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propaganda y el socialismo
다른 대부분의 국가체제와 달리 사회주의를 기본으로 국가를 운영중인 쿠바는 일반적인 나라들보다 자신들의 프로파간다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50년이 넘는 동안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코 앞 위치에서 미국의 제재에 맞서 국가와 체재의 보존을 생각해야했던 쿠바의 입장으로 보면 국민들에 대한 세뇌교육은 정말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사실 아이러니한 것은 쿠바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혁명 기념관에 전시된 대로 미국의 도움(?)이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의 시발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는 점이다. 미국인의 쿠바 자산을 모두 몰수해버리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1959년 혁명도 쿠바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못 살겠다 바꿔보자' 식의 혁명이었을테니까. 현재 미국 대사관이 위치한 과거 미국 이익대표부 자리 바로 앞에 반제국주의 기념물(Tribuna Anti Imperialista)이 존재하는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내가 여행을 했던 시기는 그 피델 카스트로가 죽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때였고 매년 성대하게 기념하고 있을(아니 자신의 체재 단속을 위해서는 필수적일) 혁명 기념일 행사가 한달도 남지 않았던 시기이니 프로파간다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 실제로 Yo soy Fidel-나는 피델이다-의 문구는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고 특히 viazul 버스를 타고 차창 밖으로 보았던 Santa Clara나 Cienfuegos에서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쿠바의 상징인 별과 국기와 함께한 문구의 빈도가 좀 더 높아보였다. 그리고 이름만 해도 자체 검열 경찰의 역할을 할 것만 같은 CDR(Comités de Defensa de la Revolución-혁명수호위원회)의 표지판은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쿠바 여행에서 영어로 된 설명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스페인어 뿐만 아니라 영어 설명이 잘 되어있는 곳이 종종 있었는데 대부분 그런 곳은 자신들의 체제 선전장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잘 되어있다고 느꼈던 Museo de la Revolución은 1959년 근처에 있었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영어로 주석을 달아주었다. 덕분에 다른 것은 설명으로 보기만 했지만, 이건 글을 읽으며 이해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Che와 Fidel에 대한 심적 동조나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꿈꾼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혁명에 대한 정당성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사했다. 내가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 설명에 감동하다니. 내부에서는 혁명 전쟁, 혁명 선언 과정, 혁명을 통한 사회 성장, 체 게바라 등의 테마로 전시되어있는데 내가 관심있게 본 파트는 혁명을 통한 사회 성장 성과였다. 사실 쿠바에서는 글보다 숫자가 편한데 열심히 종이에 뽑혀진 그래프와 사진 자료가 놓여있으니 자동으로 눈이 갔는데, (사실 그래프가 종이에 뽑혀져 박물관 한켠의 전시 자료로 쓰인 광경은 처음 보았다.) 특히 사탕수수와 의료, 교육 분야 성과를 열심히 광고하고 있었다. 실제로 쿠바에서 사탕수수 산업은 큰 비중을 차지하니 말도 안되는 표현일 수 있으나 우리 나라의 반도체 산업 성장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고, 혁명 이후 계속 매진했던 의료, 교육 분야 성과 또한 노력에 따라 나름의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을 쭉쭉 올라가는 그래프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단, 최근 50년은 국부론이 쓰여지던 1750년대가 아니라서 왠만한 국가가 아닌 이상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도태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 또한 감안하면서 그래프를 읽을 필요는 있겠다. 그리고 Museo 내부 Patio를 보니 군복을 입을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과 하얀 교복을 입은 중딩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무슨 혁명 박물관이라고 해도 저렇게 입고 박물관에 오나 했었는데 단지 이 때문에 입고 온 것은 아니었고, 다음날 있을 Granma호 전시실 쪽에서 있을 행사 때문에 학생 백 명가량이 모여 준비 행사를 하느라 전날부터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연필이나 국기 장식등을 들고 줄줄이 전시실 주위를 빙 둘러 정렬하는 듯 보였는데 아마 높으신 분들이 찾아올 행사를 위한 맞춤형 장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이런 쪽으로 가장 쇼킹했던 건 역시 혁명 광장을 방문했던 때의 일이다. 이 날은 Vedado 투어를 한다며 Hotel Nacional에서부터 걸어오느라 발가락이 아팠는데 어느 순간 보니 경찰들이 넓은 10차선이 넘는 도로의 차량 출입을 막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왜 그런가 했는데 전에 혁명박물관에서 봤던 Granma호 모형과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보였다. 그러나 내가 스페인어 실력이 0에 가까운 관계로 대체 뭘 준비하냐고 물어볼 수가 없었기에 난 그냥 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체 게바라 철제 구조물 촬영 스팟으로 유명한 José Martí 기념 동상 앞에서 거의 한 시간이 넘게 쉬고 있었다. 덥기는 한데 저 앞까지 다시 내려가서 사진을 찍자니 한낮 아스팔트 광장에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내려가길 망설이며, 아 그래도 여기는 그늘이라 괜찮네 하고 있었던 거랬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움직인다. (응?) 그리고 교복을 입은 초등학생들은 Fidel을 연호하며 파란 손수건을 흔들면서 카리브해를 항해하여 쿠바를 향하는 Granma호를 형상화하고, 배 주위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배를 빙 둘러서 혹시 모를 안전사고 등에 대비하며 수백미터를 행진한다. 사실 처음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배를 들고 움직이는 것인줄 알아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배는 알아서도 잘 움직였고, 실제 배와 다르게 턴도 가능했다. 놀라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드리고 관리하시는 분께 물어보니 거의 2주 후 1월 2일에 있을 혁명기념행사를 위해서 준비 중인 거란다. 내일 있을 행사가 아니라 1월 2일에 있을 행사를 이렇게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놀라웠는데 이를 위해 벌써부터 교통을 통제하고 의자 설치까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들에게 있어 이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았다.
덤으로 신기했던 사실은 중남미 대륙의 사회주의 동반자였던 Chávez에 대한 선전물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는데 특이했던 건 이걸 마주했던 장소가 경찰서와 럼 공장이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경찰의 경우 정식 명칭이 국가혁명경찰이니 사회주의 혁명 정신의 보존을 위해 혈맹관계 정도로 끈끈했을 베네수엘라 정권과의 연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체 럼 공장에는 왜 차베즈 사진이 걸려있는지 사실 내 머리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일 뿐. 이와 반대 방향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하나 있었는데 Cristóbal Colón의 흔적에 대한 평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두번째 도착지가 쿠바라는데 어쩌면 aborigins에 대해서 배려가 없는 것인지, 백인이 70%가 넘고 쿠바의 독립과 1959년 이후에 관심이 커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500년이 다 된 도시들인 La Habana, Trinidad에는 Colón이라는 길 이름이 잘 사용되고 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민족성을 New Spain 계열 역사에 시점을 두고 이전 역사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