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산책
이렇게 싫은 이유가 많은 여름은 어김없이 찾아오지 내가 막을 재간이 없으니....
더워도 일은 해야하고 뜨거운 불 앞에서 오늘 하루 먹을 음식도 만들어야하고 얼굴에 땀이 송송 맺히는데도 화장도 해야하고 눈치없이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위해 뜨거운 고데기도 해야하고
무엇보다도 더워 죽겠는데 속옷과 겉옷도 단정히 입어야하고... 아우...사람이여
곡식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계절이다만 나란 사람에게 있어선 꼭 있어야하는거니 라는 생각이 드는 이 계절 그래도 좋은 순간이 있드라고
바로 ' 여름저녁 '
박명이 남아 있는 저녁무렵 슬렁 슬렁 부채질하며 걷다보면 낮동안 더위로 치솟던 노여움이 많이 누그러지고 짜증으로 구겨져 있던 미간과 입술이 부드럽게 펴지며 멍하니 다채로운 빛을 내는 저녁하늘을 바라보게 되지
어느 여름저녁 시골 할머니댁 텃밭이였어
할머니는 덧밭옆 콘크리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콩을 까고 계셨고 난 할머니 잔소리가 듣기 싫어
곁에 가까이 가지 않고는 이웃집 어르신과 콩을 까는 할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어
우리들 건너편에서는 보행기에 의지해 천천히 걸어오시는 할아버지가 그리고 돌이 안된 사촌조카와 사촌 그리고 작은아버지가 오고 계셨어
옅게 어스름히 남은 빛과 검은 산 부드러워진 저녁 바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들... 우리들을 감싸고 있던 풍경들이였어.
어느 여름저녁에 우리가족들은 갑작스럽지만 자연스럽게 텃밭에 모여있었고 이 여름저녁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한 마지막 여름이였어
이날 이 특별할거 없는 이 풍경들이 여름만 되면 잔잔하게 생각이나
참 신기해....여름 참 싫은데 이날의 이 풍경과 기억이 날 평온하게 만들어
이 여름날이 그리워져서 그런지
올 여름 8월이 되자마자 부여로 휴가를 다녀왔어
궁남지의 저녁 모습을 보고싶어서 시간맞춰 숙소에서 출발했지
오래된 연꽃밭인만큼 연잎이 크고 무성하니 그 습함과 싱그러움 게다가 매미들이 이때다!라는 각오로 울어대는데.. 세상 모든 소리가 매미와 여름벌레 소리로만 가득찬거 같더라
시간이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하니 다시 그날의 여름저녁이 생각나더라
난 언젠가 내가 기른 콩을 까면서 여름날 하루를 마무리 하고 싶어
발등은 넓고 두꺼운데 샌들은 좁았던거야....
아 내 발가락 발등!!!
부여시장에 있는 신발가게서 급한대로 산 슬리퍼!
늙은 노부부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가게였는데 사모님이 추천해주신 슬리퍼여~
아따 좋아~ 덕분에 여행 마저 잘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