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진秦나라가 초楚나라를 공략하고 있을 때, 연燕나라에서는 태자 평平이 연소왕燕昭王으로 즉위하였다.
연소왕은 제나라가 내란에 빠진 연나라에 안정을 되찾아주겠다는 명분으로 쳐들어 온 일에 대해 복수의 뜻을 내비쳤다. 물론 연소왕이 제나라의 부추김에 넘어가지 않아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제나라도 연나라를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연소왕에게도 연나라가 멸망할 뻔한 것에 일말의 책임이 있었다.
따라서 연소왕이 제나라 타도의 목소리를 높인 것은 아마 자신의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연나라 전체의 여론이 제나라만을 집중 공격하게 만들어서, 아무도 이번 난리가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게 만들려고 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연소왕은 말로만 제나라에게 복수하자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인재를 초빙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중에서는 썩 유능하지 못한 인물도 있지만, 그런 이들에게도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했다. 이에 전 중국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연나라로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위나라에서 온 악의樂毅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그리고 연소왕도 악의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아경亞卿에 임명하에 국정을 맡도록 시켰다.
하지만 연나라는 제나라에 비하면 국력이 훨씬 약했다. 그래서 국력을 기르며 절치부심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20년 후인, 기원전 285년 드디어 연나라는 제나라에게 복수할 기회를 잡았다.
당시 제나라의 국력은 거의 최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진나라도 제나라와 함께 각자를 “서제西帝”, “동제東帝”라고 부르고 동맹을 맺어 조나라를 함께 공략하자고 사신을 보낼 정도 였다.
하지만 소대蘇代는 진나라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간언했다. 첫째, “제”라는 칭호는 워낙 고귀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제후국들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으니, 먼저 진나라가 “서제”라는 칭호 사용하게 한 뒤 천하의 반응을 살펴본 뒤에도 늦지 않다고 하였다. 둘째, 지금 제나라한테 있어서 태산 남쪽에 있는 송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조나라를 공략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제민왕齊泯王은 소대의 말을 들어 송나라를 침공할 준비를 시작했다.
한편, 송나라에서는 청황색의 새매가 성곽에 앉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점을 치니 송나라가 천하를 제패하리라는 결과를 얻었다. 송강왕宋康王은 기뻐하며 주변의 소국들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위, 제, 초나라 등 강대국의 군대까지 격파하며 그 나라들에게서 영토를 빼앗았다.
송강왕은 이것이 모두 귀신의 가호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나라의 사직을 불태워서 귀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또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성 안의 모든 사람에게 만세를 부르게 시켰다. 하지만 제민왕이 군사를 일으켜 송나라를 침공하자, 백성들은 모두 도망치고, 송나라는 하루 아침에 멸망하였다.
송나라를 멸망시킨 제민왕은 교만해졌다. 이에 남쪽으로는 초나라를 침공하고, 서쪽으로는 위, 조, 한나라를 공격하면서, 주나라를 합병하여 천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이에 몇몇 신하들이 제민왕에게 간언했지만 오히려 살해당했다.
한편, 연소왕은 연나라가 부강해지자 악의와 함께 제나라를 정벌할 계획을 세웠다. 연나라는 악의의 제안에 따라 여러 제후국들에게 함께 제나라를 공격하자고 제안하였고, 마침 제나라의 강폭함에 치를 떨고 있던 제후국들은 흔쾌히 연나라와 동맹을 맺었다.
연나라 상장군 악의는 제, 위, 한, 조나라의 군대까지 통솔하여 제나라를 공격했다. 제나라는 전군을 동원해서 방어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연나라 장수 극신劇辛은 제나라 사람들과 원수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일단 제나라 변경 지대의 성만 공략하고 회군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악의는 제민왕이 그 동안 폭정을 행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오히려 제나라 왕실에 반기를 들 것이니 그들을 위무한다면 정복할 수 있다고 단언하였다.
악의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제민왕은 도망쳤고, 악의는 제나라의 수도 임치臨淄를 함락하였다.
예전에 제선왕이 연나라를 침공했을 때 맹자는 연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정복할 수 있다고 진언한 적이 있었다. 제선왕은 맹자의 조언을 무시하고 억지로 연나라를 정복하려다가 실패했다. 그리고 20년 후 연나라의 악의는 맹자가 제선왕에게 올린 책략을 사용해서 제나라를 침공했다.
제민왕은 위衛나라로 도망쳤지만, 태도가 불손해서 쫓겨난 뒤, 노魯나라로 도망쳤다. 그러나 제민왕은 여전히 교만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노나라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제민왕은 여莒로 도망갔다. 한편, 초나라는 제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작치淖齒를 보냈다. 그러나 작치는 연나라와 제나라 땅을 반씩 나누어 가지고 싶어했다. 이에 여莒에 입성하자 제민왕을 잡아죽였다.
그 동안 악의는 제나라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을 위로했다. 제민왕의 폭정에서 벗어난 제나라 백성들은 기뻐했다. 또한 제환공과 관중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제왕실에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살한 왕촉王蠋을 위해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었으며, 제나라의 유력자들로 하여금 연나라에게서 작위를 받게 하였다.
한편, 제민왕의 신하인 왕손가王孫賈는 여莒의 시장바닥에서 400명을 모아 작치를 공격해서 죽이고, 제민왕의 아들이 어디로 갔는지 수소문했다. 그 시각 제민왕의 아들인 법장法章은 신분을 숨기고 여莒의 태사太史 교敫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다. 법장은 왕손가의 도움을 받아 제나라 왕으로 즉위하고 여莒에서 연나라 군대와 대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침몰하던 제나라를 구원한 이는 법장이 아니라 전단田單이라는 임치성의 시장을 관리하던 하급 공무원이었다.
연나라 군대가 안평을 공격할 때, 전단은 자신의 일족에게 마차 바퀴축 양 끝에 작은 철제 캡을 씌우라고 지시했다. 이윽고 안평이 함락될 무렵 제나라 사람들은 다투어 마차를 타고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마차들은 도로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탓에 서로 충돌하여 부서졌고, 제나라 사람들은 연나라 군대의 포로가 되었다. 오직 전단의 일족만이 마차에 미리 바퀴축을 보호하는 캡을 씌웠기 때문에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안평을 탈출한 전단은 즉묵即墨으로 들어갔다.
악의는 연나라 군대를 둘로 나누어 여莒와 즉묵即墨을 포위했다. 즉묵의 방어를 맡은 대부는 연나라 군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전사했다. 이메 즉묵 사람들은 안평을 무사히 탈출한 전단이라면 병법에 익숙할 것이라고 믿어 그를 장수로 임명하였다.
연나라 군대가 여莒와 즉묵即墨을 포위한 지 일 년이 지났다. 악의는 이 두 성을 함락하지 못하자, 포위를 풀고 후퇴했다. 하지만 여莒와 즉묵即墨에서부터 9리 마다 망루를 세워 동향을 감시하게 했다. 하지만 성에서 백성들이 나오면 포로로 잡지 말고 그들이 원래 하던 일을 하도록 허락하여 민심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여莒와 즉묵即墨 사람들은 끝내 연나라에 투항하지 않았다. 그렇게 삼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연나라의 신하들 가운데 악의를 모함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연소왕에게 악의가 3년 동안 여莒와 즉묵即墨을 억지로 함락하지 않고, 제나라 사람들의 민심을 얻으려고 한 것은, 악의가 제나라의 왕이 되어 독립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연소왕은 악의를 모함하는 이들에게 연나라가 제나라를 정복한 것은 오로지 악의의 능력 때문이라고 하였다. 동시에 악의가 제나라의 왕이 된다면, 동맹을 맺어 다른 제후국들을 함께 상대할 수 있으니, 오히려 자신의 복이라고 일갈하면서, 악의를 모함하는 신하들의 목을 베었다. 그 후 연소왕은 정말로 악의를 제나라 왕으로 임명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악의도 감히 그 명령을 받들지 않았으며, 죽을 때까지 연소왕에게 충성하겠다고 맹세했다. 연소왕과 악의의 일화는 제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제후국에도 귀감이 되었다.
하지만 연소왕이 죽고, 연혜왕燕惠王이 즉위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연혜왕은 태자 때부터 악의를 꺼림직하게 생각했다.
이 소문을 들은 전단은 연혜왕과 악의의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악의가 제나라의 왕이 되어 독립할 마음이 없었다면, 진작에 여莒와 즉묵即墨을 함락시켰을 것이며, 지금도 제나라 사람들은 악의가 진심으로 진군해오는 것을 두려워 한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전단의 반간계는 적중했다. 연혜왕은 악의를 의심하여, 그를 연나라로 소환하였다. 악의는 연혜왕이 자신에게 벌을 줄 것이라고 짐작하고 조나라로 피신하였다. 이 일에 대해 연나라의 장수들은 분개와 애석함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서로 간에 불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
한편, 전단은 성 안의 사람들에게 식사 전에 반드시 마당에 나와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새들이 날아와 내려 앉았다. 아마도 새들은 마당에 떨어진 음식을 먹으려고 몰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나라 사람들은 이를 괴이하게 여겼다. 이에 전단은 다음과 같이 선전하였다.
“신이 군사를 내려 나에게 가르침을 전수할 것이다.”
“그럼 저도 군사가 될 수 있습니까?”
병졸 하나가 전단에게 핀잔했다. 그러자 전단은 정말로 그 병졸을 신이 내린 군사처럼 대했다. 병졸은 당황해서 말했다.
“제가 어찌 장군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아무 말 하지 마시오.”
전단은 그 병졸을 끝내 군사로 임명했으며, 출동할 때마다 신이 내린 군사께서 움직이신다고 외쳤다. 전단의 선전을 들은 제나라 병사들의 사기는 진작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전단은 출동할 때마다 연나라 군대가 제나라 포로들의 코를 베어 버리고, 제나라 사람들이 묻힌 무덤을 파헤치는 것을 두려워 한다고 큰 소리로 말하고 다녔다. 이에 연나라 군대는 제나라 사람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제나라 포로들의 코를 베고, 제나라 사람들이 묻힌 무덤을 파헤쳤다. 이를 목도한 제나라 사람들의 마음은 투지와 분노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악의가 비록 몇 년 동안 공들여 제나라 사람들의 민심을 얻었지만 하루 아침에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전단은 이제 제나라 병사들이 연나라 군대와 감히 싸울 수 있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제나라 병사들의 식솔들을 연나라 군대가 주둔한 곳으로 보내 항복하게 시켰다. 동시에 즉묵即墨의 부자에게 백성들에게서 걷은 군자금 천금을 주고는 연나라 장군에게 거짓 투항하라고 일렀다. 연나라 장군은 자신들의 한 잔학한 행동에 제나라 사람들이 공포에 빠져 저항할 의지를 상실했다고 착각했고, 연나라 병사들도 경비를 느슨하게 돌기 시작했다.
한편, 전단은 소를 천 마리 모았다. 그리고 소에게 용무늬 자수가 놓인 옷을 입히고, 뿔에는 칼날을 달았으며, 꼬리에 기름덩이를 매달았다. 어느 날 밤, 전단은 소들을 바깥으로 내보내면서 꼬리에 불을 붙였다. 소들은 연나라 진지를 향해 미친듯이 돌진했다. 5000명의 제나라 장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동시에 즉묵성에서도 노약자들이 그릇등을 두드리며 큰 소리를 질렀다.
연나라 군대는 대패했다. 전단은 연나라 군대를 추격하였다. 연나라 점령지에 살던 제나라 사람들도 연나라 군대에 반란을 일으켜 제나라 군대를 맞이하였다. 전단은 파죽지세로 제나라 전체 영토를 수복하고, 제양왕齊襄王 법장과 함께 수도 임치로 개선했다.
한편 당시 악의는 이미 조나라의 신임을 얻었을 뿐 아니라 관진觀津이라는 지역을 봉토로 받았었기 때문에 제나라와 연나라가 그의 동향에 대해 매우 경계했다. 결국 연혜왕은 악의한테 연소왕에게 입은 은혜를 어떻게 보답하겠느냐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악의는 연나라에 남아 있었으면 오자서처럼 연혜왕에게 죽었을 것이라고 운을 띄우면서, 연소왕의 업적을 훼손할 마음은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연혜왕은 연나라에 남아있던 악의의 아들에게 높은 벼슬을 내렸다. 악의는 다시 연나라와 소통하면서 제나라가 쳐들어 오지 못하도록 하다가, 조나라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제나라를 수복한 전단은 제나라 상이 되어 국정을 담당했다. 하루는 강을 건너는 노인이 추위에 부들부들 떠는 것을 보자 자신의 외투를 벗어 입혀주었다. 그런데 이를 본 제양왕은 심기가 불편했다. 전단이 민심을 얻어 제나라 왕의 자리를 찬탈할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신하 한 명이 차라리 전단에게 상을 내리고, 제양왕의 뜻을 잘 이행했다고 치하를 한다면, 민심은 전단이 아니라 제양왕에게 쏠릴 것이라고 간언하였다. 제양왕은 그 조언을 따라 민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제양왕이 전단을 눈엣가시로 보고 있다는 것을 폭로했다. 이에 제양왕의 총신들은 제양왕에게 전단이 받는 대접은 왕과 맞먹는다고 하면서, 그가 마음만 먹으면 왕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참소하였다. 이에 제양왕은 전단을 소환하였다.
제양왕이 자신을 부르는 까닭은 파악한 전단은 관과 신발을 벗고, 맨 어깨를 드러낸 채 입궁하여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였다. 이에 제양왕은 전단에게는 아무 죄가 없으며, 다만 신하라면 신하의 예법을 지키라고 하였다.
이 일을 들은 초발貂勃은 제양왕을 찾아갔다. 원래 초발은 전단을 미워했지만, 오히려 전단은 그의 능력을 높게 사서 제양왕의 보좌로 추천했었다.
초발은 제양왕에게 물었다.
“왕께서는 주문왕과 제환공보다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오.”
“주문왕은 여상을 태공이라고, 제환공은 관중을 중부라고 부르며 존귀하게 대접했는데, 왕께서는 전단을 이름으로만 부르고 계십니다. 이는 망국으로 가는 말입니다. 연나라가 우리를 공격했을 때 주군께서는 성양城陽의 산 속 깊이 숨어있기만 하셨습니다. 하지만 전단은 즉묵이라는 눈꼽만한 땅에서 떨쳐 일어나 연나라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당시 전단이 마음만 먹었다면 성양에 계신 주군을 버리고 스스로 제나라 왕이라고 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단은 그것이 의롭지 못하다고 여기고 성양으로 와서 주군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라가 안정되니 왕께서는 전단을 이름으로만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어린 아이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부디 전단을 모함한 신하들을 죽여서 전단에게 사죄하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나라가 위험해질 것입니다.”
이에 제양왕은 전단을 모함한 총신들을 주살하였다. 그리고 전단에게 상을 내려 동래군東萊郡 야읍夜邑의 만호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에 전단은 적狄과 제민왕 때 제나라에서 독립한 맹상군의 영지인 설薛까지 정복하였고, 제나라는 왕년의 위무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