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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Nov 04. 2021

괜찮냐고 마흔이 물었다

마흔 살의 네 아이 엄마

 집 옆으로는 개울이 흐르고 사방에는 산과 들이 펼쳐진 시골의 어느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벼농사를 짓고 소 키우는 일을 평생했고 그 옆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어릴 적 나는 또래 부모보다 더 늙은 부모를 부끄러워했다.  자식 아픈 것보다 송아지 아픈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빠를 야속하다 생각했다.


우리 부모는 자식 크는 것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나는  방목으로 자란다는 불평불만이 늘 그 가슴에 도사렸다. 그럼에도 다섯 남매 중 막둥이로 태어난 나는 그리 넉넉한 형편의 살림살이가 아니었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으며 밝고 명랑하게 자랐다.


세상의 큰 어려움 없이 사랑받고 챙김 받는 것에 익숙한 전형적인 막둥이의 삶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기 시작된 건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부터다. 결혼 10년 만에 네 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다. 네 명의 아이들을 낳고 키우는 동안 청운의 꿈을 품고 들어선 공직의 길에서는 늘 비켜서 있는 날들이 많았다.


셋째가 돌이 되자 젖을 떼고 호기롭게 직장에 복귀했다. 세 명을 돌보며 직장 생활하는 것도 고된 일이긴 했으나 셋째가 기저귀를 떼고 이제 간신히 숨통이 좀 트인다 싶을 때, 넷째가 찾아왔다. 7급 승진을 코 앞에 두고 재앙과는 입덧이 시작되었다. 입덧은 다시 나를 집안으로 데려왔다. 휴직과 복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아등바등 삶을 꾸려가던 나는 지금 넷째를 낳고 키 키우느라 4년째 육아휴직 중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더 일찍 복직을 했을 것이다. 코로나는 모든 일상을 멈춰 세웠다. 등교와 등원은 중지되고 아이들은 집에 머물렀다. 갓난아기를 어느 정도 키워 어린이집 보내고 숨 좀 돌린다 싶었더니 다시 엄마로만 살라했다. 그렇게 밥을 해 먹이고 온라인 학습을 시키고 아이들을 돌보며 코로나 시국을 견뎠다.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계획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도 그 모든 것들은 수포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나중에보다 지금. 어디 가야만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여기에서 순간을 온전히 누리고 행복해지는 것이 맞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때는 함께 신나고 웃고 떠들며 논다. 틈이 생기면 앞치마 두른 채 내 시간을 누린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것이 가장 행복하고 감사한 것이다.

 몇 달째 스타벅스에 가지 못해 불평불만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온전한 나를 살 수 있게 했다. 집 베란다 구석에 캠핑의자 하나 놓고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커피 한 잔 들고 책 한 권 들고 가서 스타벅스 음악 세팅하면 그곳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카페로 변신한다. 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들판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을 배경 삼아 잠시 내 시간을 누린다.


 육아와 나 사이에서 아이들을 향해 분노와 애정을 동시에 느끼며 분투하는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아주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아이들과 함께 나도 자라는 중이다.


막둥이로 태어나 늘 위의 오빠, 언니들에게 챙김 받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네 명의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엄마의 삶을 살게 됐다. 엄마가 보고 싶어 전화를 걸면 '엄마'라고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엄마 찌개 넘친다. 내가 이따 다시 할게."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는 일이 수시로 벌어졌다.


코로나가 다시 잠잠해지고 어린이는 어린이집이, 학생들은 학교에서 돌봐주고 밥도 해 주니 다시 틈이 생겼다. 시간 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읽고 쓰는 일이고 시간이 없을 때도 어떻게라도 했던 일이 읽고 쓰는 일이니 읽고 쓰면서 그간의 삶을 토닥이고 앞으로의 삶을 꿈꾸었다.


난 정말 올해가 마흔인 줄도 고 살았다. 아예 인지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다. 서른아홉과 마흔. 그 사이를 메우는 1년 이란 시간. 하지만 삼십 대와 사십 대가 주는 어감은 1년이란 간격을 훨씬 넘어섰다. 거기다 중년이니 불혹이니 하는 말들은 뭔가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그렇다 나는 마흔이다. 마흔이 된 나는 초등학교 4학년 큰 딸과 네 살 아이 그리고 그 중간에 초등 1학년과 2학년 연년생 아들을 키우고 있다.


 마흔이 된 나를 잘 돌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더 풍요로운 남은 마흔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이 공간에서 매일 쓰는 삶은 산다. 현실 속 나는 부족하고 서툴고 엉망진창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적어도 쓰고 있는 나는 글 안에서 헝클어진 내 삶을 이리저리 매만지고 정돈해 보려 애쓴다. 이런 애씀의 시간을 보내는 내가 좋다. 과 글의 선순환을 믿기에 오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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