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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별택시 Aug 27. 2017

[출근 3일째] “원래 이런거죠?”

“여태껏 항상 그래왔단 말은 우리의 가장 큰 재앙이다”_그레이스 호퍼  

#1. 2015년 5월 중 오전 여의도 한국거래소 기자실


오늘부터는 사무실을 나와 기자실로 출근을 한다. 우리 회사는 출근시간이 8시까지다. 원래 금융투자협회로 갈려고 했지만 이날은 한국거래소에서 가격제한폭 관련 브리핑이 있는 날이라 거래소로 향했다. 한 7시30분 조금 넘은 시간 기자실에 도착하니. 이미 먼저 온 기자들로 가득찼다. 나는 남은 빈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선배가 알려준 일보 양식대로 하루일정과 발제를 주요 기사와 함께 정리해 메신저로 보고했다. Y선배가 메신저로 물었다.


“거래소로 갔냐?”


“네! 거래소로 출근했습니다”


“네가 보낸 발제 잘 받았는데, 이거 무슨 내용인지 설명해봐”


아직 어떤 기사를 쓸지 구상력과 취재력이 약했던 나에게 당연히 선배의 지적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나의 첫 발제 기사는 한국거래소의 가격제한폭 확대에 따른 증권업계 영향이었다. 나는 주식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약했고, 선배는 거래소 가격제한폭이 바뀌면서 증권사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투자자들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설명해 보라고 했다. 나는 애초에 거래소에서 가격제한폭 확대와 관련한 브리핑을 듣고, 주요 증권사에 연락을 해서 이에 따른 예상되는 영향을 취재할 계획이었다. 쉽게 말해 그냥 브리핑 듣고 취재를 시작해 오후까지 마감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내가 제대로된 설명을 하지 못하자 선배는 내게 말했다.


“임마~ 기사는 야마가 중요해 자식아…네가 기사에 대한 제대로된 이해를 하지 못하더라도, 초점을 누구에 맞춰 쓸 것인지 정도는 제목으로 뽑아야 내가 국장한테 보고할때 커버라도 쳐주지”


“네 죄송합니다. 다시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빠져가지고...됐고 이번것은 내가 정리해서 알아서 보고 할테니깐, 네가 낸거 취재나 똑바로 해서 오후 2시까지 마무리해”


당시 거래소 브리핑 모습. <사진=본인>

브리핑이 시작되기전 앞서 메일로 도착한 리포트와 시황 등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장님께 갑자기 문자로 연락이 왔다.


“너 어디야? 어제 기사 조회수가 왜이렇게 저조해?”


나는 잠시 밖으로 나가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사장님 경제팀 ○○○입니다. 기사 조회수 관련해서 문자주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어 그래, 너 어제 쓴 기사 왜 이렇게 조회수가 안나왔어? 국장이 조회수 얼마 넘겨야 한다고 지시 안하든?”


“아...조회수 관련한 말씀은 따로 지시 받지는 않았고, 출입처 관련한 현안들 잘 처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하아(한숨을 쉬더니)..너 점심먹고 내 사무실로 들어와”


무언가 덜컥 겁이났다. 조회수라니...입사하고 나서 처음 듣는 얘기였다. 여기저기 출입처 돌아다니며 인사하기도 빠듯한데, 조회수까지 신경써야 하다니. 사장님이 직접 들어오라고 하니 덜컥 겁부터 났다. 오전 10시쯤 브리핑이 시작됐지만, 가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브리핑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30여분간의 브리핑이 끝나고 우선 오늘 낸 발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증권사 리서치 센터에 연락해 반응을 보았다.


“아 그거요? 증권업계 영향은 별로 그렇게 크지는 않을꺼에요…!@##@$!@$%#@”


업계 관계자 멘트를 정리하고 난 후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섰다. 내가 어제 쓴 기사는 보도자료를 포함해 한 12개쯤 됐고, 조회수는 1200클릭 정도다. 다른 선배들 기사수와 조회수를 보니, 온라인팀에서 가장 많은 기사와 조회수가 나왔고 산업부와 정치부 등을 보니, 기사수는 나와 비슷했고 조회수는 많이 나오는 선배가 1500~2000정도 나왔다.


“평균치로 보면 내 조회수도 비슷한 것 같은데....사람들 만나라고 해서 사람들 만나고 시키는데로 다 하고 있는데 어쩌란 거야 쳇...”


열심히 하고 있는데 뭐라고 하는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마 별 도리는 없었다. 한번 대판 혼나겠구나 하는 생각에 밥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근처 공원을 서성이다 사무실로 들어갔다.


#2. 오후 사무실 그리고 사장실


 사무실로 들어서자 관리부 과장님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견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사장실로 들어가 봐요. 사장님이 아침부터 찾으셨어요”


사장실로 들어서자 마자 사장님은 칼로 벨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앉아”


이후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각 부서의 기자별 기사수와 조회수가 일자별로 정리된 파일을 들이 밀었다. 이후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너 입사한지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니가 조회수가 제일 저조해!! 이게 말이 돼? 이제 갓 들어온 막내 새끼가 다른 선배들보다 열심히 할 생각을 해야지!! 얘기해봐 조회수가 왜 이렇게 안나온거야?”


사장님은 셔츠 단추까지 2~3개 풀어 헤치고는 내게 크게 분노를 표출하셨다. 조회수가 안나온 이유를 설명하라니....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나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기사 현안은 다 처리하고 있지만 독자 관심도가 조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크게 위축돼서 나 스스로도 뭐라는지 모를만큼 횡설수설 됐지만, 사장님의 불같은 호령은 계속됐다.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기사 관심도가 부족하면 연합을 참고하든 다른 회사 기사를 참고하든 기사양을 늘리면 되자나!!…너 우리 회사에서 요구하는 하루 조회수가 몇인줄 알아? 하루에 2500~3000은 나와줘야 돼!!”


“네...죄송합니다”


“너 이 새끼 앞으로 너 조회수 2500이상 나올때까지 퇴근하지 말고 기사만 써 안그러면 너 감봉이야!!”


말 그대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니 연봉 1800만원으로 계약된 신입기자에게 감봉이라니...지금도 빠듯하게 살고 있는데. 축 처진 어깨로 사무실을 빠져 나가자 국장님과 부장님이 밖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데려가면서 물었다. 왠지 모를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아, 사장님 왜 저렇게 화가 나신거야? 뭐 크게 잘못한게 있는거야?”


“네...제가 기사 조회수가 안나온다면서 기사수를 늘리라고 하셨습니다”


부장님은 나를 사장님이 잘 예민해지고 불같은 성격이니깐 이해하라고 위로해 주셨다. 국장님도 내게 뭐라고 하시지 않고 신경쓰지 말라고 사장님이 기대하는 바가 커서 그렇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셨다.


사실 나름의 변명을 하자면 나는 스스로도 고군분투 하고 있었다. 기사를 봐주는 사람을 있었지만 증권업계 현안과 관련해 방향을 잡아줄 선배는 부재했고, 출입처 홍보실이나 취재원 등과 관련한 인프라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언론에 첫 발을 디딘 상황이라 동료기자나 아는 기자도 회사 선배들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조언을 해주길 바랬지만, 현실은 내가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현안들로 가득했다.


#3. 사무실 밖 여의도 거리, 또 을지로


사무실을 나와 여의도 길거리 한 벤치에 앉아 Y선배에게 장문의 문자를 하기 시작했다. 기억나는데로 적어보자면 어디서 이런 문자를 보낼 용기가 생겼는지 가끔 웃음이 난다. 당시 Y선배는 이 문자를 보고 “어? 이놈봐라 쑥맥인줄 알았는데 배짱좋네”하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선배, 경제팀 ○○○입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오늘 사장님께 조회수 관련해 지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일을 게을리 한 것도 아니고, 오전에 출입처 출근해서 보도자료나 현안들 처리하고, 국장님이랑 부장님이 사람들 많이 만나라고 하셔서 증권사 홍보실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인사하고, 시키는 일은 다하고 있는데. 조회수 가지고 뭐라고 하시니 솔직히 좀 억울합니다. 제가 좋은 기사를 못써서 조회수가 안나온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기사 수를 늘려서 할당된 조회수를 채우라니요. 그렇게 조회수 나올때까지 집에 가지 말라고 하는데.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기사를 써야 하는게 맞는건지 정말 취재를 통해 제대로된 기사를 쓰는게 맞는건지 헷갈립니다. 언론사라고 불리는 매체들 원래 이런가요?”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하고 나니 왠지 모를 후련함을 느꼈지만, 후폭풍도 대비해야 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Y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네. 선배 ○○○입니다”


“빠져가지고!!!!!.........왜? ○○○가 너한테 뭐라고 그러냐?”


나는 자초지종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Y선배는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듣더니 한 마디 붙였다.


“너 지금 여의도지? 을지로 삼성화재로 와서 연락해라”


나는 다시 한번 욕먹을 각오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을지로로 향했다. 삼성화재 근처에서 선배에게 연락을 하자 선배가 내려오겠다며 후문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선배가 후문에서 뻘쭘하게 서있는 나를 발견하더니 한 마디 하신다.


“빠져가지고!!!.....야 너 혼내려고 부른거 아니고, 오늘 일정 다 끝났으니깐 이 형이랑 같이 술이나 마시자”


그때가 오후 4시쯤이었는데 선배는 나를 데리고 근처 순대국집으로 향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선배만 만나면 항상 순대국만 먹게 될 줄....


“이모!! 여기 순대전골로 2인분만 주시고 소주 한병만 주세요”


나는 술을 아예 못하는건 아니지만, 기자 생활하면서 술을 이렇게나 많이 마시게 될 줄은 몰랐다. 이날 선배와의 술자리는 앞으로 내가 얼마나 많은 술자리를 가질지 예견하는 듯했다.


“너 술 잘 마시냐?”


“저 그냥 보통 한병정도 마시고, 많이 마시면 두병정도 마십니다”


“오 그래? 술 엄청 못하게 생겼는데...”


선배는 술을 마시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한잔 두잔 마실때마다 점점 술 마시는 속도가 더 빨라졌고, 그 와중에 나도 모르게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취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선배와의 첫 술자리에서 나는 이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과 언론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선배는 내게 “기자는 야마를 잘 잡아야돼”이 말만 한 백번은 넘게 했다. 알고 보니 이 선배는 원래 사회부 기자 출신으로 주로 법조계를 출입해왔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당시 연차로는 8년차였으니 지금은 11년차쯤 됐다.


한 병 그리고 두 병 술병이 늘면서 선배는 개인적인 질문들도 내게 많이 던졌다.


“여자친구 있냐?”


“네 있어요”


“오~~있어? 얼마나 만났는데? 사진봐봐”


“네 2년 좀 안되게 만났어요. 잠시만요”


“오!!! 네 여자친구 맞어? 뻥치는거지?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만났어? 몇살 차이야?”


선배는 사진을 보자마자 폭풍과 같은 랩으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ㅋㅋ 맞아요. 소개팅으로 만났어요. 4살 차이에요”


“이 새끼....보기완 다르게 능력자네. 여자친구한테 잘 해야겠다”


선배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매우 인간적으로 대해줬다. 이날 나는 선배에게 나를 이해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 왠지 마음이 놓였다. 이후로도 나는 이 선배에게 고민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많은 말을 하게됐고, 이 회사에 다니면서 심적으로도 가장 많은 의지를 하게 됐다.  이 선배와 나는 밤 10시쯤 헤어졌다. 둘 다 만취상태였지만, 선배는 나에게 자기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것을 보고 집에 가라고 하셨다. 나는 지하철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기다려주고 선배가 집에 가는 걸 보고 귀가했다. 지금까지도 이 선배를 만나면 그렇게 하고 있다.


#4. 집으로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안


집으로 가는 길. 당시 여자친구는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술자리가 일찍 끝나면 대학로에서 잠깐 보기로 했지만 상황이나 분위기가 그렇지 못해서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카톡 답장을 하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웅....나 이제 집에 가”


“알겠어..끊어”


“미안해...선배가 갑자기 술을 마시자고 해서...나도 출근한지 얼마 안되고 해서 거절하지 못했어”


“어휴...또 그 소리니? 네 선배 좋으면, 네 선배 만나 왜 날 만나서 나까지 짜증나게해”


“미안해...앞으로 무슨일 생기면 그냥 약속 미루던가 그렇게 할께”


“아 진짜 짜증나네!! 그 말 말고 다른 할말은 없니? 맨날 똑같은 얘기야 끊어!!”


당시 우리는 무언가 핀트가 어긋나가고 있던 사이였다. 자주 싸우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기자생활을 하면서 다투는 날은 더욱 많아졌고, 우리 관계는 노력이 아닌 서로가 처한 환경의 개선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때는 서로에 대한 이해로 관계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시간은 흐를수록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했고 나중엔 미안하단 말도 의미를 퇴색하기 시작했다. 수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그 친구를 많이 좋아했고 의지했다.


물론 지금 그 친구는 그저 좋은기억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움도 이미 추억이 된지 오래다. 당시 내 인생은 과도기에 접어들었을 시점이었다. 나는 불안한 미래에 하루 빨리 기자로서 자리를 잡아 안정적인 삶을 꿈꿨고, 그렇게 도약하기 위해선 뉴턴의 제 3법칙처럼 내가 가진 일부를 내려놓아야 할 시기였다. 아마 우린 언젠간 헤어질걸 서로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았다. 이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운명이었다.


“왜 나 기다리게 만들어? 나는 네가 전부인데...넌 왜 내가 일부밖에 안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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