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차 Nov 23. 2022

작은카페에 진심입니다.

새로운 음식이 새로운 인생을 만든다.

‘어 이거 맛있겠는데?’

인스타를 보다가 처음 보는 게 있으면 흥분이 된다.

그럴 땐 단박에 뛰쳐나간다.

대부분의 새로운 카페는 그렇게 즉흥적으로 가곤 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흥분! 그게 가득 차는 순간을 좋아한다.

내가 무엇에 환장하는지 잘 아니까 조금 편한 구석이 있다.

기분이 다운될 때는 무조건 처음 가는 카페로 간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기분이 든다.

생 마시멜로를 토치로 구워주는 스모어 쿠키를 먹고 환호성을 질렀다.

도저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맛이었다.

내 무의식은 늘 새로운 걸 먹으려 든다.

아는 맛이 젤 무서운 건데

새로운 음식이야 말로 새로운 기분을 주고

새로운 행동을 이끌고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데

내 인생은 새로운 음식을 즐기면서부터 크게 바뀌었다.

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건 일본에 살기 시작할 때였다.

그 쓴 물을 왜 마셔? 했던 내가 그 쓴 물에서

초콜릿과 라즈베리 그리고 견과류 풍미를 발견했다.

갓김치에 방어를 싸 먹기 시작했을 때, 내가 몰랐던 신세계가 열렸다.

아직 고수는 먹지 못하지만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고수를 너무 많이 리필해서 누렁이(=남편)가 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새로운 음식은 신세계의 문이다.

그걸 열고 들어가면 이전과는 다른 낯선 세계가 열린다.

새로운 카페를 갈 때면 스타벅스 갈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강렬한 설렘이 있다.


포틀랜드에도 <카모메 식당>이 있다

우연히 인스타를 보다가 감 토스트를 하는 카페가 있어

“앗 이거다!” 하면서 발을 동동 거리며 달려갔다.

식빵 위에 얹힌 감은 늘 먹던 건데도 낯설어 보였다.

달달하다가 끝 맛은 쌉쌀한 감과 담백한 치즈의 조합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가장 제철에 먹는 감이란 그 어떤 케이크보다 진하고 달콤했다.

감이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새로운 발견이었다.

거기다 시지 않고 고소한 큐리어 카페의 로스팅은 내 입에 착착 붙었다.

오직, 지금! 여기! 에서만 가능한 맛이었다.


커피로 유명한 큐리어 카페에 soen이라는 일본 카페가 콜라보로 운영되고 있었다.

로컬 카페에서 이런 신박한 조합이라니 저절로 응원하고 싶다.

한쪽 구석엔 엘피판이 돌아간다. 그 옆에선 커피를 내리고 있다.

다른 쪽 구석에선 소꿉놀이하듯 오니기리와 유부초밥을 만든다.

핀란드에 영화 <카모메 식당>이 있다면 포틀랜드엔 <큐리어 카페>가 있다.

이 특유의 슴슴한 집밥 느낌 정말 그리웠다.

이곳은 팝업으로 여름에는 일본식 빙수 카키코리도 팔고

계절에 따라 토스트의 토핑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빙수 사진을 보니 벌써 여름이 기다려진다.

왜 이제야 여길 알았지?

테이블이 3개뿐인 이곳은 너무 작아서 없어질까 두렵다.

내가 자주 와서 지켜줘야만 할 것 같이 애틋하다.

나는 오늘 거기서 완벽한 가을과 겨울 사이를 만났다.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물기가 쫙 빠진 낙엽은 바닥으로 떨어져 바스락 거린다.

나무의 머리숱이 역대급으로 떨어지는 날!

딱 이때의 감이 가장 절정의 맛이라는 걸 기억해 두고 싶다.


                   출처:인스타 @soenportland



작은 가게엔 설렘이 있거든

다운타운 스타벅스가 자리를 뺐다. 충격적이다.

아무리 불경기니 뭐니 해도 포틀랜드 다운타운 세포라 매장 옆의 스타벅스다.

그 큰 대기업도 자리를 빼는 곳에 이렇게 작은 로컬 가게가 생글거리고 있다니

왠지 그 자체가 감동으로 느껴졌다.

내가 작은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는 스타벅스엔 없는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틀에 박혀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한마디로 센스가 터진달까?

분명 도전을 좋아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단단하게 일궈 가는 사람들이다.

그 생각과 안목이 고스란히 카페에 스며들어 있고 그런 걸 구경하는 게 나는 좋다.


마찬가지로 작은 마트를 운영하는 누렁이(=남편)에게 입이 닳도록 말하고 있다.

작은 가게가 살아남으려면 큰 가게엔 없는 설렘이 있어야 한다고...

솔직히 작은 가게가 살아남기 어려운 게 지금의 경제논리다.

그걸 받아들이고 주식투자를 열심히 해서 꼭 가게를 살리라고 부추긴다.

돈을 쫓는 속물인 내가?

그렇다. 나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를 이 가게를 사랑하게 됐다.

80년대 방송기자였던 부부가 이곳에 우연히 취재를 왔다가

여기서 살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단다.

그 길로 이 작은 마트를 사서 이끌어 왔다.

그분들이 은퇴할 시점, 누렁이가 그 마트를 인수한 게 이 가게의 역사다.

가게 주변으로 이민 와서 열심히 삶의 터전을 일군 세탁소와 태권도장도 있다.

이 마트가 없어지면 그 이야기도 사라지는 게 싫다.

무엇보다 멕시코 노동자들이 가게 앞 타코 트럭에서 하루의 마무리를 하고

그들의 자랑인 코로나 맥주를 사가는 놀이터가 이곳이다.


별것 아닌 설렘으로 살아간다.

어떤 손님이 자기 카드 결제가 안 된 거 같다며 다시 왔단다.

보통 돈 받으러 다시 오는데 내러 오는 건 드문 일이다.

그냥 가버려도 몰랐을 텐데 다시 발걸음 해준 그 마음이 고마웠단다.

다음에 왔을 때 선물이야~짠 하면서 맥주 한 병을 줬더니

“나 앞으론 평생 이 가게만 올 거야” 했다고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눈이 그렁그렁, 그 촉촉해진 눈빛 그게 중요하다.

이 별것도 아닌 시시껄렁한 이 이야기들에 설렌다.

그 이야기가 내가 평소에 쓰지 않는 마음의 근육을 툭 건드렸다.

출근할 때 설레면 그게 성공한 인생이랬나?

오늘은 누렁이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 올 지 궁금하다.

나란 인간 설마... 돈이 아니라 설렘을 쫒는 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