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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지 May 25. 2020

치킨의 특별함

축제와 아픔, 그 사이에서



치킨에 대한 나의 기억은 초등학교 때 살던 아파트 단지 입구에 생긴 페리카나 치킨에서 시작된다. 신도시로 개발되기 이전의 일산 읍내, 그 최초 치킨 체인점이 우리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것은 너무나 획기적인 일이었다. 가끔 아빠가 사 오시던 재래시장 내 시장 통닭이나 길거리 전기구이 통닭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름도 통닭이 아니라, 치킨이었다. 처음 먹어 본 양념치킨의 맛은 정말 신세계였다. 매콤 달콤 짭짤한, 새롭지만 익숙한 양념 맛이 튀겨낸 닭의 감칠맛과 바삭함에 어우러져 그동안 알지 못했던 황홀한 맛을 선사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오천 원 남짓 했던 치킨 한 마리는 80년대 당시 아무 때나 먹고 싶다고 먹을 수 있는 가격대의 음식은 아니었다. 그래서 치킨을 먹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서울 사는 이모네가 오시는 날이거나, 동생이나 나의 생일이거나, 성탄절 이브라던지 하는 그런 특별한 날들. 그렇게 치킨은 우리의 삶에 새롭지만 익숙하고, 특별함도 갖춘 음식으로 등장하였다.


토론토 갤러리아의 양념치킨


짜장면처럼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었던 치킨은 경제 수준,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대중화되었고, 초창기 몇 되지 않던 체인점 수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동네 골목마다 곳곳이 자리 잡은 치킨 체인점들의 확산으로 치킨은 저녁 대신 간편하게 배달시켜 먹거나, 혹은 기분이 내키면 슬리퍼를 끌고 나가 생맥주와 함께 먹는 쉽고 친근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치킨이 언제부터 어떻게 한일전이나 월드컵 단골 메뉴로 자리잡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축구공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국민인 캐나다 시골 동네에서 그 뜨거웠던 2002년 월드컵을 맞아야 했던 나로서는 4강의 열기만큼 뜨거웠을 치킨 배달의 열기도 직접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치킨사업의 마케팅 노력이 컸겠지만, 배달이 쉽고 빠르다는 점과 별다른 준비와 뒷정리 없이 여럿이 나누어 먹기 좋다는 점은 분명 그 어떤 음식보다 커다란 장점이다. 그리고 대중화되었지만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라는 치킨에 대한 여전한 감성은 월드컵과 같은 축제처럼 들뜨고 북적거리는 분위기와 딱 어울린다.


하지만 그렇게 특별하지만 원할 때면 늘 곁에 있어 주었던 치킨은 캐나다 이민생활의 시작을 기점으로 내게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음식이 되었다. 캐나다에는 현대 프라이드치킨의 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체인점인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KFC)과 파파이스 치킨이 가장 흔하다. 하지만 북미식 치킨들은 한국의 치킨과는 전혀 다르다.


오래된 KFC 매장, Scarborough, ON


일단 맛이 다르다. 심지어 한국의 KFC와도 맛이 전혀 다르다. 엄청 짜기만 할 뿐 감칠맛 나고 바삭한 한국 키친과는 맛도 식감도 완전히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의 프라이드치킨은 한국처럼 주문하면 튀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튀겨 낸 후 열전등 아래 보온되었다가 주문과 동시에 나오는 패스트푸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킨과 당연히 함께 해야 할 새콤달콤한 치킨무가 아닌 느끼한 마요네즈에 버무려진 양배추 코울슬로는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그리고 정말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이곳에서는 치킨을 반이나 한 마리 단위로 주문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후라이드 한 마리요~’, 혹은 '반반이요~'가 아니라 치킨을 조각 수로 주문한다. 총인원수를 감안해 몇 조각을 주문해야 할지 잘 계산해 내어야 한다. 그리고 조각 수로 주문하면 어떤 부위가 내 주문에 딸려 올 지 알 수 없다.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당연히 있어야 할 닭다리 두 개가 보장되지 않는다.


보기만 해도 바삭함 따위는 전혀 없어 보이는 캐나다의 KFC 치킨


낯설고 어려운 이민생활처럼, 이곳의 치킨도 내게는 낯설고 어려웠다. 믿기지 않지만, 나는 차츰 치킨 시켜 먹자는 의견에 반대하는 한 명이 되어갔다. 그 짜고 눅눅하고 기름진 치킨을 맛있다며 먹는 캐나다인들이 안타까웠고, 그들 속에 섞여 한국의 치킨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이 가여웠다.


그 암흑기에 나와 동지 이민자들에게 촛불이 되어 주었던 치킨집이 있었으니, 바로 토론토 시내 한인타운인 크리스티에 있던 아주커 치킨이었다.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했기에 당연히 캐나다 고유의 한인 치킨집인 줄 알았던 아주커 치킨이 한국에서 온 체인점이라는 사실은 뜻밖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당시 한국에서 대세를 떨치던 비비큐치킨이나 그 뒤를 이어 치킨 업계의 또 다른 강자로 떠오른 교촌치킨이 아닌, 잘 알려지지도 않은 브랜드인 아주커치킨이 홀로 이 먼 곳에 진출해 있었다니.


아주커 치킨


대세 치킨 체인점이 아니어도 아주커 치킨은 한국의 치킨이었다. 양념 아니면 후라이드 한 마리, 혹은 반반의 주문과 동시에 반죽에 굴려져 자글자글 끓는 튀김기로 풍덩 들어간다. 차르르, 치킨 조각들이 기름과 만나며 내는 소리보다 흥분되는 소리가 또 있었을까. 바삭하게 튀겨져 나온 치킨은 그대로, 혹은 다진 마늘이 잔뜩 들어간 다홍색 양념에 버무려져 은박지가 둘러진 종이상자에 담긴다. 80년대 처음 보았던 그 상자에 담겨 치킨무와 함께 포장된 치킨을 건네받으면, 치킨이 식을까 튀김옷이 눅눅해질까 조급한 마음에 조심조심 최대한 빨리 집으로 향했다. 물론 배달은 되지 않았다. 한국처럼 따끈하게 배달받아먹을 수도 없고 슬리퍼 끌고 후딱 갈 수 있는 길도 아니었지만, 그래서 특별함은 배가 됐다.


그 특별했던 아주커 치킨은 크리스티 한인타운에 같이 자리했던 소박한 반찬가게들, 라면과 초코파이 등을 팔던 작은 식료품점들, 칼국수나 불고기가 주 메뉴인 천장 낮은 음식점들과 함께 사라져 갔다. 영세한 한인업체들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비싼 가겟세에 쫓기고, 깔끔한 인테리어와 참신한 아이템을 내세운 새로운 가게들에 밀리고, 다운타운보다는 놀스욕 지역으로 옮겨 간 한인들에게 외면당하며 그 특별함은 잊혀갔다.


크리스티 한인타운, Toronto, ON, 2009, Photo by Chung Chu


그 사이 토론토에는 더프라이 (The Fry), 불닭본가, 마이마이 치킨 (Mymy Chicken) 등 여러 한국식 치킨 체인점들이 생겨났다. 메뉴도 아주커 치킨 시절의 후라이드와 양념에서 벗어나 파닭, 간장치킨, 치즈를 가득 올린 치킨 등 다양하다. 토론토의 대형 한인마트로 푸드코트까지 갖춘 갤러리아는 치킨을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미리 주문하여 픽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집에서 갤러리아가 가까운 덕분에 나는 쉽고 빠르게 동네 치킨을 먹을 수 있는, 20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호사스러운 이민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제는 월드컵 한국 경기뿐만 아니라 블루 제이스(Blue Jays: 토론토 소속 메이저 리그 프로 야구팀)나 랩터스 (Raptors: 토론토 소속 엔비에이 프로 농구팀)가 출전하는 날에 치킨을 시켜 놓고 경기를 즐기는 한인들이 많아졌다. 야구나 농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인들에게 인기가 적은 하키팀인 메이플 리프스 (Maple Leafs)나 창단되지 얼마 되지 않은 프로 축구팀인 토론토 에프씨 (Toronto FC) 경기날에는 큰 호응이 없다.


토론토 마이마이 치킨의 파닭


경기날이 아니더라도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모이면 으레 치킨을 시켜 먹는다. KFC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인 동시에 코리안 프라이드치킨으로 인식될 만큼 인지도가 높아진 한국식 치킨을 좋아하는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자랑스럽게 치킨집으로 향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일상이던 것들이 더 이상 일상이 아니게 되어버린 지금은 우리가 다시 만나 함께 치맥을 즐길 날을 꿈꾼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끝나는 날에는 분명 치킨과 함께 축제가 열릴 것이다.


토론토 금융가의 핫한 술집 메뉴에도 있는 코리안 프라이드치킨


그렇게 특별하고 좋은 날에만 먹는 치킨을 많이 슬프고 힘들었던 날에 먹은 적이 있었다.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 초롱이를 입양 보내야 했던 날, 엄마는 페리카나 치킨을 시켜주셨다. 엄마와 동생, 나 우리 셋은 눈물범벅을 하고 치킨을 먹었다. 그리고 치킨을 다 먹고 났을 때쯤 우리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행복했던 연애가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끝나버린 코로나의 봄날. 나는 치킨 한 마리를 덜렁 사들고 공원에 갔다. 그것은 무려 마침내 캐나다에 온 대망의 비비큐 치킨이었다. 나는 오랜 겨울 뒤에 찾아온 봄을 축하하는 사람들 속에 묻혀 축제의 음식 치킨을 먹으며 그 찬란하게 서러웠던 봄을 맞이했다. 그런데 눈물은 나고 입맛은 없는데도 치킨은 맛있는 걸 보니, 헤어짐의 아픔을 어떻게든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치킨은 여전히 맛있고, 여전히 특별했다.


토론토 비비큐 치킨의 소이갈릭 치킨




사진: 1989년 페리카나 치킨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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