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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 Aug 29. 2023

사과나무

할머니의 장례미사 1.

할머니가 계신 동네는 동네초입부터 사과나무가 즐비해 있었어

어릴적 추석을 맞아 할머니댁을 방문하는 날이면 너무 신나서 방방거리곤 했는데 다만 할머니댁에 도착할때까지는 큰 고난이 있었어 바로 멀미 였지

메슥거리는 멀미를 참아내는건 언제나 힘들고 익숙해지지도 않더라... 할머니댁으로 가는 버스 안 난 두손 모아 꼭잡고 토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도 해보고 재미난 생각을 하면 괜찮아진다고 해서 이런 저런 신났던 순간들을 쥐어짜내며 떠올려보기도 하고 차창밖 풍경을 보면 괜찮다고 해서 목이 아플정도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기도 해보고.. 난 정말이지 버스안에서 비닐봉다리에 얼굴을 묻고 토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렇게 간신히 간신히 멀미를 참아보곤 했어.

아.. 멀미참기는 진이 빠지게 진짜 힘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일 좋은 방법은 그냥 멀미약!을 먹는거더라고!!

엄마가 하루는 무슨 생각이셨는지 버스타기전 작은, 정말 작은 약병을 하나 주시는거야 그리고는 그 작은 병에 들은 물을 반만 마시게 하더라고  와~ 난 그날 그렇게 멀쩡한(?) 상태로 할머니댁에 갈 수 있단사실이 정말 놀라웠었어 박하사탕같은 화한맛과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액체를 한모금 정도만 마셨을뿐인데  날 괴롭히던 멀미가  바로 진정이 된다는게.. 그치만 우리엄마는 그 뒤로 멀미약을 안사주셨지 그 당시 멀미약을 먹으면 애들 머리가 나빠진다는 풍문을 믿으셨던거 같아.. 아 고등학교때까지 내 학교성적은 멀미약때문이였나보다 ..

어쨌든 그렇게 멀미를 참아내다보면 차창밖으로 마을 어귀 사과나무가 보이기 시작해 그럼  ' 살았다 ' 란 마음과 동시에 울렁울렁 거리던 속이 진정이 되곤 했어


사과나무 본 적 있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몰랐던 어릴적 명절날 어른들과 성묘 갔다 내려오는 길목에는 큰 과수원이 있었어.  그 과수원의 사과나무를 본적이 있는데 내 어린날 기억엔 나무도 커다랗고 꼳꼳하니 멋지고 사과알도 어찌나 탐스럽게 큼직하던지 철없던 난 그 탐스런 사과를 툭툭 몇알이나 따서 갖고 온적이 있어. 와~ 맛도 어찌나 좋던지... 아직도 기억나

 

할머니네 동네에 있던 사과나무는 마을 도로변과 동네 여기 저기에 심어져 있었는데 내가 아는 근사한 사과나무가 아닌 나무도 작고 비실한데 사과만 비정상적으로 너무 많이 달린 마치 어미 멍멍이 몸은 빼빼 말랐는데 새끼들이 잔뜩 달라붙어 젖을 빨고 있는듯한 애처로운 모습의 초라한 사과나무였어

그런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얼마나 달려있을까 궁금함에 가까이 다가가 구경해보곤 했는데  제사상에 올라가거나 엄마가 슈퍼에서 사오시는 사과보단 대부분 알이 훨씬 작았고 색이 예쁘지도 않고 크기도 제각각에 아예 여물지 못하거나 좀 빨갛게 여물었다 싶은건 뒷면이 씨커멓게 썩어 있었어  얼핏보면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탐스런 사과나무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과가 이렇게도 생길수 있단 사실이 좀 놀라웠지

제대로 된 비료를 쓴게 아니니 그런 사과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던건데 농사도 안해본 꼬맹이가 그런걸 알턱이 있나  늘 알이 굵고 탐스러운 사과만 먹어보고 봐왔으니 .. 아마도 할머니네 동네는 사과로 유명하단걸 홍보하려 했던거겠지


사과는 가을과 겨울이 되면 참 흔한 간식이였어

겨울밤 입이 궁금해질때쯤 할머니는 동그란 나무채반을 들고 다락방에 올라가셨어

찬 기운을 내뿜는 다락방에서 할머니는 붉은빛 탐스런 사과들을 채반 가득 담아 내려오셨는데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강아지 마냥 할머니를 쫄래 쫄래 따라다니다 할머니가 앉으시면 할머니와 사과가 담긴 채반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앉는거야 마치 간식받아먹길 기다리는 똥강아지들처럼

묵주 반지가 끼어진 갈색빛의 투박하고 거친 할머니 손이 사과를 빙빙 돌려가며 뽀얗게 깎아내면 우리는 홀린듯 그 손을 바라보곤 했어  그렇게 뚝딱 다 깎은 사과를 조각 조각내어 작은 접시에 담으시곤 할아버지 먼저 갖다드리라고 우리쪽으로 내미시면 한놈이 받아 ' 할아버지 사과 드세요 ' 하고는 그때부터 나머지 사과를 정신없이 주어먹었어 조금 푸석거리기도 했지만 아삭아삭 달콤함이 마냥 좋았고 여럿이서 다같이 먹으니 더 신명나게 먹었지


시간이 흘러 똥강아지같던 난 어느덧 20대후반의 취업준비생이 되었을때야

그당시 난 음.... 방향을 못 잡고 있었어

지금까지는 어떻게 어찌어찌 살아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어느 방향을 찾아가야하는지... 정말 아무것도 감을 잡을수가 없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였어

시간은 흐르고있고 내주변 사람들의 환경도 조금씩 변하고 있고 다들 열심히 자신의 삶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거 같은데 난 달리기는 커녕 방향도 못찾고 갈피도 못 잡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만 보내고 있는 정말 갑갑한 사람이 되어있었어 그리고 이런 생각들에 밤송이처럼 까슬하고 예민하기만 했어

난 잘 웃고 떠들고 내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당당하고 씩씩한 사람이였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건지

내 한심함과 무능력, 초라함 찌찔함 이런 어리숙하고 못난 모습들을 들킬까 두려워 사람을 만나기도 꺼려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도 낯설어 당황스럽기만 했었어

내 모습이 당황스럽다니... 다른사람이 아닌 내 모습에서 당황스러움을 느낀다니.. 이런기분 알아?

정말 갑자기 학습조차 한번 해본적 없는 낯선 곳에 혼자 뚝 떨어져버린 그 막막한 기분을..


그당시 제일 어려운 상대는 낯설게 느껴지는 나 자신이였어 마치 내 안에서 어느날 갑자기 슥~하고 '다른 내'가 나와버린거 같았거든 난 그 당황스러움에 '다른 나'를 새가슴이되어 눈치를 보고 있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였어  상태가 그러니 난 모든것들에 날이 서있었고 늘 긴장상태로 지냈었어

그러니 사람들과의 대화도 당연히 순탄치만은 않았어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할머니하고는 더욱 더!


우리 할머니는 흔히 볼 수 있던 시골 할머니 모습을 하고 계셨어

정말 작은 체구에 뽀글파마, 까무잡잡한 갈색빛 피부, 오랫동안 땅을 만져 거친 손과 그 손에 끼어진 묵주반지, 흙때가 껴있는 손톱 발톱, 조금 구부정한 모습으로 걸으시지만 정말 동해번쩍 서해번쩍 하는 부지런함,  6.25전쟁 중 우리 아버지를 낳으시고 사고로 큰 화상을 입어 커다란 흰색 화상자국이 남은 왼쪽 아래팔..

살림이 빠듯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학업에 대한 욕심을 낼 수 없었기에 야학을 다니시며 한글을 깨우치셨고 그 덕에 밤마다 묵주를 손에 쥐고 성경책을 스스로 읽어내신다는 자부심이 있으셨어

우리 할머니 넷째 아들은 애기때부터 많이 아프셨대.. 병원도 귀하던 그시절 아픈 어린 넷째 아들을 업고 깜깜한 밤길을 걷고 걸어 의료원을 찾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그렇게 이미 떠나버린 축 늘어진 아들을 업고 걸어오시다 성당 수녀님들의 도움으로 아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대.  그때부터 우리할머니는 카톨릭 신자가 되셨고 정말로 열심히 성당을 다니셨어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와 우리 오빠 언니는 10살무렵 겨울 세례를 받게되었지


할머니는 당신 삶에 당신을위해 무언가를 갖는다는게 익숙치 않으신 분이라 선물을 받으면 주변에 다 나눠주셨고,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모아두셨다가 손주들이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이면 꾸깃꾸깃하게 접은 지폐를 손주들 주머니에 푹 찔러넣으시며 " 책 사보거라 "  그 꾸깃꾸낏 접은 지폐에는 만원짜리 오천원짜리가 섞여 있었는데 정말 갖고 계신 돈을 다 주시는거 같았어


삶의 평생을 희생 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삶을 살아오신 우리 할머니

난 그런 할머니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전 5년정도를 참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어







- 할머니의 장례미사 1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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