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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Nov 04. 2022

진정한 구별

“스투-피드”

이태원 참사를 두고 누군가 말했다.

병신 같다니... 치욕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 그 입에 비누를 물려야 할 것 같았다.

(입에 비누 물리기: 미국의 언어교육방식 중 하나)


4년 전 나도 이태원 골목 그 자리에 있었다.

눈앞은 어지러웠고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그 좁은 길을 도망치듯 헤쳐 나왔다.

예비부부 중 남편만 살아 돌아온 뉴스를 봤다.

나도 그 당시 예비 남편과 함께 있었기에 나 역시 얼마든지

그 뉴스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었다.

병신이 아니라 너도 나도 모두가 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외신에서 ‘핼러윈 크러쉬 빅팀’이라 표현되는 이번 참사의 희생자.

그런데 한국 언론에서는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로 표기된다.

이것이 보도지침이라고 한다.

내가 언제 어디에 있든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내 생각과 언어는 아무도 훼손할 수 없다.


뉴스에서 앵커가 “매년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이는데 왜 올해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그 질문에 전문가라고 나온 사람이 엉뚱한 대답을 한다.

우리는 분명 뉴스를 보고 듣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인데,

그 순간 내가 돼지가 된 것 같았다.

차라리 그 원인을 밝혀봐야 알 것 같다고 말할 순 없었나?

사고 몇 시간 전 들어간 신고들은 처참하게 묵살되었다.

“이번 참사에서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에 있나?”라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괴상한 농담을 하며 웃음을 보였다.

사람인가 돼지인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 뉴스를 보고 내가 들어 누웠다.


그동안 오징어 게임이나 bts로 차오른 국뽕이 무색해지게

한국은 길 걷다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나라가 되어 버렸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간 자식이 서울 한복판을 걷다가 차가운 주검이 될지 누가 알았나?

내 나라는 위험한 나라도 모자라 병신 같은 나라가 되어 있었다.

CNN은 한국 정부의 확연한 실패를 깨닫는 대가가 젊은이 156명의 목숨이었다고 말했다.

끙끙 앓고 CNN을 보고 나서야 기운이 차려졌다.

그래, CNN처럼 속 시원하게 나도 내 생각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돼지가 아니고 사람이기에 나의 진정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숨겨져 있던 것, 감자에 난 싹이 시퍼렇게 드러났다.

지금 우리에겐 그것을 구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감자의 싹을 도려내듯,

무엇이 싹인지 제대로 구분해서 칼을 들어야 한다.

도려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썩어서 사라질 테니까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왜 이걸 쓰고 앉아 있을까?

이 글을 쓰고 나면 더 이상 아플 것 같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드러누워 우는 게 아니라

내 목소리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작지만 확실한 개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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