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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Jan 05. 2024

엄마 밥 해야지

밥이 문제다

목요일쯤 되면 몸과 마음이 지치는 듯하다. 어제는 사무실에서도 너무 바빠서 집에 오니 쓰러질 것 같았다. 해야 할 집안일의 기본값만 해도 시간은  밤 10시를  훌쩍 넘어갔다. 눕자마자 잠에 빠져들어 알람이 울려서야 겨우 깨어났다. 감사한 단잠이다. 수영대신 수면을 택할까 잠시 고민했다. 1시간 더 잔다고 피곤이 가시진 않을 터. 수영 가방을 들고 수영장 가서 영법 바꿔가며 몇 바뀌 돌자 새 힘이 솟는다. '역시 수영장 오길 잘했지'


집에 들어서자 잠에서 깬 막내가 달려온다. 근데 평소와 다르게 몸이 쳐진다. 잠시 수영 가방을 던져놓고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엄마, 밥 줘. 밥 해야지."


그제야 어젯밤 마지막 한 톨까지 긁어먹은 밥솥이 생각났다. 아 그래 밥 해야지. 밥 밥 밥


엄마로 살면서 가장 힘들고 가장 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이 밥 짓는 일이다. 밥상을 차려대는 일. 결코 엄마로 살면서 밥에서 해방될 수는 없다. 이 끼니를 차려 먹으며 다음 끼니를 뭐 먹을지 생각하고 , 사무실에서도 퇴근 시간이 돌아오면 집에 가서 아이들 뭘 해 먹여야 할지 또 걱정이다.


​예전에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봤다. 그 드라마에서 잊지히 않는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 삼 남매의 엄마는 매 끼니 밭에서 나는 야채로 고구마줄기 김치도 하고 시래깃국도 끓여 식구들을 먹인다. 이 드라마에선 유독 밥 차리는 장면,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 둘러앉아 온 가족이 밥을 먹는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온다.​


​그게 참 인상적이었다.

아빠가 객기를 부리다 경쟁이 붙어 차로 앞 차과 경주를 벌이다 화물차가 논으로 처박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고 나서 집에 도착해 밥을 하면서 엄마가 하는 말,


​'염병할 차가 꼬라 박혀도 이렇게 밥을 차려야 하니.'​


​이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자다 갑자기 죽어버린 엄마는 과로사가 맞는 것 같다.


따순 밥 한 끼 해 먹이는 것도 힘든 일인데 거기에 농사일까지 구 씨가 떠나고 나서는 싱크대 만들고 다는 일에도 따라다녀야 했다.


남자는 바깥일만 하면 그만이지 여자는 이번 끼니 다음 끼니 뭘 먹을지 계속 계속 머리가 쉬지 않는다.


엄마의 따순 밥상이 당연하다 여겼던 삼 남매는 엄마가 죽고 밥 짓는 일의 수고로움에 대해 알게 된다.


​백수가 된 자기가 지금 아빠에게 새엄마를 만들어주지 평생 자기가 아빠 옆에 붙어서 밥 짓고 아빠 밥을 차려야겠다고도 생각한다. 이게 가장 큰 이유가 되어 아빠 옆에 새엄마를 데려다 놓는다.


​어떤 민원인이 서류 떼러 왔다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내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가 혼자가 된 남자였다.


​"그렇게 건강검진 하라고 해도 안 하더니... "라고 말하면서 "여자는 혼자 살아도 살만 해. 근데 남자는 이게 뭐냐고 밥을 할 줄을 알아, 꼴이 이게 뭐냐고."


​그건 분명 밥 해주는 사람이 옆에 없음에 대한 분노였다. 먼저 떠난 자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그 말을 듣고 참 씁쓸하게 여겼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먹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밥이 이렇게 중요하다.



#밥


#나의 해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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