복할까?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경험 수집가지만 결혼과 이민은 안 해봤다.

안 해봤기에 내가 계속 안 해 보면 평생 저렇게 궁금해만 하고 살걸 같았다.

남들이 써놓은 경험담 말고 넘어지고 깨지고 피나고 엉엉 울더라도 내 몸을 통과한 경험만이 내 거다.

남은 나를 속여도 내 경험은 나를 못 속인다.

해외 살이 하는 남의 인생을 구경하는 대신 내가 직접 살아보자!

그런 마음으로 포틀랜드로 떠났다.

길을 아는 것과 직접 걸어 본 것은 다르다고 했었다.

'영주권이 나왔다고 왜 저렇게 우는 거지? 그리도 좋은 걸까?'

내가 받아보니까 좋아서 우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 혹독한 문서 고문으로부터 벗어난 것만으로도 눈물이 주룩주룩 나왔다.



결혼생활에 필요한 건 독립기념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요란하다.

밤이 되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여기저기서 불꽃놀이를 펼치는데

독립을 기념한다기보다는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축제를 벌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사실 미국이 어디로부터 독립을 한 건지 모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영국으로부터 독립이었다.

영국은 미국에겐 그냥 깡패였다.

“우리가 프랑스랑 전쟁하느라 돈이 없어! 그러니 너네가 세금을 내야겠는데?”

그런데 힘이 커진 미국은 “우린 그 세금 못 내겠는데?” 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미국이 독립을 이뤘다고 남편이 알려줬다.

만약 미국이 그때 독립을 못했으면 평생 세금을 내고 영국 똘마니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남편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기생충처럼 느껴지면서

갑자기 나의 독립이 시급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미국이 세금을 낼 뻔했던 것처럼, 똘마니로 살아야 했을 것처럼

'나도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 라며 소름이 끼쳤다.

교포와 갓 결혼한 여성들은 생활환경이 송두리째 바뀌기 때문에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심지어 산부인과 진료도 남편이 통역을 하다 보니 굴욕의 순간도 생중계된다.

아무리 이런 치욕스러운 순간을 맞딱 드리고

속으로는 '하기 싫은 영어 숙제를 당장 끝내고야 말겠어!' 나를 다독여도

미국에서 30년 살았던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내 현실이었다.

동시에 '너의 도움 따윈 필요 없어' 하며 코웃음 칠 나의 독립기념일을 꿈꾸기 시작했다.


치욕의 순간들이 나를 레벨업 시키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진 순간은 어쩌면 결혼, 이민 거창한 게 아니라

그런 치욕의 순간들이다.

그 치욕의 순간들을 통과하면 언제나 나도 모르게 레벨업 되어 있었다.

영어도 못하고 커리어도 끊기고 운전까지 못했던 나였다.

운전면허가 있어도 혼자서 운전을 겁내던 쭈구리였다.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하면서 장시간 남편이 운전해야 했기에 내가 먼저 운전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9시간이 흘러버린지도 몰랐다.

너무 재밌어서 가는 내내 운전대를 내어주지 않았다.

노래방에서 마이크 안 주고 지 혼자 주구장창 노래 부르는 그런 인간처럼.

더 놀란 건 내 저질체력의 반전이었다.

남편이 운동하러 가지 말고 놀자고 꼬실 때, 유혹을 뿌리치고 운동 간 보람이 있었다.

체력이야 말로 독립의 치트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 여행을 기점으로 21년 장롱면허를 탈출했다.

이젠 혼자서 자유롭게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운전을 시작으로 조금씩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 혼자 나를 레벨업 시키는 경험, 이게 결혼하고 이민 와서 알게 된 뽀송한 행복의 감촉이다.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써 서로의 쉴 곳이 되어 주다

이민 가면 행복할까? 결혼하면 행복할까?

그 답은 아직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독립하면 행복하다.

그게 지난 3년간 지지고 볶고 구르고 깨지면서 얻은 경험의 결론이다.

내게 있어 결혼이란 1. 서로를 알아보는 타이밍, 2. 추진할 용기, 3. 독립력 이 세 가지로 성립된다.

결혼했지만 쾌적한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독립적인 공간도 중요하다.

자기 전에 멀리 떠나는 공항의 사람들처럼 뽀뽀를 하고 각자의 방에서 잠이 든다.

매일 같이 잠드는 건 생각만 해도 지친다.

각자의 타임라인을 존중하고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써 서로의 쉴 곳이 되어 준다.

그렇게 독립력을 유지하기에 우리의 결혼생활도 유지되는 것 같다.


어제 카톡의 닉네임을 바꿨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꽂혀서 가당치도 않은'봄날의 햇살'로 저장해 놓은 남편이었다.

그 워딩에는 의지하고 기대고 싶다는 나의 로망이 들어있었다.

그냥 '귀엽고 웃긴 애'로 바꿨다.

'봄날의 햇살'에는 의문이 들지만 남편은 진짜 내겐 귀엽고 웃긴 애고 그냥 그거면 족하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가장 가까이에서 주고받는 편리한 존재, 우리에겐 유머 코드가 전부다.

이 별거 아닌 카톡 닉네임이 뭐라고,

정서적 독립의 요상한 해방감을 느꼈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만의 방식을 실행할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