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 눈물 많고 서러움 많던 사람
왜 그리 눈물도 많고 걸핏하면 윽박지르시고 세상 서러움 혼자 다 안고 계신것처럼 말씀하셨던지
내 어리고 어리석었던 지난시간 난 그런 할머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
내 기억속 할머니는 손주들이나 작은아빠, 큰아빠들과 말씀을 나누실 때 습관적으로 언성을 높인 말투에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씀을 툭툭 잘 던지셨어
할머니 의도가 그런게 아니였다한들 일단 그런 말투에 순간 화가나 난 기분이 종종 상했었고 아빠들도 같이 언성을 높이시며 화를 내시며 대화가 끝났던게 기억이나 그게 우리 할머니 대화법 이였어
근데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싫었던건 다른 사람과 날 아무렇지 않게 종종 비교해대는 거였어
나에겐 한살터울의 사촌동생이 있어
그 동생은 어른들이 좋아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던 완벽한 어린이였었어
얌전하고 차분한데다 어른들 말씀도 잘 듣고 학급에서 1,2등을 다투던 모범생에다 나물반찬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잘 먹는 정말 예쁨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동생이였어. 게다가 팔다리도 길쭉 길쭉하니 몸선도 예쁘고...
할머닌 그런 동생과 나를 종종 습관처럼 비교하시곤 했었어
" 00이는 얌전한데 너는 왜 그렇게 가만히 있질 못해~! "
" 00이는 이번에 반에서 1등 했댜 넌 어땠냐 ? "
" 00이는 벌써 키가 이만치나 컸다~ 조만간 성님(형님)인 널 따라 잡것다 "
하루는 여름날 아침이였어 난 어느때처럼 여름방학이라 할머니댁에 놀러갔었고 새벽잠이 없는 할머니보다 늦잠을 자고 있을때였어 이른 아침쯤이였지 난 자고 있는데 뭔가 내 다리쪽에서 이상한 느낌이 오는거야
순간 눈을 뜨고 혹시 벌레가 기어다니나 하고 봤는데 알고봤더니 할머니가 내다리에다 당신손을 대고 한 뼘 두 뼘 손뼘재기를 하고 계시던거야 그것도 사촌동생 다리길이와 내 다릴 비교해 가면서....
순간 " 뭐 하는거에요 ~!! " 하고 외쳤던 기억이 있어... 그당시에는 그게 무슨 느낌과 감정인지 바로 정리 할 수 없었는데 분명 난 엄청나게 불쾌했었어
할머니 체구를 빼다박은 자식들은 하나같이 평균신장보다 훨씬 작았어 그런 할머니 유전자를 그대로 받아온 자녀중 한사람이 바로 우리 아버지였었고 그런 아버지 체구를 물려받은 사람은 나와 우리 언니였어
그런데 그런 유전자의 대물림, 자연의 이치는 생각치도 않으시고 " 얘~! 너가 00이보다 한 뼘이나 적다 " 이러시는거야... 내가 누구덕(?)에 이렇게 작은데!!!!!!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들이 참 무서워... 할머니의 비교해대는 말들이 짜증이 나면서도 어느덧 난 신체에대한 콤플렉스가 자연스럽게 생겼고 ' 키가 작은건 흠이다 ' 란 생각이 내 머릿속에 자리잡았어 무언가 일이 안풀리고 기분이 안좋을때는 내가 볼품없이 생긴탓에 관상도 별로라 그런가보다...란 생각까지 하게되더라니까
할머니는 모르셔 당신이 내게 해주신 모든걸 다 뒤엎을정도로 말로 상처주신거.. 그래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시고 사셨겠지
밤송이처럼 까슬거리고 예민하던 20대후반 시절 방황하는 내 사정을 모르시고 할머닌 그때도 그러셨어
" 00이는 벌써 시집가서 얼라를 낳았는데 성님인 넌 뭐하는겨~! "
한살터울의 사촌동생은 속도위반으로 결혼을 하고 그해 여름 딸아이를 낳았어 그 당시 난 할머니댁 근처에 있는 우리 텃밭을 엄마, 오빠, 언니와 종종 가야만 했을때였고 일주일마다 만나게 되는 할머니는 그때마다 " 결혼할 남자 없냐? " 란 질문을 빼먹질 않으셨지.. 사촌동생의 결혼에 나잇대가 비슷한 언니와 나의 혼사문제가 할머니에게는 중요한 화두에 올랐던거 같아. 고추밭에서 고추따고 있는 내게 불쑥 얼굴을 들밀고는 " 얘 정말로 없는겨(남편감)? " 아니... 당신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어떻게 일주일사이에 결혼할 남자가 생기겠냐고 어디서 보쌈이라도 해오란 거여? 답답하고 짜증나는 마음은 똑같았는지 반복되는 물음에 언니는 결국 " 그렇게 결혼이 좋으셨으면 할머니나 한번 더 해요! " 란 대꾸에 할머니는 이년들 뭔년들 하며 노하셨더랬지....
하... 그땐 눈물나게 짜증났었어 이젠 결혼까지도 사촌동생하고 비교하나란 마음에.. 근데 지금이 되니까 그때 그 당시 할머니 마음이 이해가되.. 가장 믿고 의지했던 셋째아들이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할머니 마음도 같이 무너졌던거같아. 집안 대소사에 가장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대안을 내놓고, 몇째 며느리때문에 속상하다고 징징대는 할머니편 한번 들어주지 않고 두사람 사이 의나지 않게 처신도 잘하셨지, 그 당시 내놓으라하는 명문고에 진학해 도청 공무원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런 부족함 없다 생각한 셋째 아들이 우리 아빠였거든... 그런 완벽한 내 아들의 자식들이 저러고(?)있으니... 애가 타셨나봐
어쨌든 그런 할머니가 할아버지 먼저 보내드리고 한해 지나시면서 자식들 집에서 지내고 싶어하시더라고
아들을 다섯이나 두셨으니 당신 인생의 마무리를 요양원이 아닌 아들 집에서 맞이하고 싶으셔했어
넷째아들댁에서 3달남짓 보내시더니 어느날 셋째아들댁에 가고 싶다고 하시더래
아빠와 엄마는 당연히 할머니를 집으로 모셨고 제일 큰 안방을 내어드렸어.
그때 할머닌 아흔을 넘기셨고 자궁쪽에는 암이 있던 상태였어 의사선생님 말에 따르면 노화에 의해 생긴 병이고 지금 수술하면 기력만 잡아먹으니 그냥 천천히 진행되게 두시는게 좋을거 같다고 하셨대.
근데 할머니 두눈엔 총기가 또렷해서 정말로 어디 아프신분 같지 않았어 도우미 할머니가 오시면 같이 콩도 까시고 텔레비젼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보시며 잘 웃으시고 전처럼 바지런하게 이곳저곳 돌아다니시는게 아닌 한가롭게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내가 알고 있는 그냥 할머니 모습이셨어
그때는 나도 부모님과 따로 지낼때라 하루에 한번 부모님댁에 들러 할머니 얼굴을 보고 가곤했는데 그때까지도 할머니에 대한 감정이 엄청 좋아지고 풀린건 아니지만 그냥 전처럼 으르렁대는 사이는 아니였어
그러다 어느날부턴가 할머니가 눈을 안뜨시는 거야 일부러...
- 할머니의 장례미사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