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차 Dec 18. 2022

자연을 사랑한 속물들

개똥 취급 어디까지 당해봤니?

그가 팬티를 갈아입지 않는 이유

스키장 다녀오는 길,

남편은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따라 낯선 곳으로 차를 몰았다.

차를 세우더니

“여기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야”

하면서 추억여행을 시작했다.

아직 테니스 코트에선 학생들이 연습 중이었다.

남편은 그 당시 테니스 선수였는데

그 길은 밥 먹고 살기 어렵다는 부모님의 걱정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소년은 점심값을 아껴 한국 가요 cd를 사 모으는 게 행복이었다고 한다.


학교 근처 살았다던 아파트도 가봤다.

작고 낡았지만 누군가의 일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저기 코인 세탁소에서 빨래하고 그랬었어”

지금보다 작은 체구였을 꼬마 아이가 빨래 바구니를

들고 들락날락하기엔 벅찬 거리였다.

집에 돌아와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남편이 샤워를 하고 팬티를 갈아입지 않는 이유를...

장난으로 아직도 놀리곤 하는데 이젠 그만 두기로 했다.

그 허름한 아파트 안에는 세탁기가 없었던 거다.

그 행동이 그제야 해석되었다.


이번 생에 개똥 취급은 처음이라

“여기가 이모집이었어, 이 지하에 우리 가족이 세 들어 살았지”

남편은 그 시절에 대해 침묵했지만 그 굴욕이 느껴졌다.

그 집을 보자마자 내가 당한 것처럼 생생했다.

그들이 티 내지 않았어도 당사자인 남편은 느낄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 집을 보고 나서야 또 하나의 퍼즐이 맞춰졌다.

이모부라는 사람이 날 처음 봤을 때 누워서 인사를 했다.

나는 그 광경이 믿기지 않아 아픈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날 그렇게 개무시했구나...

그 일을 어떤 의미로 간직할지,

아니면 묻고 덮어둘지 그건 나의 선택이지만

그런 개똥 취급은 인생에서 처음이었고 꽤나 충격적이었다.


왜 양치를 하지 않고 그냥 자는 지도 알게 되었다.

일본 소설에 자주 나오는 위생 감이 전혀 없었다.

부모님은 그런 걸 돌볼 겨를조차 없었던 거다.

시엄마는 왜 항상 뭔가에 쫓기고 목소리가 큰 지도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생존 앞에서 도저히 우정이나 사랑을 경험하기엔

사치였지만 남편은 사촌을 순수하게 좋아한다.

“아빠가 도박을 하면서 격차가 나기 시작한 거야.”

남편은 늘 마음속에 사촌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아왔다.

집에서 놀다가 피자를 먹는 사촌들이었지만

남편은 어린 나이에도 아빠를 따라 농장에 가서 일하다가 피자를 먹어야 했다.

가장 가까이서 여유로운 사촌을 대면해야 했지만

질투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그점이 터무니 없고 어이없었지만 난 이내 매료되었다.

그런 것들에 꺾이지 않는 해맑은 정신의 소유자였다.

가난했지만 그는 인생에서 최고 값진걸 이미 갖고 있었다. 그 어떤 가난이 휘몰아 쳐도 그 정신를 뺏아갈 순 없어보였다. 그의 정신적 자산은 이미 상류층이었다.


남편의 아빠가 도박을 했던 일이

그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패악질 한 번 못 부려 본 어린 시절

궁핍했던 어린 시절은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일궈내는 원동력이자

그 시작점이었다.

그래서 그는 돈에 큰 가치와 의미를 두게 되었다.

그 점에 자연스레 나도 동기화됐던 걸까?

나는 전혀 다른 케이스였지만 주파수가 같았다.

여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같은 집에서 자란 오빠와

경제적 지원이나 모든 면에서 천문학적인 차별을 당하며 살았다.

오빠가 물을 달라고 하면 엄마는 꼭 나를 시켰다.

그걸 갖다 바치는 나는 시녀 같았다.

이런 걸 내가 왜 하냐고 패악질을 부릴 줄도 모르는 바보였다.

처음엔 우리 엄마가 계모인 줄 알았다.

커가면서 엄마랑 너무 똑같이 생겨 유전자 검사는 포기했다.

내겐 그 굴욕감이 원동력이다.


엊그제 남편이 밥 먹다 울었다.

또 동생이 도박하느라 가게 돈을 훔쳤다.

이제 그런 일은 보름달이 뜨듯 일정한 사이클로 일어나 놀랍지도 않지만

도박하느라 돈을 훔치는 아들 편을 드는 시엄마는 놀랍다.

아무래도 계모가 아닐까? 나는 요즘 적극적으로 의심하고 있다.

도박하는 아빠, 도박하느라 돈 훔치는 동생, 그걸 편드는 엄마

이런 폭력으로부터 남편을 구출하고 싶다.

그 모습을 그냥 속절없이 지켜봐야 하는 것에 나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자연을 사랑한 속물들

우리는 부모로부터 특별한 원동력을 받았다.

그것 또한 감사하다.

만약 남편에게 가난한 어린 시절과

나의 차별대우 어린 시절이 없었다면

우리는 딱히 ‘궁리’ 같은 건 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주식으로 만족하고 콜옵션 풋옵션은 공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틈만 나면 더 풍요로워질 궁리를 하며

어린 시절 굴욕의 순간을 메꿔 줄 무언가를 만들려 한다.

자연을 사랑하지만 대책 없는 속물들이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남편이 울면서 "아빠가 다시 도박해서 결혼 못할 거 같아."라고 했을 때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결혼하자고 손을 내밀 것이다.

그때 용기를 냈기에 나는 지금 정신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졌다.

아니다. 진짜 도망갈 거다.

내가 상상한 건 모두 판타지고 가난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깊고

인생을 축축하게 만든다.

나는 그런 걸 이겨낼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도박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도망만이 살길이다.

죽어야 끝난다는 말을 실감한다.

책이나 드라마에서 보는 이야기가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만이 배울 수 있는 귀중한 깨달음이다.


하지만 나처럼 이미 망한 사람이 있다면

그런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에겐 아주 특별한 원동력이 있다.

굴욕감만 있어선 부족하다 무력감까지 콤보세트로 있다.

어쩌면 그게 바로 신이 뒷주머니에 따로 찔러주신 보조베터리 같은 게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아빠의 아빠가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