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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Dec 09. 2021

전업맘에서 워킹맘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4년 만의 복직..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마흔이 얼마 남지 않았고 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


휴직(休職)

일시적인 사정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일정 기간 떠나 있는 것을 말한다.

나의 일시적인 사정은 출산과 육아

내가 직무를 떠나았었던 기간은 정확하게 3년 8개월... 거의 4년이 다 되어간다.

넷째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부터 기저귀를 떼고 하고 싶은 말은 뭐든지 다 하는 네 살 꼬마인간이 된 지금까지 난 이 아이와 그 위의 세 명의 아이들 곁을 지키며 '엄마'로 살았다.

2022년부터는 다시 직장인으로 복귀한다. 엄마로만 살았던 몇 년의 공백 기간 후, 다시 사회로 나가려고 준비하는 난 사실, 막막하고 두렵고 걱정이 앞선다. 더군다나 절반의 2년은 코로나까지 덮쳐 정말 네 명의 아이들에게 학습과 급식을 제공하며 정말 집 밖에 나와보지도 못한 날들이 많았다. 이런 내가 다시, 사회로 발을 내딛는 것이다.

처음에 드는 마음은 물론 감사다. 나의 일시적인 사정으로 일정 기간 쉬었다가 다시 돌아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다음 올라오는 감정은 걱정과 두려움이다. 몸과 뇌가 몇 년 동안 '엄마'로 살아온 내가 다시 젊은 직원들 틈바구니에서 잘해 낼 수 있을까? 신규자가 된 기분이다. 모든 게 낯설고 걱정스럽게 다가온다.


 엄마로만 살던 내가 다시 나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엄마의 직무 위에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이 얹어지자 느껴지는 부담감은 하루에도 몇 번씩 양날의 검처럼 내 마음을 왔다 갔다 했다. 주변인들의 반응도 내 마음처럼 반으로 나뉘었다. 이제 복직한다면 하면 어떤 이들은 "애들은 어쩌고요? 애들이 아직 어린데....." 이렇게 말했고 또 어떤 이들은 " 와 축하드려요. 드디어 다시 출근하시네요." 했다.

애들은 어쩌냐는 우려 섞인 말에는 활짝 웃으며 "어린이집이 있잖아요." 했고 축하 인사에는 감사인사를 건넸다.


 이렇게 절반의 기대와 절반의 걱정을 품은 내가 제일 먼저 복직을 위해 한 일은 몇 년 동안 쳐 박아둔 직장인이 입고 다닐만한 옷가지들을 몇 벌 꺼내 입어보는 것이었다. 맞지 않다. 억지로 자크를 올리다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살찌는 것을 그렇게 경계하고 살았으나 왕성한 식욕은 결국 내 몸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 꿈이 뭐였는지 알아요? 내가 아기 낳고 직장 복귀해서 애가 네 명이라고 하면 다들 이구동성으로 '어머 네 아이 엄마처럼 안 보여요.' 이렇게 말하는 거였어요."

남편은 낄낄 거리며 웃으며 " 하하하 이제 네 아이 엄마라고 하면 '아 그렇군요.' 하겠네요." 한다.

나의 도끼눈을 보며 "그러지 말고 예쁜 옷 몇 벌 사라." 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도망치는 남편.

음... 그래 맞아 복직을 하려면 먼저 옷이 있어야겠어.

정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옷을 샀다. 매일 청바지와 점퍼 하나 걸치고 다니면 그만이었던 내가 단정한 스커트와 플레어스커트, 단정한 니트 티, 고급스러워 보이는 코트까지. 하나하나 옷을 사고 화장품도 샀다.

이런저런 것들을 사고 나니 '아 내가 진짜 복직을 하는구나' 싶었다. 이번에도 휴직을 조금 연장해야 하나, 그냥 복직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는데 옷을 사고 화장품을 사는 것으로 복직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마음이 흔들리기 전, 시청으로 향했다. 3년 아니 거의 4년 만에 밟아보는 시청 계단.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 신규자 면접을 보러 가는 마음처럼 떨렸다. 인사팀으로 직행하려다 전에 보시던 과장님과 팀장님께 먼저 인사드리러 갔다. 그분들의 첫마디는

"복직 언제 해?"였고

난 "지금 하러 왔어요."라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시청에 와서 직장 동료들 틈바구니에 앉아 이야기 나누다 보니 긴장도 조금 풀리고 '이제 정말 내가 다시 직장에 복귀를 하는구나.' 싶었다. 몸은 과장님 옆자리에서 이야기 나누는데 마음은 제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일하고 있는 수많은 직원들에게 떠밀려갔다. '나도 며칠 후면 다시 저렇게 앉아 일을 하고 있겠구나.'

복직하고 만나자고 인사드리고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인사팀에 들렀다.

매번 휴직원만 쓰러 다녔는데 오늘은 복직원을 작성했다.

복직

물러났던 관직이나 직업에 다시 종사함.

휴직원을 쓸 때는 뭔가 미안하고 주눅이 들었는데 복직원을 앞에 두고 난 조금 당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당당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 원래 복직이 3월이신데 조금 일찍 나오시네요."

"네, 주무관님 사실, 그 이유가 1월 정기 인사에 맞춰 나오려고 그래서요. 그리고 정기 인사 맞춰서 나오는 이유는 혹시 집 가까운 곳으로 배치해 주십사 말씀드리려고요. 왜냐하면 제가 아이가 네 명인데 아직 다 엄마 손이 필요할 정도로 어리고 특히 막내는 아직 네 살이라 엄마 품이 필요할 때 이거든요."

이러긴 싫었지만 네 아이 엄마의 정체성을 아예 벗어던지고 사회인이 되는 것이 아니기에 눈 딱 감고 난 이런 구질 구질한 말들을 또 뱉어내고 말았다. 모양 빠지게. ㅎㅎ 하지만 잠깐 모양 빠지고 3년 동안 아이도 조금 잘 돌볼 수 있는 업무가 주어진다면 그걸로 된 거다.

물론, 담당자는 접수는 하겠지만 장담은 못 한다고 했다.

엄마가 집에 없으면, 당장 1월부터 방학인 아이들 걱정이 되긴 했다.

초등학생 고학년 딸은 혼자 집에 머물러야 하고,

초등학생 저학년 두 아들은 서둘러 방학 중 긴급 돌봄을 신청했고,

막둥이는 하원 후 돌봄을 어머님께 부탁드렸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난 어디에 발령이 나든 직장인으로 복귀할 것이다.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것으로 마지막 휴직의 날을 마무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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