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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Feb 23. 2024

커피가 밉다

미운 건 커피가 아니라 나였다..

아이들이 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지나가다 파리바게뜨에 들어가서 각자 좋아하는 빵을 골랐다. 민아는 동그란 도넛을, 민유는 크림빵, 민찬이는 노란 슈크림빵을 집어 들었다. 특별 할인 행사로 아메리카노 한 잔에 1500원이라는 광고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과 느끼한 것을 먹고 온 터라 그 포스터를 본 순간, 시원한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흐르면서 온몸을 서늘하게 해 줄 그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아이들이 고른 빵과 함께 커피를 주문하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도 함께 주세요.”


모두 좋아하는 것 하나씩 손에 쥐고 우린 너무 행복했다. 나도 오늘따라 커피가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평소 커피를 즐겨하지 않는 편이다. 좋아하긴 하는데 오후에 마시면 밤잠을 설칠 때가 있어서 자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오후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그 자제심이 먹고 싶은 욕구를 넘어서지 못했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정신이  하다. 몸은 곤한데 아무리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해 보아도 도무지 정신이 흐려지지 않는다. 오후 늦게 마신 커피의 각성 효과가 강력했다. 평소 커피를 즐겨 마사지 않은 터라 이렇게 한 잔을 다 마시는 날이면 커피가 최선을 다해 제 역할을 하고 만다. 빨리 잠이 들어야 새벽에 일어나 수영도 가고 내일 하루도 멀쩡한 정신 상태로 잘 보낼 수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정신이 또렷하기만 하니 난 갑자기 너무 제 역할 잘하고 있는 커피가 미웠다. 커피가 원망스럽고 너무 미웠다.



그러다 비난의 화살은 나 자신을 향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을 걸 그걸 참지 못하고 그걸 또 마시다니. 이런 난처한 상황이 한두 번도 아니었는데 왜 자꾸 이런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지는 모르겠다. 커피가 준 행복은 10분이었지만 고통은 밤새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밤새 뒤척이다 한숨도 자지 않은 것 같은데 새벽 알람이 울렸다. 너무 피곤하고 기분이 엉망진창이었다. 밤새 내 비난을 받은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커피는 밤의 단잠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그 다음날 일상생활 하는데도 지장을 었다. 이 날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내 몸에 절대 커피를 제공하지 않음으로, 커피에게 복수하고 어리석은 짓을 반복한 나 자신에게도 벌을 주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그날 밤 엄청 단잠을 잔 건 그게 결코 복수나 벌이 아니라 내 몸이 복을 누리는 길이었음을 알았다.


그전 날 낮 시간에 어떻게 보냈느냐가 그날 밤 달콤한 잠에 빠져 숙면을 취하게 될지, 얕은 잠을 자면서 괴로운 시간을 보낼지 결정한다. 전 날 받은 적당한 햇빛, 오후 시간에 커피 참기, 자기 전에는 너무 많은 물을 마시지 않기 등등의 소소한 노력들이 단잠을 선사한다. 너무 잘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순간 까먹고 커피 한 잔의 유혹에 홀라당 넘어간 것이다. 내가 미워해야 하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너무 쉽게 유혹에 넘어간 나 자신 말이다.



세상에는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것도 너무 많다. 무엇을 먹을지 항상 선택한다. 그 순간의 뇌는 몸에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가리지 않고 혀가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는 때가 많다. 뇌에서 지극한 행복을 느끼는 지점인 '지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복점이 행복해하는 사이, 몸은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커피든 음식이든 그 순간의 먹고 싶은 욕망에 아무거나 막 먹지 말아야지, 내 몸을 내가 아끼고 정성껏 보살펴야지 하고 생각도 해본다.


#커피덕분에들어닥친생각들

#날아가는생각을붙잡아쓴글

#커피는오전에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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