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의 마음
『멜론은 어쩌다』
아밀, 비채, 2025
소설 속 세계는 하나같이 비현실적이다. 뱀파이어가 버젓이 돌아다니고(물론 밤에) 버젓이 마녀가 영업하며(정부 허가를 받고) 이성애가 이상성욕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세계 속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원래부터 당연하게 그 형태였던 것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소설은 완전히 새롭게 세계를 상상하기보다 지금 존재하는 현실을 뒤틀어 비슷한데 다른 세게를 만들어 낸다. 그 상상력이 독창적인지 뻔한 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나는 주로 저자의 상상을 순순히 따라가며 만족해 하는 편이다. 합법 마녀와 불법 마녀가 존재하는 세상에 관한 상상은 재미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현실이나 소설 속 세계나 주류와 다른 비주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뱀파이어와 함께 사는 곳에서는 뱀파이어의 권리가 화두고 동성애가 정상인 곳에서는 이성애적 지향의 정당성을 두고 갑론이 오간다. 마치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입에 올리고 동성애자의 성적 지향의 정당성을 두고 논쟁하듯이. 저자는 현실에서 비주류였던 존재들을 주류의 자리에 세우고 음지에 숨어 있던 것들이 양지로 끌어내 독자 눈에 들이 민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정상과 비정상,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가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말한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넘을 수 없는 차원의 벽'에 부딪힌 사람들의, '어쩌다' 소수자가 되어 버린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그린다. 그런 와중에 성애에 관한 묘사를 굉장히 노골적으로 언급해서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어떤 성별 사이에서 이루어지든 성적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하는 행위에 관해서까지는 그리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한편으로 이 소설 속 세계는 아주 익숙하다. 작가가 상상하는 세계가 특정 부분은 현실과는 다른데 나머지는 다 그대로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사는 인물들도 현실의 인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욕망하고 고민하고 추구하고 행위한다. 뱀파이어든 동성애자든 무엇이든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사랑하는 법을 몰라 고생하고 사랑이라고 주장하면서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고 우월함을 주장하려고 한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어떤 가능성이 열려 있든 다른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해 외로운 사람이 존재한다. 괴로운 현실만 아니라면, 나를 받아주기만 한다면 아무리 기괴하더라도 어딘가로 도피하고 싶어하려는 사람도 존재한다. 주제 의식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상상된 세계관에 맞추느라 몇몇 인물은 평면적이고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작위적으로 행동하지만, 소설 자체가 인물보다 세계관에 주목하기 위해 쓰인 것이니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낯설어 보이는 소설 속 세계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실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극단으로 치닫거나 현실과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일 뿐 결국 뿌리는 현실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이상시하는 현실과 이성애를 이상시하는 소설 속 세계는 거울쌍 관계를 이룬다. 아이돌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마법을 걸어 통제하려고 하는 소설 속 세계는 현실 속 뒤틀린 형태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인간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하고 '제작'하려는 행위도 낯선 주제가 아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쉽사리 맞춰주기 어려운 인간과의 관계를 포기하듯이 지금도 많은 사람이 실제 사람과 관계를 맺는 어려움을 피하고 혼자만의 공간으로 침잠한다. 로봇과 평생 함께 하기로 결정하듯이 많은 사람이 간간히 인공지능과 대화하며 위로를 찾는다. 현실에서도 소설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역사를 뛰어넘어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오롯이 혼자가 되어야 했다.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멜론은 어쩌다』, 202쪽.
소설 속 이야기를 분류하자면 '특정한 세계를 보여주는 이야기'와 '세계 속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로 나눌 수 있겠는데, 아마 이것이 이 소설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일 것이다. 이야기 속 세계 자체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이야기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고, 세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파악했다면 그 뒤에 펼쳐질 내용은 쉽게 예측할 수 있으니 이야기가 더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세계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인물에 관한 이야기인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과 <야간 산책>이 더 흥미로웠다. 얼추 파악하면 어떻게 돌아갈지 아는 세계보다는 자신이 겪은 것을 공감할 누군가를 찾지 못하고 혼자만의 짐으로 남겨 두어야 하는 외로움을 품고 사는 인간이 더 관심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