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학부모 상담 주간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하지 않고 전화로 상담 했다. 세 명의 초등학생 선생님으로부터 연달아 삼일 동안 전화를 받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 목에 가시처럼 걸린 것은 집에서도 학습을 좀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학습에 대한 무신경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난 얼굴이 화끈거렸다. 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선생님들께 아이가 네 명이라는 것을 인지 시키며 내가 이 아이 한 명에게 매달릴 수 없음을 변명했다는 것이다. 끊고 나면 마음이 뒤숭숭하고 나 자신이 미워졌는데 그다음 날 또 다른 아이의 담임에게 또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내가 꼴 보기 싫었다.
작년 코로나 상황 속에서 아이들 건강하게 먹이고 입히며 키우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기며 그 터널을 빠져나왔다. 겨우 한 숨 돌리며 내 삶도 좀 들여다볼까 하는데 이제는 아이들 학습에 아무 관심도 없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저녁 시간,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먹고살기 위한 일들에 치여 녹초가 될 즈음 딸아이가 내미는 수학 문제는 눈에도 안 들어오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난 정말 사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그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정말 너무 몰랐다. 학창 시절 때 그렇게 수학을 싫어하고 공부도 안 했는데 이제와 딸아이에게 억지로 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말이다. 내가 시키기 어려우니 지난 달부터 딸아이가 수학 공부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숙제도 있고 피아노 학원까지 다녀야 하니 많이 피곤하고 힘들어했다. 며칠 동안 신경질이 잦아진 딸내미 비위를 맞춰가며 마음에서 늘 도사리는 화를 겨우 겨우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도 딸은 내 신경을 건드렸다. 오늘따라 막둥이까지 아침부터 징징거려서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공부방 다니니까 피아노 학원이라도 끊어줘. 진짜 힘들어. 엄마가 내 마음을 알기나 해?"
화를 누르며 겨우 듣고 있다가 결국 버럭하고 말았다.
"야 너 공부방도 피아노도 다 다니지 마. 이렇게 맨날 엄마한테 신경질 내고 아주 상전 모시듯 하려니까 엄마도 힘들어 정말!!!!"
"알았어. 나 오늘부터 아무 데도 안 다닐 거니까 다시 가라고 절대 하지 마!!!"
우리의 대화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다. 속에서는 '에이 진짜 아무 데도 안 가고 오늘 집으로 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씩씩거리며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대로 보내면 정말 모든 게 끝일 것 같아 한 마디 던졌다.
"야 너 나중에 공부 더 어려워지면 엄마 원망하지 마. 엄마는 너 지금 도와주려는 건데 네가 거부한 거야."
속으로는 벌벌 떨면서도 더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말도 안 하던 딸이 집 문을 열면서
"나도 힘들어서 그런 건데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학원 갈 거야 가."
딸이 나가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에잇 정말 엄마 노릇이 쉽지가 않다. 어릴 때는 어릴 때 대로 또 이만큼 크니 공부 문제도 있고.... 우리 집엔 각 생애주기가 다른 아이들이 네 명이나 있으니 각자가 원하는 욕구와 관심도 다르고. 다 내려놓고 살면 마음이 좀 편하긴 한데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정말 쉽지가 않다.
이렇게 정신이 복잡할 땐 운동이 최고다. 정말 오랜만에 동네 체육관으로 달려가 땀을 쫙 빼고 와서 샤워를 마치니 정신이 좀 난다. 살아볼수록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오늘도 비뚤어지려는 날 구슬리으고 또 아이들 마음도 잘 구슬려 잘 지내봐야겠다고 마음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