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퇴사한 이유
나에게는 HJ라는 친구와 또 다른 HJ라는 친구가 있다. 둘 다 HJ인 관계로 두 사람 다 HJ라고 지칭하긴 어려울 것 같다. 실제 이름을 쓸 수도 없다. 지금부터 하려는 말은, 말 그대로 뒷담이기 때문이다.
HJ, 마침 김씨 성을 가졌으니 K라고 지칭하겠다. K는 직장생활 2년 차를 달리는 중이었다. 직원들 대부분이 또래였던 터라 주말에도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다. 회사를 다니는 데 있어 함께 일하는 사람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K는 마음이 잘 맞는 직장 동료들을 만나 한시름 덜 수 있었으나,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K는 부장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부장은 유독 K에게만 야박했다. 업무를 하다가 실수를 하면 과도하게 다그쳤고, 심지어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해도 K를 다그치기에 이르렀다. 부장은 K와 동갑인 다른 사원에게는 매우 사근사근 대했는데, 때로는 그 사원의 눈치를 보기도 하며 친절하게 굴었다. 즉 나이가 어리다고, 직책이 낮다고 아랫사람을 무시한 게 아니라 감정의 배출구 하나를 (K로) 지정했을 뿐이었다.
K는 부장의 언행에 점점 더 지쳐갔고 울화도 쌓여갔다. 결국 20대 중반의 나이에 화병이 생기고 만다. 부장의 히스테리에 지친 K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좋은 상사를 만나기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하는 날 마지막 출근길에 K는 난생처음 행복감을 느꼈다고 한다. 다만 그날이 하필이면 월요일이었던 탓에 매주 열리는 부서 회의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부장은 마지막까지 재수가 없었다.
“뭘 웃어?”
행복감이 새어나간 건지 K의 얼굴을 본 부장이 물었단다. 정말로 웃는 연유가 궁금했다기보다 왜 웃고 자빠졌느냐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만두니까 좋아?’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겠지. K는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부장을 미워할 수 있게 되었다.
HJ, 마침 박씨 성을 가진 P는 직장인 1년 차였다. 그의 업무는 직속 선배와 함께하는 작업이 많았는데 P의 직속 선배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그래, 흔히 말하는 ‘호구’였다. 위에서 내려오는 과중한 업무량에도 그 어떤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물론 야근하는 사람더러 호구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남다른 호구였다. 야근을 해도 상사에게 그 사실을 숨기는 사람. 그렇다. 그는 호구 중 호구, 호구왕이었다.
호구 선배 밑에서 일하던 P는 자연스레 호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부의 대물림과 가난의 대물림처럼, 회사 내 호구력 또한 대물림될 수밖에 없다. P는 호구 선배로 인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하게 되었고, 주말에도 일을 하는 등 일상생활이 파괴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P에게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메시지를 받은 건 이른 아침이었고, 시간대에 맞지 않는 말이라 고개를 갸웃했다.
[나 지금 퇴근한다.]
이어진 P의 메시지는 ‘ㅋ’으로 도배되어 있었지만 결코 따라 웃을 순 없었다. ‘ㅋ’은 마치 ‘ㅠ’가 내포된 눈물 줄기처럼 보였다. 그날 P는 호구와 함께하는 과중한 업무로 인해 (저녁도 못 먹고) 아침 7시 15분에 퇴근을 했다. P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8시였고, 그는 평소 8시 30분에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 터라, 30분 후 다시 출근 시간을 맞이해야 했다. P는 그날 퇴사를 결심했다.
나는 P에게 물었다. 마지막 출근 날 기분이 어땠느냐고(그때 당시 나는 한 번도 퇴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해방감이 궁금했다).
“회사를 갈 때마다 지하철 창밖으로 교회가 보였는데, 나도 모르게 늘 교회를 봤었어. 마지막 출근길에도 다시 한번 교회를 봤지.”
P는 교회를 보며 무엇을 소망했을까. 무교면서.
P가 대표에게 퇴사 의사를 전달했을 때, 대표는 P를 제외한 전 직원을 회의실로 소집했다고 한다. 상사에게까지 야근 사실을 숨겨온 호구왕 덕에, 대표는 그제야 직원들이 자꾸 그만두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늦었어, 이 양반아). 또한 노발대발하며 나머지 직원들을 쥐 잡듯이 잡았다고 한다(누구의 잘못일까).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있던 P는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HJ와 HJ는 그렇게 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