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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Dec 07. 2018

길에서 만난 매력과 행복

... el calle con el encanto, la alegría

앞에서 서술했던 것처럼 처음 쿠바 여행을 생각했을 때 상상한 것과 실제 쿠바는 많이 달랐기에 처음 느꼈던 쿠바는 충격이었다. 일단 생각보다 처음 맞닥들인 쿠바의 밤이 너무 어두웠다. 쿠바는 카리브해 연안이니까 특유의 화사함과 따사로운 햇빛을 머리 속에 상상하고는 엄청난 착각을 머리에 심은 채로 여행을 준비했었는데, 일단 환한 낮보다 먼저 경험한 어두운 밤은 상상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쿠바를 나가는 날까지 면역이 되지 않는 기름 냄새 뿡뿡 뿜으면서 매연을 덤으로 주는 올드카의 향연은 정말 사진으로 볼 때만 예뻤다. 그리고 일단 도로 위에서 창문을 열고 다니는 건 폐를 상하게 만드는 매우 안 좋은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리는 찍은 사진만 보면 분명 색이 많은데, 내 기억 속 아바나는 왜인지 모르게 온통 회색, 베이지색 계열의 빛바랜 단색이다.


어쩌면 이는 당연하다. 일단 쿠바는 긴 경제 제재를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했고, 이는 거리의 풍경을 혁명이 있던 그 시절 그때로 멈추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돌이켜 생각해보자면 만약 이 풍경이 한국의 1970~80년대의 풍경이었다면 아마 큰 문제없이 받아들였을 풍경이다. 서울에서 보던 도시화된 간판 따위는 당연히 없고, 새로 생겼을 스마트폰 가게들조차 뭔가 녹슬고 정돈되지 않은 간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리고 버스에도 거리에도 정말 사람이 많아서 시내 관광을 할 때는 오전 10시가 넘어서 움직였는데도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물론 내가 아바나에서 묵었던 곳이 저소득층이 많은 거리라고는 하지만, 다들 일을 안 하는 건지, 일할 필요가 없는 건지 오전 11시, 12시에도 거리에도 사람이 정말 많다. 게다가 사람들이 줄 서는 것을 좋아하는지, 세우는 것을 좋아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부족한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할 시간에 줄을 서게 해서 시간을 소모하게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쓸모없이 신분증을 확인하며 환전을 하고 Wi-Fi 카드를 파시는 지라 줄 설 일도 굉장히 많다. 그리고 저 두 줄은 한 번 서면 30분 정도의 기다림은 기본이다. 그리고 내가 굳이 서지 않아도 되는 줄 중에도 긴 줄이 매우 많다. 은행도 비교적 시원한 실내가 아닌 밖에서 줄을 선다. 이 광경을 보면서 난 은행이 굳이 저렇게 넓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배급 줄도 당연히 밖에서 선다. 심지어 상점에 들어갈 때도 널따란 실내를 두고 밖에서 사람들이 두텁게 서서 차례차례 들어간다. 정말 웬만한 공공장소는 다 서서 줄 서는 것이 기본 전제다.


그렇다고 쿠바가 매력이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쿠바는 이런 악조건을 이길 만큼의 천혜의 자연환경과 매력을 갖추고 있다. 쿠바가 긴 미국발 경제 제재의 터널 속에서 집중했던 산업이 사탕수수와 관광이었다는 사실은 며칠 경험해본 내 생각에는 충분히 옳은 방향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시가와 럼, 이 두 가지에서 쿠바의 특별한 매력을 느꼈겠지만 나는 그쪽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쪽으로는 아쉬웠다. 하지만, 자연과 음악, 그리고 흥이 살아있는 쿠바는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특히 자본이 없는 관계로 개발을 할 수 없어 대다수의 곳이 자연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은 슬픈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큰 장점이다. 아마 통일 뒤 한반도의 DMZ 이북 지방도 아마 이런 느낌일 것이다.


Viazul 버스를 타고 새벽부터 Trinidad행 버스를 탔던 날, 일반적인 버스라면 고속도로를 쭉 타고 내려가지만, 이 버스는 Playa Larga와 Playa Giron을 거쳐 해안가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버스 밖 차창의 풍경을 보니 내가 말로만 듣던 그 캐리비안의 에메랄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Larga, Giron 해안은 쿠바에서 굉장히 유명한 휴양지 중 하나로, 많은 관광객들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지만, 단기 쿠바 여행자인 나에게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은 곳이었는데 버스 안에서 바라본 바다만으로 뭉클하고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이런 바다를 8년 전에 교환학생 시절에 보기는 했던 것 같은데, 그 가물가물한 기억을 재빨리 업데이트했다. 사진도 찍으려고 했지만 내가 창가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라서 그냥 보면서 감동만 받았다. '아, 에메랄드다.' 어쩌면 쿠바 여행에서 아바나에서의 멘붕 상태를 치유하고 여행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Trinidad에서의 이 2박 3일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도착한 뒤에도 시내 중심을 벗어나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도자기 공방을 향해 Trinidad 외곽을 다녀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더 매력이 있었다. 물론 차량도 통제하는 Plaza Mayor 주변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날것 그대로의 일반적인 쿠바의 모습은 오히려 이쪽에 가까울 것이라고 예상된다. 오색 빛깔의 집 사이로 드라마나 영상으로 보던 우리나라의 60~70년대 시골 풍경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데, 아이들은 무너진 교회 뒤에서 공을 차고 논다. 물론 이쪽은 거리에 말똥의 습격이 장난이 아니지만 말이다. 타보지는 않았지만 말로 된 택시도 다니는 곳이 이쪽이니 말 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해넘이 직전 오른 산에서 본 바다로 지는 해와 붉은 노을, 그리고 서서히 어두워지는 트리니다드의 풍경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무언가가 있다. 물론 나 빼고는 다들 커플로 짬짬이 올라와서 술 꺼내고 마시고 있어서 매우 부러웠다. 사실 이 날 약 2시간의 시 외곽을 걸어다니며 여행 후 처음으로 쿠바에 오기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뒤로 방문했던 Topes de Collantes의 자연 풀장 또한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작년 설악산 오색 코스 등반에 자신감이 붙어서 difficulty: hard를 지나치게 얕잡아봤다가 트래킹이 예상보다 힘들어서 올라올 때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질 정도였지만, 그래도 엄청난 높이의 폭포와 자연 수영장에서 수영하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물론 실외 수영은 실내 수영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참 힘든 것이더라. Playa Ancon, Playa Varadero에서 봤던 정말 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 해변은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사실 혼자 바닷가에 가면 예전 바르셀로나 여행 때처럼 짐을 맡아줄 사람도 없고, 그러면 바다에 들어가기도 힘들어서 해변에 는 가지 않으려다가 그래도 한 번 용기를 내서 구경이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갔었는데, 정말 안 갔다면 후회할 뻔했다. 앙콘에서는 그냥 신발도 벗고 하얀 백사장을 따라 바닷가로 유유히 걸어보고 혼자 잡지에서만 보던 해변의 낭만 콘셉트를 잡겠다고 해안가에서 들고 갔던 손열음 에세이집을 읽기도 했고, 바라데로에서는 스노클링을 해서 오며 가며는 요트도 타면서 펄럭이는 돛과 친해지며 진짜 sailing도 하고 (덕분에 펄럭 펄럭 요트도 진짜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헤엄치면서 바다에 있는 물고기도 볼 수 있었다. 단, 안타깝게도 출렁이는 바다에서 오랫동안 배운 수영 실력을 뽐내려다가 된통 당했는데, 구명조끼를 벗으려다가 바로 포기했다. 수영을 그리 오래 했어도 익숙하지 않은 호흡 덕분에 스노클 사용법조차 익숙하지 않고 출렁이는 파도에 구명조끼 입은 몸이 같이 움직이니 이건 내 몸이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도 바다 안에 물고기를 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고 덕분에 물고기는 원없이 많이 봤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이 물가에서 찍은 모든 사진이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카메라, 너는 지금 대체 어디에 있니...)


당일치기 Viñales 투어의 시작에는 Hotel Los Jazmines 전망대에 있었고, 사실 이 것이 처음이자 끝인 느낌이었다. 가이드북에 여기에 가면 숙소를 싸게 잡은 내가 하찮게 여겨질 것이라고 쓰여있던데, 이는 실제로 그러했다. 마치 초현실적으로 누군가가 그려놓은 듯한 풍경이라서 그냥 전망대에서 앞을 보면, 우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도, 우와. 하며 놀라움을 자아내게 했다. 이에 비해 럼 공장 투어나 시가 농장 투어는 남들에게는 가볼 만은 했겠지만 내가 관심이 없는 콘텐츠라 심드렁했고, 선사시대를 형상화해놓은 벽화나 인디오 동굴 또한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었다. 특히 이 인디오 동굴은 왜 이름이 인디오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동굴에 들어갈 때 인디오가 환영해준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인디오의 손길이 아니라 바닥의 시멘트가 더 다가올 뿐이었다. 더군다나 마지막에는 배를 타고 움직이는데 동굴에서 배를 타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지만 이 배를 굉장히 오래 기다려야 해서, 거의 배 타는 시간의 3배는 기다려야 했고 같다. 이 설명만 생각하면 놀이공원에서 후룸라이드나 신밧드의 모험을 타는 것 같겠지만 현실은 굉장히 달랐다.


쿠바 여행의 장점 중의 하나는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쿠바는 눈이 심심할 순간은 있어도 귀가 심심할 순간은 없는 곳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정말로 차가 쌩쌩 다니는 거리가 아니라면 어디에 가든 직접 연주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거의 모든 관광객용 음식점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와 춤을 공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밖에서 구경하고 동영상을 찍는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다. 그저 밖에서 공연만 빼꼼히 쳐다보다가 제 갈길을 가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곳이기에 사람들이 많은 곳은 한 번쯤 멈춰서 음악을 들어보곤 했다. Trinidad 여행의 중심인 Plaza Mayor 옆 Casa de la Musica도 바깥에 있는 계단에 앉아서 흘러나오는 라틴 음악에 맞춰서 길거리 피냐 콜라다를 시켜먹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밤에 성당 주변에는 Wi-Fi를 이용하는 사람까지 합쳐져 사람이 많다. 물론 나는 Que Sera Sera 같은 라틴 음악보다 유일하게 줄 서서 기다리는 음식점 La Botija에서 나오던 Alicia Keys, Amy Winehouse 풍의 Soul+Jazz 노래를 더 좋아해서 여기는 속는 셈 치고 가이드북에서 먹어보라던 Brocheta 때문에 갔었는데, 음식보다 음악이 더 마음에 들어했다. 물론 당연히 그분들의 생활을 위해 팁을 주는 문화도 있다.


음식도 물론 한국보다는 저렴하다. 쿠바는 해산물이 저렴해서 여행자들한테 랍스터가 유명하다는데, 나에게는 그런 정보가 없던 터라 랑고스타가 망고스틴이랑 비슷한 것인 줄 알았다. 여하튼 랍스터도 맛있고, 일단 해산물 요리는 다 맛있다. 한 끼를 채울 만큼 큰 1000원짜리 길거리 피자도, 150원짜리 아이스크림도 맛있다. 단, 수입돼서 온 건 일단 비싸서 코카콜라, 스프라이트는 잘 보이지 않고 쿠바산 콜라는 뭔가 맛이 비어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쿠바산 라임 refresco는 스프라이트와 동급의 맛이라서 강력 추천할 수 있는데, 물론 제일 나은 건 목마를 때 가판에서 파는 50원짜리 탄산음료 한 잔이다. 그리고 아바나 리브레 호텔에는 서울에서 보던 스타일과 비슷한 디저트 가게도 있는데 가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신 비싼 값은 한다.


물론 이와 다른 측면에서 예상하지 못한 볼거리도 있다. 이른 아침부터 공원에 모여서 인터넷을 한다며 의자에 앉은 폰잡이들의 모습, 쿠바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크루즈선이 정박된 아바나의 바다, 어쩌면 쿠바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알다가도 모를 나라이고, 그런 알다가도 모를 모습까지 모여서 진짜 쿠바의 매력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16, La Habana, Cuba
2016, La Habana, Cuba
2016, Trinidad, Cuba
2016, Viñales, Cu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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