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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Dec 07. 2018

시작하기도 전에 지친 쿠바 여행

Viaje introducción

쿠바는 도착부터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할 기다림의 경험을 선사했고 덕분에 나는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데에만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출입국 심사를 위해 일단 30분을 기다렸고, 굳이 다시 가방 안의 짐을 검사한다며 X-ray 한번 통과하기 위해 기다리는데 30분이 걸렸다. 더군다나 그 기계 중 하나는 고장이 나서 대기하는 줄의 뒤틀림은 멍멍이판 5분 전이었다. 그리고 도착 후 1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은 짐을 찾는데 다시 15분. 각 단계라는 것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인천공항과는 차원이 다른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2016, La Habana, Cuba
2016, La Habana, Cuba

이러고도 아직도 기다릴 것이 남아있었다. 녹초가 되어 공항을 빠져나왔는데 나를 시내로 데려다 줄 택시를 타려면 쿠바의 화폐가 필요하니 하는 수 없이 환전을 위해 또다시 긴 줄을 기다리다가 앞 뒤에 서있던 미국인 부부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나는 앞에 계신 부부가 마시는 맥주를 보며 그 맥주를 어떻게 샀냐고 물어보려고 말을 꺼냈었다. 쿠바 화폐인 CUC가 없으면 맥주를 살 수 없을 테니 이 분들은 CUC가 있을 텐데 그러면 여기서 줄을 설 필요가 없으니까. 대화를 나눠보니 미국인 부부는 San Diego에서 왔다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97년 금융위기 전에 수원에서 영어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며 아직 OB와 Hite 맥주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 부부는 여행자 카드를 미처 준비하지 못해 여행자 보험까지 검사받고 2명이서 300달러나 지불해야 했다며 안타까워했는데 이 이야기를 듣는 내가 다 안타까웠다. 뒤에 계시던 할머니는 자기의 50년 전 추억의 올드카를 실제로 볼 수 있다며 굉장히 좋아하셨다. 할머니께서는 손자들과 여행을 오신 모양이었는데, 그 손자들은 뒤에서 자기들끼리 쉬고 할머니가 줄을 서고계셨다. 그리고 난 그 부부에게 본의 아니게 맥주까지 얻어먹었다.


2016, La Habana, Cuba

45분을 기다려 환전을 하고 나서 같이 시내로 나가기로 했던 분을 기다리기 위해 시장 한복판보다 어수선한 1층을 벗어나 공항 2층으로 가려고 했더니 하나뿐인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나있다. 대신에 아직 고장나지 않은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속도가 걸어서 올라가는 속도와 큰 차이가 없이 거의 거북이가 기어올라가는 수준이었다. 다시 내려갈 때는 이조차 고장이 나서 에스컬레이터로 낑낑거리며 힘들게 캐리어를 들고 내려와야 했다. 사실 이 에스컬레이터는 출국하는 날까지도 고장 상태였다. 올라가 보니 후덥지근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1층 공항 바깥 환전소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나름 쾌적한 실내의 2층 환전소에는 사람도 딱히 없을뿐더러 창구 옆에는 ATM도 있었다. 분명히 1층의 여행안내소 infotur에 물어보았을 때 공항 바깥의 1층 환전소 말고 2층에도 환전소가 있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었는데 정말 알다가도 모를 상황이다. 덕분에 아직 쿠바에 대해 공항 밖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도 공항에서 쿠바의 여러 모습을 예측할 수 있었다.


어느새 어둑해진 밤, 택시를 타고 아바나 시내로 들어올 때 혁명광장을 지나며 본 까만 벽에 걸린 환한 체 게바라의 모습만 보았을 때 나는 그냥 거리가 좀 어두운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2시간 뒤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와 싸우며 힘들게 숙소를 정하고 길을 혼자 나섰을 때 난 한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어둠과 직면했다. 여행자 거리인 Obispo, 올드카의 매연과 기름 냄새가 가득했던 Prado와 'chino'와 휘-익 부는 휘파람 소리가 가득한 Malecón을 걷고 나서 난 느꼈다. 이 여행 진짜 망하겠구나.

 

2016, La Habana, Cu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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